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진부함을 거부하고 새로운 고문(古文)의 표준을 제시하다
중국 문학사에서 한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그는 시가와 산문 양대 방면에서 큰 업적을 남겼는데, 우선 산문 방면을 보면 겉치레에 치중한 변문(騈文)의 폐단을 비판하고 문학의 본뜻을 중시하는 선진(先秦)과 양한(兩漢) 이전의 고문 전통을 회복할 것을 힘써 주장하면서 유종원(柳宗元)과 함께 ‘고문 운동(古文運動)’을 주도했다. 특히 진부한 문체를 거부하고, 참신하면서도 어법에 맞는 새로운 고문의 표준을 제시해, 중국 문학사에서 ‘백대 문종(百代文宗)’으로 추앙되고 있다.
문장으로 시를 쓰다(以文爲詩)
고문의 대가인 한유는 고문이 지닌 예술 특징을 시로 끌어와 중국 시의 일대 전환을 이루는 데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바로 ‘이문위시(以文爲詩)’로 불리는 시의 산문화와 의론화다. 그는 서정성이 강한 중국 시에 의론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산문적 언어나 문장 구조를 거리낌 없이 시 속으로 도입해 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그 영역을 확대했다. 이러한 흐름은 이후 송시로 이어져 당시와는 다른 송시만의 차별성을 지니게 만들었다. 또한 한유가 창도한 시의 산문화와 의론화 경향은 ‘이시논시(以詩論詩)’, 곧 시로써 시를 논한 ‘논시시’라는 독특한 시 비평 양식과 관계되는 작품이 탄생하는 관건이 되었다.
시로써 시를 논하다(論詩詩)
시 문학의 창작이 크게 흥성한 당나라 때는 시로써 서로 칭찬하는 기풍이 성행하기 시작해서, 이것이 비평에까지 영향을 미쳐 증답(贈答) 곧 주고받기의 방식으로 상대방을 칭송하는 시가 출현했다. 즉, ‘표방 비평(標榜批評)’이란 서로 치켜세우며 칭찬하는 시를 주고받으면서 시에 대한 품평을 곁들이는 비평 방식이다. 이러한 논시시(論詩詩)의 연원은 중국 시의 고전적 권위인 《시경》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당나라 때 성행하기 시작해 북송 시대에 이르면 논시시가 시화와 함께 시를 논하는 주된 양식으로 자리 잡는다. 특히 한유는 고체시라는 자유로운 형식을 십분 활용해 뛰어난 논시시를 다수 남겼으며 그중에서도 오언 고체시인 〈인재를 추천하며(薦士)〉는 이백의 〈고시의 기풍을 본받아(古風)〉제1수 및 두보의 〈우연히 쓰며(偶題)〉와 함께 중국 시의 역사를 다룬 대표적 논시시로 손꼽히고 있다.
사물의 외양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낸 시어를 창출하다
한유는 문장에서 진부한 표현을 극도로 경계했는데, 시에서도 마찬가지로 기발하고 특출한 표현을 쓰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논시시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옛사람들의 진부한 시어를 답습하지 않고 형상적 비유를 통한 구체적 표현을 창조해 내어 후대에 널리 쓰이도록 만들었다. 즉, 논시시는 시론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양식상 어디까지나 시이므로 형상적 비유를 널리 구사하는 기풍이 뿌리내리게 만든 것이다. 본문에서 소개한 시구를 보면 그 참신하고도 생동감 넘치는 표현에 놀랄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한유는 시에서도 허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시구 길이를 과감하게 조절하는 등, 산문적 기교를 적극 활용해 시가 가진 한계를 벗어나 명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은 첸중롄(錢仲聯, 1908∼2003)의 《한창려 시 계년 집석(韓昌黎詩繫年集釋)》 상·하[상하이구지출판사(上海古籍出版社), 1984]를 원전으로 삼아 여기에 수록된 418수 중 특히 한유의 문학관을 가장 잘 드러내는 논시시 20수를 골라 소개한다. 우리나라 중국 문학계 최초로 논시시를 체계적으로 연구했으며, 30년이 넘게 한유의 문학을 연구해 온 이종한 교수가 자세한 주석과 친절한 해제로 독자를 한유의 시 세계로 안내한다. 옮긴이가 한유의 산문 중 편지글을 뽑아 옮긴 《한유 서간문》(지식을만드는지식, 2021)과 함께 읽으면 한유의 사상과 문학관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200자평
