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중남미 고전문학의 백미인 호르헤 이삭스(Jorge Isaccs)의 《마리아(María)》(1867)는 목가적 풍경을 배경으로 한 전원 애정 소설로 19세기 중남미 감상적 낭만주의 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아름다운 고향 정취를 배경으로 이룰 수 없는 남녀의 운명적이고도 비극적인 사랑을 주제로 한 《마리아》는, 소설 구성 요소의 뼈대가 되는 작품의 공간 배경에서부터 시대적인 상황 그리고 등장인물의 성격과 사건 전개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소설 장치의 곳곳에서 작가의 실제 모습과 당시 사회 모습이 드러나는 자전적 소설이기도 하다. 작가의 자전적 모습은 주인공의 관점을 따라 묘사되는 1인칭 서술 기법을 통해 더욱 두드러진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은 실제 작가의 감정이입을 비롯한 주관적 관점이 주인공의 시각을 통해 직접 작품 속에 드러남으로써 독자들의 낭만적 감수성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한다. 물론 작가 스스로 언급했듯 생애 가장 아름다웠고 행복했던 그의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들은 작품 곳곳에서 표현된다.
200자평
콜롬비아 농촌의 목가적 풍경을 배경으로 한 애정 소설로, 19세기 중남미 낭만주의 소설의 대표 작품이다. 중남미라는 지역적 한계성을 최초로 뛰어넘은 세계적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사랑이라는 영원불변의 주제를 감상적인 분위기와 아름다운 문체에 담아 전해 주는 이 책은 시대를 뛰어넘어 여전히 많은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지은이
호르헤 이삭스(Jorge Ricardo Isaacs Ferrer, 1837∼1895)는 1837년 4월 1일 콜롬비아 안티오키아주의 칼리에서 부유한 유태계 영국 상인 가정의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11살의 어린 나이에 고향 칼리를 떠나 수도 보고타에서 5년 동안(1848∼1852) 수학한 후, 1856년 19살 때 펠리사와 결혼하여 1958년 첫딸 클레멘티나를 얻는다. 1860년 중앙정부에 반기를 든 모스케라 장군이 이끄는 내전에 군인으로 직접 참여하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쓴 여러 시들을 모아 1864년 보고타의 문학 동아리이자 지식인 모임인 《모자이크》에 발표해 큰 호평을 받는다. 같은 해 모스케라 장군에 의해 부에나벤투라와 칼리 사이의 도로를 건설하는 다과의 도로 건설 부감찰감으로 임명되면서 힘든 현장 작업 중에 소설 《마리아》를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모자이크》에 첫 번째 작품인 시들을 발표한 이후 부유한 가정환경과 유학 시절의 다양한 사회 경험, 그리고 내전 참가의 경험 등으로 인해 정치 세계에 몸담게 되고, 1866년 카우카주를 대표하는 공화당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정치계에 입문한다. 1867년 6월 보고타에서 1864년부터 착수한 《마리아》 초판을 발행하고, 같은 해 7월부터 12월까지 보수당 신문인 《라 레푸블리카(La República)》 편집장으로 일한다. 《마리아》 출간 이후 호르헤 이삭스는 낭만주의 작가로서의 새로운 명성을 쌓아 가지만 사회 현실 문제의 직접적 참여라는 그의 정치적 행보는 급진당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더욱 심화된다. 1869년 급진당에 가입한 후 다음 해 칠레 산티아고 콜롬비아 영사로 임명되어 1870년부터 1872년까지 2년 동안 칠레 산티아고의 영사직을 수행했으며, 1876년 교육 개혁을 위해 노동자를 위한 야간학교를 최초로 설립하고 《학생 교육(El Escolar)》지라는 신문을 감독한다. 이후 혁명정부에 가담하여 보수당과 투쟁하고 사촌인 세사르 콘코와 함께 자유당 프로그램을 재발행하며, 1877년 카우카주 장관으로 임명됨과 동시에 재무장관을 역임한다. 1880년 합법적인 중앙정부를 전복시키는 시민군의 수장으로서 안티오키아의 급진 혁명을 지휘했고, 이를 바탕으로 《안티오키아의 급격한 혁명(La revolución radical en Antioquia)》(1880)을 출간한다. 