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진리와 함께한 나의 실험 이야기
간디는 그의 자서전에 ‘진리와 함께한 나의 실험 이야기(The Story of My Experiments with Truth)’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것은 깊은 의미를 가진다. 간디는 자기 자신을 진리의 실험대에 올려놓고 몸소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간디 자서전≫은 진리 실험의 생생한 기록이다. 그의 인생을 지배한 정열은 진리에 대한 정열이었다. 그는 겸손과 용기를 가지고 진리를 실천하고 실험했다. 중기의 우파니샤드인 ‘문다카 우파니샤드’는 “진리는 언제나 승리한다. 진리가 아닌 것은 그렇지 않다. 신에 이르는 길은 진리로써 포장되어 있다”고 진리의 추구를 강조했다. 간디는 이 진리를 몸소 실험하려고 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나는 한 사람에게 가능한 것은 만인(萬人)에게도 가능하다고 언제나 믿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이 진리를 실현하기 위해서 각각 응분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자기 파멸로부터의 탈출구는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간디는 “진리를 바로 깨닫고 바로 훈련하면 누구나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간디는 인도인의 마음에서 공포심을 제거했다. 영국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감옥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가난이나 고난이나 시련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가슴속에 불러일으켰다. 공포심의 제거에서 용기와 신념이 생긴다. 1914년경까지 인도는 침체했고, 위축됐고, 비겁했고, 의기소침했다. 그러나 간디는 남아프리카에서 1914년 사티아그라하 투쟁을 승리로 이끌고, 1915년 1월에 22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서 인도인에게 새로운 정신적 활력소를 불어넣었다. 그는 인도인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고, 신념을 주고, 자존심을 주었다. 좌절감과 절망과 무기력에 휩쓸린 분위기를 일소해 버렸다. 그래서 시인 타고르는 전 인도 민중을 대표해 간디에 대해서 ‘마하트마’라는 찬사를 보냈다.
200자평
간디는 인도 민중에게 몸소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그들의 정신과 사회 풍토를 변화시켰다. 그의 자서전은 진리를 찾아 실험하고 경험했던 일들을 회상한 것이며, 인도 휴머니즘의 생생한 전형이다. 간디는 누구나 진리를 깨달으면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은 전체 5편, 167장 중에서 진리를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장을 선별해 번역했다.
지은이
간디는 인도의 영국 식민지 기간(1859~1948) 중 대부분을 영국으로부터의 인도 독립 운동을 지도하였다. 인도의 화폐인 루피의 초상화에도 그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1869년 10월 2일 서부의 포르반다르에서 작은 소공국인 포르반다르의 총리를 지냈던 아버지 카람찬드 간디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종교는 부모의 영향으로 힌두교이다. 13세가 되던 해에 부모의 뜻에 따라 카스토르바이와 결혼했다. 18세 때 런던에 법률을 배우고, 1891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여 귀국해서 변호사로 개업하였다. 1893년의 남아프리카 여행에서 백인에게 박해받던 인도인들을 보고 정치운동가로 변신한 그는 나탈 지방의회와 영국 정부에 보낼 탄원서를 작성하고 수백 명의 서명을 받았다. 인도인 차별법의 입법은 막는 것에는 실패하였으나 나탈·영국·인도에까지 나탈 인도인의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홍보하는 데 성공했다. 1915년, 귀국할 때까지 인도인의 지위와 인간적인 권리를 위해 투쟁했다. 이후 아힘사(불살생), 무소유, 무집착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적 바탕 위에 사챠그라하(satyagraha, 진리 파지) 운동, 아슈람 공동체 운동 등을 전개하였고, 영국에 대한 비협력 운동의 일환으로 납세 거부, 취업 거부, 상품 불매 등을 통한 비폭력 저항 운동을 지도했다. 인도 카스트의 최하층인 하리잔의 지위 향상을 위해서도 진력하였다. 1947년 7월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힌두교와 이슬람교간의 융화를 위해 활동하던 중 1948년 1월 반이슬람 극우파의 한 청년이 쏜 흉탄에 쓰러졌다. 1930년 그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기도 했다. 