당송 팔대가 중 한 사람이자 당시(唐詩)의 거두인 한유의 시 가운데 논시시(論詩詩) 20수를 골라 엮었다. ‘논시시’란 ‘시로써 시를 논한 시’, 즉 시로 쓴 시 비평이다. 한유는 문장으로 시를 쓰는 이문위시(以文爲詩)를 주장해 서정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던 시에 의론을 끌어들였으며 산문적 기법을 적극 활용해 이후 의론시인 송시가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했는데, 이러한 한유의 문학관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바로 논시시다. 고문의 대가였던 한유는 산문의 예술 특징을 시에 끌어들여 이후 논시시가 양산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으며, 옛사람의 진부한 시어를 답습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통해 구체적 표현을 개발해 냄으로써 논시시에 이런 기법이 뿌리를 내리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유의 작품과 논시시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이종한 교수가 정확한 번역과 상세한 해제, 깊이 있는 해설로 한유의 빼어난 작품들을 소개한다.
지은이
한유(韓愈, 768∼824)는 중국 중당(中唐) 때의 사상가요 정치가인 동시에 위대한 산문 작가이며 특색 있는 시인으로, 사상계·정계·문단 등 다방면에 걸쳐 걸출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자가 퇴지(退之)고 하내(河內) 하양(河陽) 곧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멍저우시(孟州市) 사람이다. 군망(郡望)을 중시한 당시 관습의 영향을 받아 본인 스스로 창려(昌黎) 사람이라고 한 관계로 ‘한창려(韓昌黎)’로, 마지막 관직이 이부시랑(吏部侍郎)이어서 ‘한 이부(韓吏部)’로, 시호가 ‘문(文)’이어서 ‘한문공(韓文公)’으로도 불린다.
한유는 위진남북조를 거치면서 쇠퇴한 유학을 부흥시키고 불교와 도교를 배척하는 주장을 전개했으며, 군벌들의 지방 할거(割據)를 반대해 토벌 전쟁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고 당시의 정치적 폐단을 공격하는 데 용감했으며, 지방관으로 있을 때 백성들을 위해 많은 치적을 남겼다
산문 방면에서 그는 육조(六朝) 이래 문단을 풍미해 온 변문의 폐단을 통렬하게 지적하고, 선진(先秦)과 양한(兩漢) 이전의 고문 전통을 회복할 것을 힘써 주장하면서 유종원 등 뜻을 같이하는 무리를 이끌고 당대(唐代) 고문운동을 주도했으며 시가(詩歌) 방면에도 창조 정신을 발휘해 신기하고 웅건한 풍격의 독창적인 일가의 경지를 이룩했다.
옮긴이
이종한(李鍾漢)은 1958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1981년 계명대학교 한문교육과를 졸업하고, 1983년과 1992년에 서울대학교 대학원 중어중문학과에서 문학 석사와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4년부터 계명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 몸담아 지금 중국어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0년 국립 타이완사범대학(國立臺灣師範大學), 1997년과 2017년 미국 미네소타대학교(University of Minnesota)와 이스턴미시간대학교(Eastern Michigan University)에서 연구 교수를 역임했다.
