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테오도어 슈토름은 시와 산문으로 독일의 시적 사실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무엇보다도 단편소설 작가로 이름을 알린 그는 스스로를 산문 작가라기보다는 서정시를 쓰는 시인이라 여겼다. 그의 단편소설들에도 서정시적인 요소가 근원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작가가 자신의 단편을 일종의 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임멘 호수>와 <바다 저편에서>는 일종의 “틀 소설” 또는 “액자 소설”로서 지난 시절의 옛 추억을 회상하는 낭만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임멘 호수>는 백발노인 라인하르트가 늦은 가을날 오후 산책에서 돌아오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창에서 달빛이 들어와 그가 앉은 방 안의 한 사진틀에 드리우자 라인하르트는 곧바로 옛 추억 속으로 밀려들어 간다. 이때부터 추억 속 이야기가 남녀 주인공 라인하르트와 엘리자베트가 각각 열 살, 다섯 살인 때부터 다시 시작된다. 둘은 어린 시절부터 서로에 대한 사랑의 싹을 키워 나가나 라인하르트가 학업을 위해 고향을 떠난 후 둘 사이에 에리히가 끼어들며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바다 저편에서>는 주인공 알프레트가 서인도제도의 생크루아로 자기 애인을 데리러 가기 위해 어느 호텔 방 안에서 범선 출발 시간을 기다리며 사촌 형인 “나”에게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알프레트는 어릴 적 예니와 함께 자랐다. 둘은 아이답게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서도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커져만 간다. 성인이 되어 둘은 다시 만나지만, 예니에게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떼어져 떨어져 지내야 했던 어머니에 대한 말 못 할 그리움이 가슴속 깊은 곳에 계속 자리 잡고 있었다. 둘은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지만 예니는 결국 어머니를 찾아 어머니의 땅으로 배를 타고 떠나 버린다. 알프레트는 바다 저편 먼 땅으로 그런 예니를 찾아 나선다.
이 책에는 특히 소설의 서정성을 배가할 그림 자료가 여럿 실렸다. <임멘 호수>에는 슈토름이 생전 교우했던 화가 루트비히 피치(Ludwig Pietsch, 1824∼1911)의 삽화 외에도 1857년 판본에 실린 빌헬름 리프슈탈(Wilhelm Riefstahl, 1827∼1888)의 표지화와 아돌프 멘첼(Adolpf Menzel, 1815∼1905)이 그린 주인공 라인하르트의 그림을 실었다. <바다 저편에서>에는 역시 아돌프 멘첼(Adolpf Menzel, 1815∼1905)이 그린 여주인공 예니의 어릴 적 모습과 성인이 된 후의 초상화를 실어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200자평
독일의 시적 사실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테오도어 슈토름의 대표 단편 두 편을 담았다. 작가 스스로 자신을 산문 작가라기보다는 서정시를 쓰는 시인이라 여긴 만큼, 이 작품들에는 서정시적인 요소가 함축되어 있다. 두 단편 모두 “틀 소설” 또는 “액자 소설”의 형식을 취하며 아름다운 과거를 추억한다. 슈토름과 교우했던 화가 루트비히 피치(Ludwig Pietsch, 1824∼1911)의 삽화 외에 소설의 서정적 분위기를 배가할 그림 자료가 여럿 실렸다.
