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레터 [주간 인텔리겐치아]입니다.
1920년대 우리 문학에 유입된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이었습니다. 프로문학이 언제나 ‘운동’의 형태로 전개됐기 때문입니다. 문학예술가들의 조직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마르크스주의가 던진 하나의 충격이었습니다. 조선 프로문학을 주도했던 조직 카프, 결성부터 해산까지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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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큘라(PASKYULA), <<김기진 평론선집>>
파스큘라 이전에 염군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염군사는 사회적으로 이름나지 않은 청년들의 조직에 불과했습니다. 1923년 사회적으로 이름난 문사였던 박영희, 안석영, 이익상, 김기진 등이 모여 파스큘라를 조직했습니다. 파스큘라는 이들의 이름 머리자를 딴 것입니다. 김기진은 ≪개벽≫ 등의 잡지에 <클라르테 운동의 세계화>, <금일의 문학, 명일의 문학> 등의 글을 발표하며 프롤레타리아 문학 이론을 펴 나갔습니다. 김기진의 초기 평론에는 카프 이전의 모색이 담겨 있습니다.
김기진 지음, 오태호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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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탄이 되겠나이다, <<조명희 단편집>>
1925년 8월 23일 염군사, 파스큘라 두 계열이 합동하여 카프(KAPF)를 결성합니다. ‘KAPF’는 에스페란토어 ‘Korea Artista Proletaria Federatio(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의 약칭입니다. 음악부, 미술부를 두었으나 박영희, 김기진, 이익상, 송영, 조명희, 박팔양 등의 문학자들이 중심이었습니다. 이때부터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이 본격화합니다. 1927년 7월 ≪조선지광≫에 발표한 조명희의 <낙동강>은 이 시기 프로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습니다.
조명희 지음, 이정선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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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예술은 무기, <<한설야 단편집>>
1927년 9월 1일 카프는 맹원들의 총회를 거쳐 조직을 확대, 개편하며 방향을 전환합니다. 같은 해 11월 간행된 기관지 ≪예술운동≫의 본부초안 <무산계급예술운동에 대한 논강>을 살펴보면 이들이 설정한 방향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예술은 무기로서 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은 대중에게 투쟁의식을 고양하며 (…) 그리하야 우리는 무산계급 예술운동의 역사적 임무를 다할 것이다.” 카프의 임원이자 핵심 이론 분자였던 한설야는 <홍수>(1928.1), <과도기>(1929.4) 등 대표적인 프로문학을 남겼습니다.
한설야 지음, 장영우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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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 높이에서 사상할 것, <<안막 평론선집>>
1931년 카프는 두 번째 방향 전환을 감행했습니다. 카프는 ‘당의 문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전위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볼 것’을 요구하며 볼셰비즘화합니다. 2차 방향을 주도했던 이들 중 한 명은 동경의 소장파이자 극좌 이데올로그였던 안막입니다. 1930년 3월의 첫 평론 <푸로 예술의 형식 문제−푸로레타리아 리아리슴의 길로> 이후 만 3년 동안 짧고 굵은 족적을 남긴 그의 평론은 프티부르주아적 예술에서 당 수준의 예술로 비약할 것을 요구합니다.
안막 지음, 문경연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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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 자신이다, <<박영희 평론선집>>
만주사변 이후, 일제는 치안유지법을 통해 문학자들을 탄압합니다. 제1차(1931), 제2차(1934) 검거가 감행되자, 이미 카프 내부에서 해산이 논의 되었습니다. 결국 1935년 5월 21일 김효식이 경기도 경찰부에 해산계를 제출하며 카프의 짧은 역사는 막을 내립니다. 해산 이전에 백철, 신유인 등이 전향을 선언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박영희의 선언입니다. “다만 얻은 것은 ‘이데오로기’며 상실한 것은 예술 자신이엿다.” <최근 문예이론의 신전개와 그 경향>(1934).
박영희 지음, 허혜정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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