일찍이 시로써 시를 논한 비평 양식에 관심을 기울여 우리나라 중국 문학계 최초로 시로써 시를 논한 ‘논시시(論詩詩)’라는 특수한 비평 양식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논시시의 가장 전형적인 체재인 ‘논시 절구(論詩絶句)’를 중심으로 그 기원과 역사적 전개 과정 및 특징 등을 탐색해 〈역대 논시 절구 연구(歷代論詩絶句硏究)〉(서울대학교 문학 석사 학위 논문, 1983) 등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던 중 1980년대 후반에 들어와 당시 우리나라 중국 문학계의 연구가 시가 장르 일변도로 편중되어 있음을 문제점으로 진단하고, 연구가 크게 미진한 산문 장르로 관심을 돌려 한유(韓愈)를 중심으로 해당 연구에 착수했다. 그 성과로 나온 《한유 산문의 분석적 연구》(1992)는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의 산문 분야 제1호 박사 학위 논문으로 자리매김했다.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한유가 우리나라에 어떻게 전승되고 평가되었는지를 탐색해, 그 연구 성과를 타이완과 중국 학계에 알리는 노력을 시도했다. 즉, 우리나라의 한유 산문의 예술적 성취에 대한 평가를 타이완의 ‘제5회 중국 수사학 국제 학술 대회’(2003)에서 발표하고 〈韓國如何評論韓愈散文的藝術成就〉라는 논문을 《수사논총(修辭論叢)》 제5집(2003)에 게재한 것을 시작으로, 중국 차오저우시(潮州市)에서 열린 ‘2009 한유 국제 학술 대회’에서 한유 시문의 우리나라 전파 시기와 과정 및 배경에 대해 발표하고 〈韓愈詩文在韓國的傳播時期·過程和背景〉이라는 논문을 《저우커우사범학원 학보(周口師範學院學報)》 제33권 제1기(2010)에 게재했으며, 한유가 유학 방면에서 거둔 성취에 대한 우리나라에서의 평가를 베이징에서 열린 제1회 중국 경전의 해외 전파 문제를 다룬 국제 학술 대회에서 발표하고 〈韓國如何評論韓愈在儒學上的成就〉(2015)라는 논문을 대회 논문집(2016)에 게재했다.
그리고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한유의 산문 작품을 모두 우리말로 번역하고 상세한 해설과 주석을 붙였다. 그 작업은 한국연구재단의 ‘2007년 명저 번역 지원 사업’의 지원 아래 진행되어 《한유 산문 역주》(2012)라는 다섯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는데, 그 성과가 높이 평가되어 ‘2013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 학술 도서’로 선정되었다. 2020년에는 현전하는 세계 최초의 실록인 한유의 《순종실록(順宗實錄)》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상세한 주석을 붙여 《당 순종실록 역주》로 출간했는데, 그 책은 한국대학출판협회 ‘2020 올해의 우수 학술 도서’로 선정되었다.
한유를 위시한 중국 산문 연구 성과가 타이완과 중국 학계에서 높은 관심과 평가를 받아 두 곳의 권위 있는 학술지와 언론에 소개되었다. 즉, 중국 산문 연구의 권위자인 국립 타이완사범대학(國立臺灣師範大學)의 옌루이팡(顔瑞芳) 교수가 《한유 산문 역주》를 중심으로 한 성과를 〈韓愈在韓國〉이라는 제목으로 《국문천지(國文天地)》 제29권 제6기(2013)에 소개했고, 중국 송대(宋代) 산문 연구의 권위자로 중국산문학회 부회장인 화둥사범대학(華東師範大學)의 훙번젠(洪本健) 교수가 〈韓國李鍾漢敎授和他的韓愈硏究〉라는 제목으로 《저우커우사범학원 학보》 제33권 제1기(2016)의 ‘한유 연구’ 전란에 게재했다. 그리고 2009년 중국 차오저우에서 논문 발표를 할 때, 그 지역의 대표 방송국과 신문사에서 취재하고 상세한 내용을 TV 방송과 신문에 소개하기도 했다.
이 밖에 2011년부터 매주 한 번씩 계명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에서 ‘장자 읽기’ 세미나를 주도해 인문학 분야뿐 아니라, 사회 과학, 자연 과학, 공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교수들과 함께 《장자(莊子)》의 원전을 완독한 뒤, 《한비자(韓非子)》 읽기로 이어 학제 간 소통과 융합 연구도 도모해 오고 있다. 학술 연구 외에 계명대학교에서 학과장, 교무부처장, 명교생활관(기숙사)관장, 인문대학학장, 통번역대학원장, 기획정보처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쳐 지금은 동산도서관장을 맡아 학문과 대학의 발전에 공헌하고 있다.