지은이
테오도어 슈토름(Theodor Storm)
19세기의 서정시 시인이며 단편소설 작가인 테오도어 슈토름은 1817년 9월 14일 독일 북부의 해안도시 후숨에서 법률고문관의 부유한 집안의 첫 아들로 태어났다. 유년 시절 동안에는 네 살 때 벌써 사설 초등학교에 다니는 등 안락한 나날을 보낸다. 1826년부터 1835년까지 후숨의 인문계 9년제 중고등학교인 김나지움을 다니는데, 마지막 3학기 동안에는 뤼벡의 신(新)인문고등학교를 다니고 졸업한다. 여기서 시를 쓰고, 고대시를 모방하는 법을 배우고, 처음으로 산문을 써 보기도 한다. 후숨에서는 그저 프리드리히 실러만 알고 그에 머물러 있었는데, 여기 뤼벡에서는 괴테뿐만 아니라 아이헨도르프나 하이네 등 저명한 작가들의 “보다 고귀한” 공기를 호흡하게 되었다고 한다. 1833년, 이 시기 후숨에서 발표된 《에마에게(An Emma)》가 그의 첫 시집이다. 1837년부터는 키일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기 시작하였고, 그다음 해에는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베를린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계속한다. 1대학 생활 동안의 여러 가지 경험들은 훗날의 작품 〈임멘 호수〉와 〈대학에서〉 등 여러 단편소설의 소재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테오도어 몸젠, 티코 몸젠 형제와 사귀면서 슐레스비히ᐨ홀슈타인 지방의 전설과 동화와 노래 등을 수집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당시의 운문에도 친숙해지며 문학지 《유럽(Europa)》(1840)에 자작시를 발표하며, 시인 뫼리케 등과도 어울려 1843년에 《세 친구의 가요집(Liederbuch dreier Freunde)》을 출판한다. 1842년 법학고시에 합격하나, 시험이 끝난 후 노름으로 많은 빚을 안은 채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다. 1843년 4월 중순에 후숨에서 “볼트센ᐨ슈토름(Woldsen-Storm)”이라는 이름으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다. 1846년 사촌 여동생 콘스탄체와 결혼하나 결혼 1년이 지난 다음 도로테아 옌센과 사랑에 빠진다. 가족들의 압력으로 애인 도로테아가 후숨을 떠나게 되는데, 이 무렵의 슈토름의 연작시 《빨간 장미의 책(Ein Buch der roten Rose)》에 열정적인 시구들이 나타나고, 1855년에 창작된 단편 〈안젤리카〉의 여주인공도 이때의 애인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슈토름은 작가라기보다는 법률가였으며, 무엇보다도 변호사와 판사로 일했다. 1848년 덴마크의 지배에 반항하는 슐레스비히ᐨ홀슈타인 민중 봉기에 참여하기도 하고 친구 테오도어 몸젠의 요청에 따라 이에 대한 보고서도 작성한다. 또 “애국자선협회”의 창립 동조자가 되고, 이에 대해 그 지방 신문에 기고하기도 한다. 1849년에는 덴마크 왕 프리드리히 7세에 대한 공작 신분을 박탈하고 인적 동군연합(同君聯合)을 종식하라는 진정서에 서명한다. 그 후로 덴마크 관청이 슈토름의 분파적 성향을 비난하며 하급재판소의 변호사직 인가를 거부했을 때 베를린에서 그를 포츠담의 지방법원에 무보수로 임용하자 그는 이에 동의해, 1853년 포츠담으로 옮겨 그곳에서 근무한다. 이후 1856년 하일리겐슈타트 지방법원 합의부 판사에 임명된다. 과도한 판사 업무에도 불구하고 그는 “노래동아리(Singkränzchen)”라는 새로운 합창단을 구성하기도 하고, 단편소설 〈임멘 호수〉의 삽화를 그린 루드비치 피치 등의 친구들도 사귀며, 〈저편 시장(市場)에서(Drüben am Markt)〉, 〈대학에서〉, 〈불레만의 집(Bulemanns Haus〉 등의 사실주의적 소설과 창작 동화를 집필하기도 한다. 1864년 독일ᐨ덴마크전쟁에서 덴마크가 패하면서 슈토름은 후숨 신분제의회에서 주지사로 선출되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다음 해 5월에는 부인 콘스탄체가 세상을 떠나고, 상(喪)을 마친 다음 1866년 6월 13일 옛 애인 도로테아 옌센과 조촐한 두 번째 결혼을 한다. 다음 해에 프러시아 행정 개혁의 합병 절차에 따라 그는 슐레스비히ᐨ홀슈타인의 지방법원 재판관에 임명된다. 이 무렵 〈주정부위원의 아들들(Die Söhne des Senators)〉, 〈이중인간〉 등의 여러 단편소설을 발표하고 작가 활동도 계속하면서, 1877년부터는 스위스작가연맹의 동료 켈러와 서신교환도 한다. 1880년 5월에 63세의 나이로 조기에 판사직을 정년퇴직하고 하데마르셴으로 이주하여 양로원에 입주한 다음 건강에 해가 될 정도로 긴 여행을 한다. 회복할 수 없는 중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되고 심한 우울증에 빠지면서도 마지막 작품 《백마의 기수》를 완성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인다. 1888년 7월 4일 하데마르셴에서 질병으로 사망해, 고향 후숨의 성(聖) 유르겐 성당 묘지에 안장된다.
