책소개
1798년 파리에서 ≪스테파니-루이즈 드 부르봉-콩티가 직접 저술한 역사적 회고록≫을 읽은 괴테는 1799년에 벌써 비극 삼부작을 계획한다. 괴테는 이 비극이 “프랑스 혁명과 그 결과에 대해 오랜 세월 써 왔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진지하게 기록하여 담으려는 그릇”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첫 편이 바로 〈자연의 딸〉이었다. 공작은 울창한 숲속에서 사냥 도중 조카인 왕에게 숨겨 놓은 사생아 딸 오이게니의 존재를 고백한다. 이를 계기로 오이게니는 왕실 가족으로서 누릴 새로운 행복을 꿈꾼다. 그러나 그녀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복 오빠의 계략에 말려 국외로 추방당할 위기에 처한다. 어릴 때부터 오이게니를 돌봐 준 가정 교사가 오이게니를 배신하고 이 계략에 가담한다. 공작은 딸이 말을 타다 추락해 죽었다는 거짓 소식을 듣고 낙담한다. 오이게니는 추방당하기 직전 자신의 혈통과 권리를 포기하고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시민 계급 출신 법관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조국에 남아 숨어 살기로 한다.
괴테가 계속하려던 삼부작의 뒷부분, 2부와 3부에서 오이게니는 완전히 숨어 살며 농장을 개선하는 일에 몰두하다가 마침내 혁명이 발발한 시기의 정치적 사건들 덕분에 수도로 들어가 왕 앞에 불려 간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이 없으므로 1부에 예시된 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자연의 딸>은 1803년 4월 2일 바이마르의 궁정극장에서 초연된 뒤로는 자주 공연되지 않았다. 자주 무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아름다운 언어와 드라마의 수준을 갖춘 문학작품으로서 그 사이에 여러 열광적 옹호자를 만났고 연구 대상이 되었다. 괴테 자신도 <자연의 딸>이 <타우리스 섬의 이피게니에>, <토르콰토 타소>와 더불어 자신의 작품들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에서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많은 여성적 매력과 생명력, 고상함과 용기로 치장한 오이게니라는 인물이다. 나아가 역사적 연관성과 사건의 깊은 내용을 결국 하나의 유기적인 관계로 보는 암시적인 진술들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줄곧 비평과 경탄을 이끌어 낸 언어와 문체와 형상화다. 모든 것은 보편성과 타당성을 향해 움직인다. 사건 장소에는 이름이 없고, 등장인물들은 오직 직분으로만 불린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면서 자아의식을 갖고 있다. 언어는 단순하지 않고, 악당의 말조차도 자로 잰 듯 항상 형식에 맞추었다. 빌헬름 셰러는 이미 <자연의 딸>을 괴테의 “가장 고상하고 독특한 문학”으로 분류했다. 헤르더도 이 작품을 “이 시대의 엄청난 사건들을 자신의 가슴에 담아 보다 높은 견해로 발전시키고, 깊이 숙고하는 정신이 맺은 매우 훌륭하고 함축적이고 완숙한 열매”라고 일컬었다.
200자평
<자연의 딸>은 괴테가 1803년에 발표한 5막 비극이다. 사생아로 태어난 오이게니가 왕족이라는 신분을 되찾기 직전, 이복형제의 계략에 휘말려 국외로 추방당하고 시민 계급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그렸다. 아름다운 언어, 수준 높은 비극성을 갖춘 문학작품으로 평가된다.
지은이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 174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의 유복하고 명망 있는 시민 가문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정교사로부터 라틴어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을 배웠고, 16세에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했다가 병으로 휴학한 뒤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학업을 이어 1771년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시절부터 문학에 심취했던 괴테는 24세가 되던 1773년에 희곡 〈괴츠 폰 베를리힝겐〉을 써서 독일 내에서 성공한 작가로 인정받았다. 이듬해 서간 소설 《젊은 베르터의 슬픔》을 발표하면서 명성은 전 유럽으로 확대되었다. 이 두 작품으로 괴테는 당시 젊은 작가들의 “질풍노도” 문학 사조를 이끄는 대표 작가가 되었다. 26세에는 바이마르 궁정에 초빙되었다. 이후 바이마르 공국에서 10년간 관직자로 일했다. 그 때문에 창작 활동이 지장을 받게 된 괴테는 2년간의 이탈리아 여행에서 새로운 창작 동기를 부여받고 그 결과로 고전주의의 대표작인 〈타우리스의 이피게니〉, 〈에그몬트〉, 〈토르콰토 타소〉를 완성한다. 이후 괴테는 공적인 의무와 과업을 줄이고 이탈리아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창작에 매진한다. 평생의 역작 희곡 《파우스트》를 완성하며 마침내 독일어권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파우스트》 2부를 완성한 다음 해인 1832년 바이마르에서 세상을 떠났다.
옮긴이
김미란
서울대학교 독문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수학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숙명여대 독일언어문화학과 명예교수다. 지은 책으로 ≪탈리아의 딸들−현대독일여성드라마 작가≫, ≪독일어권의 여성작가≫(공저), ≪한독 여성문학론≫(공저)이 있고,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 모테카트의 ≪현대독일드라마≫, 렌츠의 ≪군인들≫, ≪가정 교사≫, 로트의 ≪나귀 타고 바르트부르크 성 오르기≫, 베데킨트의 ≪눈뜨는 봄≫ 호르바트의 ≪피가로 이혼하다≫, ≪우왕좌왕≫ 등 희곡과 라 로슈의 ≪슈테른하임 아씨 이야기≫, 그리멜스하우젠의 ≪사기꾼 방랑 여인 쿠라셰의 인생기≫, 브레히트의 ≪채신없는 할머니≫ 등 소설이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1막
2막
3막
4막
5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오이게니 : 나는 막 죽음의 밤으로부터
대낮의 빛으로 올라왔고,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어요!
얼마나 갑작스럽고
심하게 추락하여 마비된 채로 누워 있었는지요.
그때 나는 정신을 차렸고, 다시
아름다운 세상을 알아보았고, 의사가
불꽃을 다시 당기려고 애쓰는 것을 보았지요.
아버지의 사랑 가득한 눈길에서,
그분의 음성에서 내 생명을 다시 발견했지요.
134쪽
수도사 : 굳건한 바닥이 요동하며 탑들이 흔들리고,
짜 맞춘 돌들이 떨어져 나가고,
그렇게 화려한 겉모습은
형체 없는 파편으로 파괴되지요.
얼마 안 되는 생명체들은
걱정에 싸여 새로 생긴 언덕으로 기어오르고
모든 폐허가 하나의 무덤을 가리키지요.
자연의 힘을 제어하는 것은,
깊이 허리 숙인 약소 민중이 더 이상 할 수 없고,
홍수는 쉬지 않고 되풀이하여
모래와 진흙으로 항구를 메울 것이오.
1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