차례
맹교 선생 시(孟生詩)
잡시(雜詩)
맹교에게 답하며(答孟郊)
술에 취해 맹동야를 만류하며(醉留東野)
병중에 장씨 댁 열여덟째에게(病中贈張十八)
팽성으로 돌아와(歸彭城)
현의 관아에서 감회가 있어(縣齋有懷)
봄날의 감회 2(感春 其二)
취중에 장 비서에게(醉贈張祕書)
인재를 추천하며(薦士)
최입지 평사에게(贈崔立之評事)
노동에게(寄盧仝)
노씨 댁 넷째 운부 사문 원장이 가을을 바라보며 지은 시에 답하며(酬司門盧四兄雲夫院長望秋作)
범양으로 돌아가는 무본 스님을 보내며(送無本師歸范陽)
장적을 놀리며(調張籍)
영 스님이 금 타는 소리를 듣고(聽穎師彈琴)
마 시랑이 술을 보낸 것에 답하며(酬馬侍郞寄酒)
장안성 남쪽에서 독서 중인 한부에게(符讀書城南)
복야 상공께서 조회에서 돌아와 보내 주신 시에 화답하며(和僕射相公朝迴見寄)
가도에게(贈賈島)
참고문헌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인재를 추천하며(薦士)
주나라 때의 시 삼백 편은
순정한 내용과 아름다운 시어로 서경과 통하네
일찍이 성인의 손을 거쳤으니
어찌 감히 의론을 할 수 있겠는가?
오언시는 서한 때에 나왔는데
소무와 이능이 맨 먼저 그 호칭을 바꾸어 내었네
동한 때엔 오언시가 점차 만연해
유파가 백 줄기 시내처럼 나뉘었네
건안 때엔 오언시에 능한 이가 일곱이었는데
우뚝 솟아 풍격과 가락을 바꾸었네
구불구불 이어져 동진과 유송에 이르러서는
기상이 날로 시들어 갔네
중간에 포조와 사영운을 손꼽을 수 있으니
동시대 시인에 비해 가장 청신 오묘하네
제와 양나라와 진과 수나라는
뭇 작품들이 매미 시끄럽게 우는 소리 같아
봄날의 상심을 찾고 화초를 따 오기에 급급해
그대로 답습해서 표절한 것이 가슴 아프네
우리 왕조에는 문학이 크게 성해서
진자앙이 비로소 높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네
갑자기 발흥해 이백과 두보를 얻었으니
온갖 작가들이 무시당하고 압박받는 곤욕을 치렀네
후에 서로 이어 나타난 시인들
또 제각기 문지방이나 내실의 경지에 이르렀네
그중 궁벽한 이 맹교는
타고난 재주가 실로 뛰어난 천리마 같네
깊이 관찰해 고금을 꿰뚫어 보고
표상 밖에서 유현하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네
허공을 가로질러 생경한 말을 얽어 놓는데
평온하면서도 힘이 오를 밀어젖히네
완곡한 정서를 펴낼 때는 곡절함을 다 부리고
맹렬한 격정을 떨쳐 낼 때는 바다의 파도를 말아 올리듯
꽃같이 아름다운 문채는 천연의 수려함을 본떴고
민첩하고 신속한 구상은 메아리를 능가하네
몸가짐은 사람이 지켜야 할 법도를 실천해
욕됨을 달게 여기고 권세가에게 아첨한 것 부끄러워했네
맹자는 사악함과 올바름을 분간하나니
눈동자로 바른 것과 어두운 것을 알아냈네
아득하니 순수하고도 정밀해
부박하고 조급한 것을 진정시킬 수 있네
궁색하게 율양현위를 맡았는데
나이 오십에 거의 늘그막
부지런히 노모 위해 좋은 음식 마련하느라
갖은 고초 오래도록 감내했네
세상 사람 중에 그를 알아주는 이 누구이던가?