옮긴이
이인웅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청주중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외국어대학교와 동 대학원 독일어과를 졸업했다. 독일 정부 초청(DAAD) 장학생으로 뮌헨대학교와 뷔르츠부르크대학교에서 독문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1972년 헤르만 헤세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기획실장, 교무처장, 통역대학원장, 부총장 등의 보직을 수행하고, 문교부 국어심의회 외래어표기분과위원, 교육부 국비유학자문위원, 한국학술진흥재단 인문분과위원(장), 각종 고등고시위원, 한독협회지 초대 편집인, 한국헤세학회장, 한국독어독문학회장, 독일동문네트워크(ADeKo) 이사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명예교수다.
지은 책으로 《Ostasiatische Anschauungen im Werk Hermann Hesses》(독일), 《작가론 헤르만 헤세》(편저), 《현대 독일 문학 비평》, 《헤르만 헤세와 동양의 지혜》, 《파우스트. 그는 누구인가》(공저)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비롯해 《선(禪). 나의 신앙》, 《수레바퀴 아래서》, 《이별을 하고 건강하여라》, 《인도 여행》, 《헤세 시선》, 《싯다르타/인도의 이력서》와 산문선 《최초의 모험》,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슬픔》, 《헤르만과 도로테아》, 《파우스트》,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방송극집 《고장》과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밀레나에게》 등 60여 권이 있다. 그리고 학술 논문으로 〈Hermann Hesse und die taoistische Philosophie〉(스위스), 〈헤르만 헤세와 불교〉, 〈I Ging, das Buch der Wandlungen, im Glasperlenspiel von H. Hesse〉(독일), 〈헤세의 도가 사상〉, 〈괴테의 ‘초고 파우스트’ 연구〉, 〈그라베의 대립적 세계관〉, 〈파우스트와 역사 세계〉, 〈정신 분석과 헤세의 문학 창조〉, 〈파우스트의 구원과 그 문제성〉 등 50여 편이 있다. 그 외에도 문학과 삶에 관해 각종 신문 잡지 등에 250여 편의 글을 쓰고, 여러 텔레비전 및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고, 국내외에서 많은 초청 강연을 했다.
차례
<임멘 호수>
노인
아이들
숲속에서
저기 한 아이가 길가에 서 있었다
고향에서
편지
임멘 호수
어머니가 원했어요
엘리자베트
노인
<바다 저편에서>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하여
책속으로
1.
그와 수련 사이의 거리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것 같았다. 다만 그가 뒤를 돌아볼 때마다 호수 변이 알 수 없는 연무에 싸여 뒤에 멀리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았고, 같은 방향으로 계속 힘차게 헤엄쳐 나갔다. 마침내 그는 수련 가까이에 닿았고, 달빛 속에서 은빛 꽃잎들을 분명히 구분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이 어떤 그물망에 걸려들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반질반질한 연꽃 줄기가 바닥에서 올라와 발가벗은 그의 몸을 휘감았던 것이다. 알 수 없는 물보라가 새까맣게 그의 주위를 둘러쌌고, 그 뒤로 물고기가 한 마리 뛰어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물속 낯선 곳에서 그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해 몸에 휘감긴 식물들을 뜯어 버리고 숨이 턱에 차오를 정도로 서둘러 육지를 향해 헤엄쳐 나왔다. 거기에서 호수를 뒤돌아보니 수련은 아까처럼 멀리 그리고 고독하게 검고 깊은 물 위에 떠 있었다.
–<임멘 호수> 중에서
2.
하얀 개연꽃들이 여기저기 검고 깊은 물 위에서 반짝거렸지. 그 꽃들 사이 저수지 한중간의 받침돌 위에 방금 물 위로 솟아오른 듯한 비너스 대리석상이 조용히 외롭게 서 있었어. 그곳에는 소리 없는 고요함이 깃들어 있었지. 난 그 예술 작품을 가능한 한 가까이 볼 수 있도록 강변을 따라 걸어갔어. 그건 분명 루이 퀸즈 시대의 아름다운 입상(立像)이었어. 발가벗은 두 발 중 하나를 내뻗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그저 잠수하기 위해 물 위에 잠시 떠 있는 것 같았어. 한 손은 바위를 짚고 있었고, 다른 한 손은 젖가슴에서 풀어져 내린 옷을 붙잡고 있었어. 내가 선 곳에서는 얼굴을 볼 수가 없었어. 왜냐하면 비너스가 발가벗은 몸을 물결에 내맡기기 전 예기치 않게 엿보는 자 앞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듯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었기 때문이야.
–<바다 저편에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