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문명소사(文明小史)≫는 전체 회목이 60회에 달하는 리바이위안(李伯元)의 대표적인 장편소설이다. 청일전쟁에서 패하고 잇달아 경자사변을 겪으면서 중화민족의 자존심에 큰 타격을 받은 청 정부가 새로운 정치와 새로운 학문을 내세워 근대화를 추진했던 때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정부 관료들은 하나같이 부패하고 무능한데, 작가는 시대의 변화를 읽어 내지 못하고 여전히 구습에 얽매여 입으로만 ‘신정’, ‘신학’을 부르짖는 이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폭로하면서 질책과 비난도 아끼지 않는다. 근대로 전환하는 시대적 격변기에 가짜 문명인들이 이끄는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동과 어이없는 일화들이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60회라는 긴 편폭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청대 말, 관리들의 부패상을 폭로하고 질책한 견책소설
≪문명소사(文明小史)≫는 청대 말에 유행한 견책소설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 준다. 관리들은 무능하고 부패했다. 잇속을 따지느라 무고한 백성이 곤란에 빠진 것도 모른 척한다. 유 지부는 입신하기 위해 외교 문제에 힘을 쏟다가 늠생들의 원망을 사고, 뒤이어 부임해 온 부 지부는 공을 세우는 데만 혈안이 되어 무고한 선비들을 잡아 가둔다. 이 소동을 겪은 뒤에도 관리는 각종 명목세로 자금을 마련해 표창받을 궁리만 하고 있다.
근대화를 이끄는 문명인의 실상
장 나리는 영어깨나 한다는 인물이다. 그러나 정작 서양인은 그의 말을 한마디도 못 알아듣는다. 참다못한 서양인이 중국어로 말한다. “당신 말은 못 알아듣겠소.”
김 나리는 외국에 얼마간 나가 있다 돌아온 인물이다. 돌아와 보니 시대가 변해 관리들이 그를 보는 눈빛이 새삼 달라져 있다. 서양인과 중국인 사이에 일어난 작은 소동이 점점 커지자 이 일로 총독의 눈 밖에 날까 전전긍긍, 안절부절이다.
손 지부는 자신이 제안한 건의서대로 한다면 승진에 문제가 없다고 자신한다. 건의서는 다름 아니라 각 성에 할당된 전쟁배상금 마련을 위해 온갖 종류의 명목세를 신설할 것에 관한 내용이다. 자금을 마련해 보고하면 표창이 따를 것이니 승진은 문제없다고 한다.
어리석은 백성들
작가가 견책소설이라는 장르를 빌려 당대 관리들만 질책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시대의 변화에 둔한 백성들의 어리석음도 우회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무조건 서양인을 배척하는 태도, 문제를 이성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흥분해 일을 크게 벌이는 모습들이 풍자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200자평
루쉰(魯迅)으로부터 우젠런, 류어, 쩡푸와 더불어 청대 말기 4대 견책소설(譴責小說) 작가로 추앙받은 리바이위안(李伯元)의 장편소설이다. 발췌한 부분은 아잉(阿英)이 작가의 필치가 절정에 이른 대목이라고 평한 바 있다. 문명인을 자처하며 근대화를 이끄는 관료들의 모순된 언행이 풍자적으로 묘사돼 있다.