손가락질하고 눈길 흘리며 다투어 조소하고 무시하네
성명한 황제께서 내버려진 인재 찾으시니
준걸스러운 선비가 날마다 등용되네
조정에 훌륭한 재상이 있어
즐겨 예우하며 고르게 은덕을 베푸네
하물며 귀숭경과 장건봉의 보살핌을 받아
두 공께서 연달아 애석해하고 동정함에랴!
조정 대신이 입 기운 불어 세워 준다면
굳센 화살이 노 땅의 비단 관통하는 것과 같을 터
어찌하여 오래도록 아무 성취 이루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를 내게 알리도록 했겠는가?
서리 바람이 가을 국화를 시들게 하고
아름다운 절기에 바람이 불어 모자 떨어지게 하네
장차 결연히 떠나가려는 것을 생각하니
외물에 느껴 헤어지기 아쉬운 감회 더하네
저 미미한 물속의 노랑어리연꽃마저도
오히려 번거롭게 좌우에서 가려 따며
노나라 임금은 나라가 지극히 작으나
묘당의 솥은 오히려 고나라 것을 받아들이네
마침 옥돌과 옥을 가리는 때를 만났으니
어찌 홀과 대모를 버리는 일이 있겠는가?
아득하니 나의 근심은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처럼 펄럭이네
황제에게 진언할 길이 없음을 부끄럽게 여기며
밤낮으로 오직 마음의 기도만 할 뿐
학의 날개는 태어나면서부터 생겨난 게 아니고
변화는 어미가 쪼아 부화시켜 준 것
큰 바다의 파도로 통하는 것 어려운 일 아니고
촌척의 땅만 옮겨 주면 물길로 나아갈 수 있는 법
유능한 인재 예우하는 일 서두르지 않는다면
때가 지난 뒤에 한갓 후회만 할 뿐
죽어 가는 이 구하려고 팔진미 갖추는 건
한 대소쿠리의 음식물 차림보다 못한 법
하찮은 시이지만 공께서는 비웃지 마실지니
점잖고 화락하신 군자님은 신령도 위로하실 터
周詩三百篇 雅麗理訓誥
曾經聖人手 議論安敢到
五言出漢時 蘇李首更號
東都漸瀰漫 派別百川導
建安能者七 卓犖變風操
逶迤抵晉宋 氣象日凋耗
中間數鮑謝 比近最淸奧
齊梁及陳隋 衆作等蟬噪
搜春摘花卉 沿襲傷剽盜
國朝盛文章 子昻始高蹈
勃興得李杜 萬類困陵暴
後來相繼生 亦各臻閫隩
有窮者孟郊 受材實雄驁
冥觀洞古今 象外逐幽好
橫空盤硬語 妥帖力排奡
敷柔肆紆餘 奮猛卷海潦
榮華肖天秀 捷疾逾響報
行身踐規矩 甘辱恥媚竈
孟軻分邪正 眸子看瞭眊
杳然粹而精 可以鎭浮躁
酸寒溧陽尉 五十幾何耄
孜孜營甘旨 辛苦久所冒
俗流知者誰 指注競嘲慠
聖皇索遺逸 髦士日登造
廟堂有賢相 愛遇均覆燾
況承歸與張 二公迭嗟悼
靑冥送吹噓 强箭射魯縞
胡爲久無成 使以歸期告
霜風破佳菊 嘉節迫吹帽
念將決焉去 感物增戀嫪
彼微水中荇 尙煩左右芼
魯侯國至小 廟鼎猶納郜
幸當擇珉玉 寧有棄珪瑁
悠悠我之思 擾擾風中纛
上言愧無路 日夜惟心禱
鶴翎不天生 變化在啄菢
通波非難圖 尺地易可漕
善善不汲汲 後時徒悔懊
救死具八珍 不如一簞犒
微詩公勿誚 愷悌神所勞
마 시랑이 술을 보낸 것에 답하며(酬馬侍郞寄酒)
술 한 병은 정으로 보내온 것
시 네 구에도 뜻이 많을 수 있네
가을이 와도 시와 술이 없다면
저 달빛일랑 어이할 것인가!
一壺情所寄 四句意能多
秋到無詩酒 其如月色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