간디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 선정에 4번이나 노벨 평화상 수상 후보자의 물망에 올랐으나 끝내 수상하지 못하였다. 1922년 12월 인도의 문호 타고르로부터 ‘마하트마(Mahatma, 위대한 영혼)’라고 칭송 한 시를 받은 뒤로 ‘마하트마 간디’라 불려온 그는 인도인뿐 아니라 세계인의 가슴속에 위대한 영혼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옮긴이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에서 공부해 문학사와 문학 석사,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도덕 및 종교교육 교육학 석사, 2003년 인도 바나라스 힌두대학교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학교 인문과학대학 철학과와 인도철학과 학과장으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인도 네루 대학교 한국학 담당 교환교수였고, 2005년 8월에는 일본 류코쿠대학에서 교환 강의를 했다. 1991년 외무고등고시위원(국민윤리),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인도철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인도철학회 고문과 한국불교학회 명예회장 겸 법인이사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인도 정통철학과 대승불교》(동국대학교 출판부, 2005), 《모든 이웃을 부처님처럼》(민족사, 1999),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hatma Gandhi》(New Delhi : Vikas Publishing House, 1996), 《마하뜨마 간디 철학 연구》(불광출판부, 1990), 《베단따 철학》(불광출판부, 1990), 《여의주》(삼화출판사, 1981)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힌두 스와라지》(지식을만드는지식, 2011)가 있다. 지식이 삶에서 실천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차례
머리말
I
1. 출생과 가문
2. 조혼
3. 영국으로 갈 준비
4. 종교를 알게 됨
5. 면허, 그렇다면?
II
1. 레이찬드바이
2. 남아프리카로 갈 준비
3. 프리토리아로 가는 길
4. 소송 준비
5. 종교심의 발효
6. 인간이 제안하고 신이 처리한다
7. 3파운드의 세금
8. 종교의 비교 연구
III
1. 인도로 돌아옴
2. 국민회의 개회
3. 베나레스에서
4. 다시 남아프리카로
IV
1. 사랑의 노력은 허사인가
2. 아시아에서 온 독재자들
3. 자기반성의 결과
4. 권력과의 대결
5. 《인디언 오피니언》
6. 사티아그라하의 탄생
7. 단식
8. 고칼레를 만나러
9. 정신적 딜레마
10. 본국으로
V
1. 첫 경험
2. 푸나에서 고칼레와 함께
3. 샨티니케탄
4. 3등 승객의 비애
5. 쿰바멜라
6. 아슈람 창설
7. 계약노동제 철폐
8. 롤래트 법안과 나의 딜레마
9. 놀라운 광경
10. 히말라야적 오산
11. 《나바지반》과 《영 인디아》
12. 펀자브에서
13. 암리차르 국민회의
14. 국민회의에 입회함
15. 카디의 탄생
작별 인사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우주적으로 편재해 있는 진리의 정신을 직접 체험해 보기 위해서는 피조물 중 가장 비천한 생물까지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사랑을 실천하기를 갈구하는 사람은 일상생활의 어떠한 분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2.
한 제도의 부당성에 저항하고 공격하는 것은 지당한 일이지만, 그 제도를 만든 사람을 반대, 공격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반대, 공격함과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나 다 같은 결점을 가지고 있고, 또한 유일하고 동일한 창조주의 자녀들이며, 우리 속에는 신의 자녀로서의 거룩한 힘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의 인간이라도 업신여기는 것은 그 거룩한 능력을 업신여기는 것이요, 따라서 그 사람만 해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더불어 전 세계를 해치는 것이 된다.
3.
3등 승객의 비애는 철도 당국의 오만한 태도에 기인한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승객들 자신의 무례함, 불결한 습관, 이기심, 무지에도 그에 못지않은 책임이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의 옳지 못함, 불결함, 이기적인 행동을 그들 자신이 종종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모든 일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믿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그 연유를 따지자면, 우리 ‘지식인’들이 그들에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