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레터 [주간 인텔리겐치아]입니다.
19세기 이후 역사는 여러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과거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깨졌을 뿐 아니라 역사에 아무런 효용이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습니다. 사실 지금도 역사는 암기해야 할 이름과 연도가 넘치는 재미없는 과목으로 비치거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등 다소 딱딱한 당위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역사는 생각만큼 과묵하지 않습니다. 정치적 사건, 경제 구조만으로 포착할 수 없는 과거의 다양한 면모에 주목하기 시작한 역사가들은 미시사, 생태환경사, 지구사 등 새로운 역사‘들’을 써 나가고 있습니다. 역사의 풍성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알려 주는 역사가들을 만나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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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대화하는 역사가 《에드워드 카》
*2023년 11월 22일 출간 예정
에드워드 카에게 역사란 과거 사건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였습니다. 카는 역사가가 현재와 미래의 필요에 맞게 과거 사실들을 해석하고 새롭게 재현해야 하며, 자신이 속한 시대와 사회의 제약에서 벗어나 시야를 미래로 확장할 때 객관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카는 오랜 기간 소비에트 러시아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양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신음하던 서구 사회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방안을 찾는 일에 전력했습니다. 이 책은 외교관, 국제관계학 교수, 언론인, 역사학자 등 다방면에서 활약한 카의 생애를 훑으며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면모를 집중 조명합니다. 카가 과거와 나눈 생생한 대화에 귀 기울여 보시길 바랍니다.
박원용 지음 |
대문자 역사에서 복수의 역사로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유럽을 지방화하기》
근대 역사학은 장소들의 역사적 차이를 단일하고 동질적인 역사적 시간의 격차로 환원했습니다. 유럽의 경험을 역사 발전의 유일한 경로로 간주하면서 타 대륙은 유럽이 이미 지나친 단계를 밟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디페시 차크라바르티는 이를 비판하며 유럽을 하나의 지방으로, 유럽의 발전을 하나의 역사적 경험으로 봐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대문자 역사(History)”에 귀속되지 않는 다양한 “역사들(histories)”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사상과 장소의 관계, 보편성과 차이, 역사적 시간성에 대한 차크라바르티의 비판적 성찰을 탐색합니다. 비유럽 지역뿐 아니라 농민, 노동자, 여성 등 기존의 역사가 외면한 이들에게까지 가닿는 새로운 역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택현 지음 |
당대인의 눈으로 보는 역사 《원서발췌 16세기의 무신앙 문제: 라블레의 종교》
프랑수아 라블레는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 등 개성 넘치는 작품들로 오랫동안 ‘무신론자와 자유사상가의 선구자’라 평가받은 작가입니다. 그러나 아날학파의 역사가 뤼시앵 페브르는 그러한 평가가 현대의 개념과 언어로 과거를 살피는 ‘시대착오’라며 이의를 제기합니다. 페브르는 삶, 철학, 언어, 과학 등 16세기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그 시대 사람들의 심성을 재구성합니다. 그 결과 16세기 프랑스에서 기독교는 삶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 일상과 분리할 수 없었고, 당대의 과학과 철학은 무신론을 뒷받침할 그 어떤 “심성적 도구”도 제공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당대인의 눈으로 과거를 이해하는 방법을 보여 주는 책입니다.
뤼시앵 페브르 지음, 김응종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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