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일상의 언어에서 법의 본질을 포착하다
언어철학을 통한 20세기 법철학의 혁신
우리는 보통 법을 강제적으로 주어지는 ‘명령’으로 여긴다. 법을 삶과 동떨어진 것처럼 여기고, 실제로 일상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뜨리려 한다. 그러나 허버트 하트에 따르면 법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다. 법은 우리 삶의 행동 지침이자 비판 기준으로 작용하는 ‘사회적 규칙’이다. 법적 개념과 현상들을 적절하게 설명하려면 법의 기저에 있는 우리 삶의 실재, 즉 사회적 사실들을 살펴야 한다. 하트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표현과 용어를 매개로 사회 속 법의 본성, 유형, 역할 등을 밝혀내려 한 이유다.
허버트 하트는 영미 법철학계에서 가장 성공한 학자로 꼽힌다. 옥스퍼드 일상언어학파의 중심인물로서 언어철학의 도움을 받아 법철학을 다시 철학·사회학·정치학의 중심으로 복귀시켰다고 평가받는다. 하트는 법 실무의 이론적 문제들에 천착하기보다 “법이란 무엇인가”란 오랜 질문에 철학적 통찰로 답하려 했으며, 특정 시대나 특정 장소의 법에 적합한 이론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인간 사회에서 나타난 법에 적용 가능한 이론을 목표로 했다.
이 책은 열 가지 키워드로 하트의 법철학을 세밀하게 살핀다. 하트가 “언어철학”에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내적 관점과 외적 관점”이나 “일차적 규칙과 이차적 규칙”을 구별한 기준은 무엇인지, “포괄적 법실증주의”로 기존 법실증주의를 어떻게 일신하려 했는지 명쾌히 이해할 수 있다. 주저 ≪법의 개념≫에서 개진한 이론뿐 아니라 다양한 학자들에게 받은 영향, 비판을 수용해 수정한 내용까지 빠짐없이 담았다.
허버트 하트(Herbert Hart, 1907∼1992)
영미 법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법학자이자 현대 법실증주의를 대표하는 학자로,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법리학 석좌교수를 지냈다. 주저 ≪법의 개념≫(1961)에서 고전적 법실증주의자들이 주장한 법 명령설을 비판하고 사회적 규칙으로서 법이라는 관념에 기초한 법실증주의를 제안했다. 특히 내적 관점과 외적 관점 및 내적 진술과 외적 진술의 구별, 일차적 규칙과 이차적 규칙의 구별, 법체계의 기초로서 승인의 규칙과 같은 다양한 개념들을 도입해 법철학의 논의를 한층 풍성하게 만들었다.
200자평
허버트 하트는 언어철학에 힘입어 법철학을 다시 ‘철학’으로 복원한 법학자다. 일상에서 언어의 용법과 그 배후 맥락을 살펴 특정한 법이 아니라 모든 시대와 장소에 공통된 법의 본성을 규명하려 했다. 하트는 법을 명령이 아니라 사회적 규칙으로 간주하며, 법의 기저에 있는 사회적 사실들을 살펴야 다양한 법적 개념과 현상들을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열 가지 키워드로 하트의 법철학을 상세히 살핀다. 하트의 이론이 어떻게 법철학을 철학·사회학·정치학의 중심으로 되돌렸는지 확인해 보자.
지은이
권경휘
영산대학교 경찰행정학부 교수로 있다.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김정오 교수의 지도 아래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기초법으로 법학 석사와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법철학, 법사상사, 법경제학, 법사회학을 연구하고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제2의 뤼쿠르고스로서의 플라톤: 이상국가의 해석론”(2021), “≪정치신학≫에 나타난 ‘예외상태’에 대한 슈미트의 이해방식”(2017), “현대 법실증주의와 규범성의 문제”(2015),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2014) 등이 있다. 단독 저서로 ≪현대 법실증주의 연구≫(2022), 공저로 ≪법의 미래≫(2022), ≪법의 딜레마≫(2020) 등이 있다.
차례
법철학에 언어철학의 세례를 베풀다
01 언어철학
02 법 이론
03 법 명령설 비판
04 사회적 규칙
05 내적 관점과 외적 관점
06 일차적 규칙과 이차적 규칙
07 법체계
08 개방적 구조
09 법과 도덕
10 포함적 법실증주의
책속으로
하트는 이 책[≪법의 개념≫]에서 법률가들의 이론적 문제를 넘어 법의 개념이라는 더욱 근본적인 주제에 대한 철학적 통찰을 제시하려 하며, 법이라는 개념은 그와 유사한 사회적 현상들과 어떻게 유사하고 어떻게 다른지 살펴볼 때만 올바르게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의들을 통해 하트는 법률 실무가만 관심을 보이는 변방 학문으로 쇠락했던 법철학을 다시 철학·사회학·정치학의 중심으로 복귀시켰다. 이것이 바로 하트가 법철학에 미친 가장 중요한 업적이다.
_“법철학에 언어철학의 세례를 베풀다” 중에서
하트는 자신의 이론이 “일반적(general)”이라고 강조한다. 하트의 법 이론은 이중적 의미에서 일반성을 띤다. 그것은 어떤 특정 법체계나 법문화에 한정된 이론이 아니라 “규칙에 의해 지배되는 (그러한 의미에서 ‘규범적’인) 측면을 지닌 복잡한 사회·정치 제도로서의 법을 설명하고 명확히 하려 한다는 의미”에서 대상의 일반성을 띤다. 즉, 하트의 법 이론은 특정 시대나 특정 장소의 법에 적합한 이론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인간 사회에서 나타난 법에 적합한 이론을 목표로 한다. 또한 그것은 인간 사회에 관한 물음 중 유례없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변하려 한다는 의미에서 주제의 일반성을 띤다.
_“02 법 이론” 중에서
사실 비결정성은 규칙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언어가 본질적으로 지닌 한계 때문에 모든 영역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조류”나 “포유류”라는 일반 용어에는 앵무새, 토끼, 공작새 등 적용의 관행 또는 일치가 이미 있는 명백한 사례도 있지만, 오리너구리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처럼 “조류”와 “포유류”를 적용할 이유와 그러지 않을 이유 모두 존재하며 적용에 대한 관행이나 일치가 존재하지 않는 사례도 있을 수 있다.
_“08 개방적 구조” 중에서
우리가 준수해야 할, 장소와 시간을 초월해 공통적인 법은 사실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생물과 무생물을 포함한 자연 전체에 적용된다. 물에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면 얼어야 한다”는 자연법이 적용되고, 사람에게는 “사람을 살해해서는 안 된다”는 자연법이 적용되는 것이다. 자연법론은 모든 자연물에 목적(telos, 텔로스)이 존재한다는 목적론적(teleological) 자연관을 전제한다. 예컨대 도토리에는 도토리나무라는 텔로스가 있으므로 도토리나무가 되는 것은 규칙을 준수하는 것이다.
_“09 법과 도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