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타우리스의 이피게니〉는 괴테가 고대 그리스 문화에 대한 동경과 인도주의 정신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신의 저주로 누대에 걸쳐 골육상잔을 반복한 아트레우스 가문의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아가멤논은 동생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유혹해 간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리스 연합군을 이끌고 원정에 나선다. 디아나 여신이 아가멤논의 실수를 문제 삼아 아울리스항에 출항할 배들을 묶어 두자 아가멤논은 여신을 달래기 위해 큰딸 이피게니를 제물로 바친다. 화가 풀린 여신은 이피게니를 구름으로 감싸 타우리스로 데려간다. 타우리스의 왕은 모든 이방인을 디아나 여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오랜 관습을 따르지 않고 이피게니를 디아나 여신의 사제로 삼는다. 한편 트로이 성을 함락하고 개선한 아가멤논은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 간부의 손에 살해된다. 아버지 죽음에 복수하고자 어머니를 살해한 오레스트는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기다 아폴론의 신탁을 얻어 타우리스에 이른다.
인간 구원이라는 〈이피게니〉의 주제는 작가 괴테의 체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바이마르에서 슈타인 부인을 알게 된 괴테는 그녀의 순수한 인간성에 감화되어 질풍노도(Sturm und Drang)기의 격정과 불안, 거칠고 혼미한 정신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체험에서 그는 인간의 무한한 이해심, 신뢰와 사랑이 타인의 인간애와 도덕성을 일깨우고 발전시키며 불안한 영혼에 조화와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고결한 여성의 맑고 순수한 인간성이 인간의 정서와 도덕에 미치는 영향은 《젊은 베르터의 슬픔》과 〈파우스트〉를 비롯한 괴테의 여러 작품에서 주제가 되고 있지만 〈이피게니〉에 가장 잘 표현되어 있다. 괴테가 슈타인 부인에 의해 구원되었듯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오레스트는 누나 이피게니의 맑고 깨끗한 인간성에 의해 구원된다.
200자평
괴테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소재를 얻어 쓴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는 여러 작품에서 다룬 “인간 구원”의 주제가 더욱 두드러진다. 괴테는 이피게니의 순수함과 부드러움을 겸비한 여성적 인간상에 세상의 모든 죄악을 씻어 내고 갈등을 화해시키는 신적 치유력을 부여해 그녀를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경지로 끌어올린다.
지은이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1749년 8월 28일 독일 마인강 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부친 요한 카스파르(Johann Kaspar) 괴테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황실 고문관이라는 명예직을 가진 부유한 시민으로 합리적이고 이지적인 성격이었다.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인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Katharina Elisabeth)는 라틴계 특유의 풍부한 감정과 활달하고 명랑한 성격의 여성으로 어린 아들에게 동화를 들려주고 인형극을 접하게 하여 아들의 예술 감각을 일깨워 주었다.
괴테는 1765년 10월 부친 뜻에 따라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한다. 1771년 8월 법학석사 학위 시험을 치른 뒤 고향으로 돌아간다. 고향에서 변호사로 일을 시작하지만 본업보다는 문학에 더 힘을 기울인다. 이 시기 〈무쇠 손 괴츠 폰 베를리힝겐〉(1773)을 발표한다. 이후 3년은 괴테 일생에서 가장 풍성한 결실의 기간이다. 《젊은 베르터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1744)도 이때 발표된다.
1776년 괴테는 추밀원 고문관에 임명되는 것을 시작으로 10년간 여러 분야의 행정 업무를 담당한다. 1782년에 재무상이 되는 한편 신성로마제국 황제 요제프 2세로부터 귀족 작위도 받는다. 이 시기 바이마르 궁정의 여관 샤로테 폰 슈타인 부인과의 정신적 교류 영향으로 질풍노도기의 과도한 격정에서 벗어나 조화와 중용을 지향함으로써 좀 더 원숙한 문학 세계로 들어선다. 그 밖에 괴테는 지질학, 광물학, 해부학, 식물학 등 자연과학 연구에도 몰두한다. 1786년 9월 3일 괴테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바이마르를 떠나 이탈리아로 향한다. 이탈리아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을 접한 괴테는 이성과 감성을 조화시키고 중용을 지키며 교양을 갖춘 원숙한 인간상을 절제된 언어와 짜임새 있는 형식으로 표현하려는 고전주의 문학관을 확립한다.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후 별 성과 없이 여러 해를 지내던 괴테는 10년 연하의 실러와 아름다운 우정 관계를 맺는다.
1828년 카를 아우구스트 대공의 사망과 2년 뒤 아들의 죽음으로 최대 시련을 맞은 괴테는 미완성 작품에 매달림으로써 그 시련을 극복하려고 한다. 〈파우스트〉는 그때까지 인간 정신이 이룩한 모든 것과 예언적으로 이후에 창조될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방대한 스케일, 다양한 운율, 풍부한 상징 등으로 독일 문학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대작이다. 인간의 한평생이라 할 수 있는 60년이란 긴 세월 동안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던 〈파우스트〉의 완성과 함께 괴테의 일생도 종결된다. 괴테는 1832년 3월 22일 향년 83세로 눈을 감는다.
옮긴이
윤도중
서울대학교 문리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뮌헨대, 본대, 마인츠대에서 수학한 뒤 주한독일문화원, 전북대학교를 거쳐 숭실대 독문과 교수로 정년퇴직하고 명예교수가 되었다. 한국독어독문학회장, 숭실대학교 인문대학장을 지냈고 레싱, 괴테, 실러 등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저서 《레싱: 드라마와 희곡론》(2003) 이외에 다음을 번역 출간했다.
프란츠 메링, 《레싱 전설》(2005)
고트홀트 레싱, 《라오콘: 미술과 문학의 경계에 관하여》(2008), 《함부르크 연극론》(2009)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괴테 고전주의 희곡선》(1996)
카를 추크마이어, 《쾨페닉의 대위》(1999)
고트홀트 레싱, 《에밀리아 갈로티》(2009), 《현자 나탄》(2011), 《미나 폰 바른헬름, 또는 군인의 행운》(2013)
프리드리히 헤벨, 《마리아 마그달레나》(2009), 《유디트》(2010)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홈부르크 공자》(2011)
프리드리히 실러, 《돈 카를로스》(201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2020)
에두아르트 뫼리케, 《프라하 여행길의 모차르트/슈투트가르트의 도깨비》(2021)
차례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제5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오레스트 : (무대를 향해) 동지들, 더욱 힘을 내라. 적을
물리쳐라. 단 몇 순간만 버텨라. 적의
수가 많다고 물러나지 말고 나와 누님께
배로 갈 길을 지켜라.
(왕을 보지 못하고 이피게니에게)
어서 오세요, 우리는 발각되었어요.
도주할 짬이 별로 없어요. 자, 어서.
(왕이 눈에 띈다.)
토아스 : (칼을 잡으며) 짐의 면전에서 칼을 뽑아 든 자는
누구든 무사하지 못하리라.
이피게니 : 분노와 살인으로
여신의 처소를 더럽히지 마십시오.
병사들에게 휴전을 명하소서. 사제의 말을,
누나의 말을 들으세요.
오레스트 : 말씀해 주세요,
우리를 위협하는 저자가 누굽니까?
이피게니 : 내게 두 번째
아버님이 되어 주신 왕이시니 경의를 표해라.
아우야, 나를 용서해 다오. 내 천진한 마음이
우리의 운명을 통째로 전하의 손에
맡겼단다. 내가 너희의 계략을 실토했고
내 영혼을 배신으로부터 구했다.
138-1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