현실 정치에 대한 그의 적극적인 관심은 아르헨티나 로카 대통령에게 헌사한 시집 《사울로(Saulo)》(1881)에서도 잘 나타난다. 1890년 석탄 채굴을 위해 광산업에 매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대서양 콜롬비아 공화국의 석탄들(Huelleras de la República de Colombia en la Costa Atlántica)》(1890)을 출간하기도 했으며, 다음 해인 1891년 1월 12일 문학 동지로서 자신과 지적 교감을 나누었던 호세 아순시온 실바(José Asunción Silva)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시 〈엘비라 실바(Elvira Silva)〉를 발표한다. 그리고 이해 《마리아》를 재수정해 세 번째로 출간한다. 이후 정치색이 짙은 시집 《코르도바의 땅(La Tierra de Córdova)》(1893)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작품 활동을 마친다. 정치적 좌절과 사업 실패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말년을 보낸 그는 1895년 4월 17일 콜롬비아 이바게(Ibagué)에서 58세의 나이로 고독하게 생을 마감한다.
옮긴이
이상원은 고려대학교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한 후 콜롬비아 하베리아나(Javeriana) 대학교에서 중남미 문학(소설) 전공으로 문학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대학교(Complutense de Madrid)에서 박사후과정을 마친 후 현재 배재대학교 스페인어중남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논문으로 〈《원숭이 문법학자(El mono gramático)》에 나타난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의 메타픽션 비평〉, 〈언어의 가변적 유희성을 통한 파스(Paz)의 시와 창작의 세계〉, 〈중남미 서사문학에 나타난 신화의 접근방법론 고찰〉, 〈카를로스 푸엔테스 : 문화적 기호와 신화 그리고 시대정신의 비판〉, 〈엘리손도(Elizondo) : 텍스트 글쓰기와 자의식 언어의 서술적 책략〉, 〈씨앗으로의 여행에 나타난 역전시간성의 연구〉, 〈중남미 현대 증언소설의 문학적 담론에 관한 고찰〉 등이 있으며, 저서로 《스페인어 문화》(공저), 《라틴아메리카의 문화 속으로》(편저) 등이 있다.
차례
귀향
해후
사랑의 속삭임
불길한 예감
비밀
사냥
사랑의 아픔
이별
기나긴 여정
마지막 사랑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첫사랑! …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고귀한 자존심, 사랑하는 여인에게 모든 것을 바쳤던 달콤한 희생, 모든 눈물의 대가로만 얻을 수 있는 행복감, 신의 은총으로 다가서는 삶의 진정한 의미, 미래를 위한 향기로운 입맞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추억 속의 불빛,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순수한 영혼의 아름다운 꽃망울, 질투심마저도 빼앗을 수 없는 마음의 보물, 아찔할 정도로 정신을 잃게 하는 감미로운 황홀경, 하늘의 영감… 마리아! 아, 나의 첫사랑 마리아! 얼마나 당신을 사랑했는지 또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지!
2.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무엇인가 내 앞으로 부딪치듯 날아왔다. 나는 순간 몸을 움찔했다. 퍼덕거리는 새의 날갯짓 같았다. 무엇인가 알아보기 위해 즉시 그것이 향한 나무숲을 쳐다보았다. 검은 새였다.
내 방에는 찬 기운이 서려 있었다. 책상 위 꽃병에는 마리아가 아침에 꽂아 둔 백합꽃들이 시들고 색이 바랜 채 덩그러니 외롭게 남아 있었다. 돌연한 섬광에 한줄기 바람이 일어 갑자기 촛불을 꺼 버렸다. 바위산 정상에서 굴러 떨어지는 거대한 손수레 같은 천둥소리가 계속 온 사방에 울려 퍼졌다. 흐느끼는 듯 울부짖는 처절한 자연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의 영혼은 애잔한 슬픔에 젖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