청일전쟁에서 패하고 잇달아 경자사변을 겪으면서 중화민족의 자존심에 큰 타격을 받은 청 정부가 새로운 정치와 새로운 학문을 내세워 근대화를 추진했던 때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정부 관료들은 하나같이 부패하고 무능한데, 작가는 시대의 변화를 읽어 내지 못하고 여전히 구습에 얽매여 입으로만 ‘신정’, ‘신학’을 부르짖는 이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폭로하면서 질책과 비난도 아끼지 않는다. 근대로 전환하는 시대적 격변기에 가짜 문명인들이 이끄는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동과 어이없는 일화들이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60회라는 긴 편폭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지은이
호는 바오자(寶嘉),별칭은 난팅팅장(南亭亭長)으로 장쑤성(江蘇省) 창저우(常州) 사람이다. 1867년에 태어나 1906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루쉰(魯迅)에 의해 우젠런(吳趼人), 류어(劉鶚), 쩡푸(曾樸)와 더불어 청대 말기 4대 견책소설(譴責小說) 작가로 추앙받은 뛰어난 작가다. 주요 소설 작품으로는 ≪관장현형기(官場現形記)≫, ≪활지옥(活地獄)≫, ≪해상번화몽(海上繁華夢)≫ 등 10여 편이 있다. 그는 소설 창작뿐만 아니라 상하이(上海) 언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언론인이기도 했다. ≪유희보(遊戱報)≫, ≪세계번화보(世界繁華報)≫ 등을 직접 창간했고, 상무인서관에서 간행한 ≪수상소설(繡像小說)≫ 편집장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여섯 살 때 부친을 여의고 산둥성(山東省)에서 현령으로 재직하고 있던 백부 리이칭(李翼靑)의 집에서 성장했다. 백부의 엄격한 교육 아래 팔고(八股), 시문, 사곡, 그리고 서화 등 여러 방면에 관한 소양을 쌓았고 수재(秀才)에도 합격했다. 26세 때 관직에서 물러난 백부와 함께 창저우(常州)로 가서 그 후로 5년간 선교사에게 영어를 배웠다. 백부가 세상을 뜬 뒤, 그는 관리의 부패상에 염증을 느껴 과거 응시를 포기하고 상하이로 옮아가 언론·출판 사업에 종사했다. 상하이에서 10년간 소설을 창작하고 언론·문화계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다가 과로로 병을 얻어 39세의 짧은 일기로 세상과 작별했다.
옮긴이
부산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에서 전임연구원으로 있다. 중국과 서양의 문화 교류사에 관심이 많으며 중국고전문학의 서양으로의 전파와 번역에 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차례
설자(楔子)
제1회 교사관에서 가노(家奴)가 역사를 이야기하고, 고승점에서 태수가 서양인을 알현하다
제2회 대세를 인식한 자사(刺史)는 외교를 중시하고, 소문에 미혹된 동생(童生)은 일을 일으키다
제3회 광산 기사는 담벼락을 넘어 목숨을 구하고, 거인은 옥에 감금돼 죄명을 받다
제4회 창졸간에 도망쳐서 액운이 아직 물러가지 않고, 중국인과 서양인 모두가 문책해 어진 태수가 난처해지다
제5회 뇌물을 쓰는 교활한 관리가 여비를 주고, 꾐에 빠진 광산 기사가 배상금을 요구하다
제6회 새로 온 태수가 말에서 내려 위엄을 부리고, 힘없는 서생들은 문인 모임을 열어 체포당하다
제7회 비밀결사 단체를 잡아서 우레같이 맹렬하고 바람같이 신속하게 집행했으며, 세관을 설치해 허황된 망상을 하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주인과 손님이 각각 제자리에 앉자 중국인 시종이 차를 가지고 왔다. 장 나리는 자신의 재능과 학문을 뽐내고 싶어서 ‘원’, ‘투’, ‘스리’, ‘컴 온’, ‘예스’ 등 외국어를 떠들어 댔지만 말이 적확하지 않았다.
광산 기사는 처음에는 귀를 쫑긋 세우고 들으면서 몇 마디 대꾸를 했으나 나중이 되자 이마를 찌푸리기도 하고 입을 오므리고 웃기도 하면서 한마디도 맞장구치지 않았다. 지부와 지현은 마음속으로 두 사람이 이야기가 잘 통하는 것으로 여겼다. 잠시 후 광산 기사는 빙그레 웃으며 중국어로 장 나리에게 말했다. “장 선생님, 아무래도 당신들 귀국 말로 말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당신이 하는 외국어는 내 통역은 물론이거니와 나도 한마디도 못 알아듣겠습니다.”
최근 몇 년간 신정치와 신학문이 떠들썩하게 일어났는데 그중에는 잘 해낸 것도 있고 잘 해내지 못한 것도 있으며, 배워서 성공한 것도 있고 실패한 것도 있습니다. 지금은 잘하든 못하든 간에 우선 그것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며, 성공하든 실패하든 간에 우선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인심이 고무되어 위아래에서 분발해 일어나니 이러한 소요가 태양이 뜨기 직전, 큰 비가 내리기 직전의 분위기와 뭐가 다르겠습니까? 따라서 그 사람들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쇠망하든 흥성하든 공적이든 개인적이든 진실하든 가식적이든 간에 결국에는 문명 세계의 공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제가 특별히 이 책을 써서 그들을 한번 표창하려고 하니 부디 그들의 고심과 외로웠던 분투를 저버리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