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제인 오스틴은 《에마》를 집필하면서 “나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그리 좋아하지 않을 여주인공”에 대해서 쓰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과연 그녀의 예상은 틀리지 않아서 에마를 그녀의 소설 여주인공 중에서 가장 매력이 덜한 인물로 꼽는 독자들이 적지 않다.
에마는 유한계급의 철없는 아가씨다. 부유한 집안 덕분에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고, 고민거리라고는 고작해야 무료하고 권태로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는 것이다. 그러던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16년간 한 가족처럼 지내던 테일러 양이 웨스턴 씨와 결혼하자 그 결혼이 자기가 주선한 덕분이라고 확신하고, 남들의 결혼을 주선하는 일을 최고의 재미로 삼게 된다. 때마침 사생아인 해리엇 스미스을 알게 되어 그녀에게 관심을 쏟으며 마치 인형놀이 하듯이 그녀를 그럴듯한 신사와 결혼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에마》는 자기의 오만함을 통찰해 내고 자신의 감정에서조차 진실을 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달아 가는 한 인물을 통해 보다 철학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화자가 말하듯이, “완벽한 진실이 인간에게 밝혀지는 일은 거의 없고, 어떤 일에 약간 속지 않거나 착각하지 않는 경우도 거의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자기기만과 미혹을 에마라는 인물을 통해 선명해 드러내 보인 이 소설에서 제인 오스틴은 자기기만과 착각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인간의 약점이나 결함을 파헤치고 폭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러한 기만을 조롱하면서도 따뜻하게 포용하는 작가 정신을 발휘한다. 사회적 편견이나 속물적인 고정관념의 “온갖 결함을 가진” 문제적인 인물 에마 우드하우스가 나이틀리의, 나아가 작가의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소설의 여러 부분에서 드러나듯 그녀가 타고난 선의와 올바른 심성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에마》는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해 본인이 가진 결함을 극복하고 숨겨져 있던 스스로의 소중한 자질을 발현시켜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는 한편의 성장소설이다.
200자평
이 소설의 주인공 에마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 가운데 독자들의 반응이 가장 엇갈리는 인물이다. 유한계급의 높은 신분을 가진 에마를 통해 제인 오스틴은 자신이 천착한 하나의 보편적인 주제, 즉 자기 인식에 이르는 지난한 과정을 더욱 자유롭게 탐구한다. 에마의 서사를 중심으로 원서의 중요한 부분을 약 25% 발췌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소설에 담긴 오스틴의 주제 의식을 더욱 선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
제인 오스틴(Jane Austen, 1775∼1817)은 1775년에 스티븐턴 교구 목사의 일곱 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열두 살 때부터 시와 단편소설, 희곡을 쓰기 시작했고, 스무 살에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해 1795년부터 1799년 사이에 《오만과 편견》, 《분별력과 감수성》, 《노생거 사원》을 완성했다. 1800년 부친의 은퇴와 더불어 바스로 이주하고, 1805년 부친의 사망 후 셋집과 친척 집을 전전하다가 1809년에 오빠 에드워드의 집이었던 초턴의 코티지에 정착할 때까지는 작품 활동이 그리 왕성하지 못했다. 초턴에서 생애의 마지막 8년 동안, 오스틴은 《맨스필드 파크》, 《에마》, 《설득》을 완성할 수 있었고 1816년 마흔두 살의 나이에 병으로 사망했다.
오스틴은 생전에 발표된 작품들이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사후에는 찰스 디킨스와 조지 엘리엇 등 빅토리아조의 소설가들에게 가려서 그리 인정을 받지 못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조지 헨리 루이스와 헨리 제임스와 같은 평자들의 높은 평가에 힘입어 문학 정전의 반열에 들었으며 대중에게도 큰 인기를 얻었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오스틴의 작품은 수백만의 열광적인 독자들을 확보했고 영화, 연극, 드라마 등에서 무수히 개작되면서 대중적인 문학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옮긴이
이미애는 현대 영국 소설 전공으로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동 대학교에서 강사 및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조지프 콘래드, 존 파울즈, 제인 오스틴, 카리브 지역의 영어권 작가들에 대한 논문을 썼고, 역서로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등대로》, 《런던 거리 헤매기》, 《지난날의 스케치》, 《올랜도》, 조지 엘리엇의 《아담 비드》, 조지프 콘래드의 《노스트로모》, 제인 오스틴의 《설득》, 《에마》, J. R. R. 톨킨의 《호빗》, 《반지의 제왕》(공역), 《위험천만 왕국 이야기》, 《톨킨의 그림들》, 토머스 모어의 서한집 《영원과 하루》, 리처드 앨틱의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과 사상》 등이 있다.
차례
제1부
제2부
제3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걱정하지 마, 해리엇, 나는 가난한 노처녀가 되지 않을 테니까. 사람들이 독신 생활을 경멸하는 것은 가난 때문이야. 입에 겨우 풀칠이나 하는 독신 여자는 우스꽝스럽고 불쾌한 노처녀가 되겠지. 하지만 재산이 많은 독신 여자는 늘 존중 받고 누구보다도 쾌활하게 생활할 거야. 이 차이는 세상살이의 일반적인 상식과 그리 어긋나지 않아. 수입이 적으면 마음이 좁아지고 심술궂어지니까. 근근이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은 협소한 환경에서 열등한 사람들과 살아갈 테니까 품위가 없고 성마르게 되는 게 당연해.”
2.
도저히 봐줄 수 없는 허영심으로 그녀는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알고 있다고 믿었었다. 용서할 수 없는 교만으로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운명을 정해 주겠다고 말했었다. 그러고는 도처에서 그녀의 착각이 입증되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행한 일을 만들어 냈다. 해리엇과 자기 자신에게도, 그리고 나이틀리 씨에게도 재앙을 가져온 것이다. 더없이 대등하지 못한 이 결합이 일어난다면, 그것의 발단을 제공한 것에 대해서는 오로지 스스로를 탓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