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강철 폭풍을 뚫고》는 전쟁 기록 문학으로서, 작가 윙거 자신의 1915년 1월 1일부터 1918년 8월까지 독일군의 서부전선에서의 생생한 전쟁 체험들을 담은 사실적 소설이다. 윙거는 전쟁 중 무려 열네 번이나 심각한 부상을 당했으며 그로 인해 몸에 스무 개가 넘는 상흔을 입었다. 그렇게 여러 번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서 결국 살아남아 세상에 내놓은 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전쟁을 다루고 있음에도 이 소설은 반전 문학이라고도, 전쟁을 긍정하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없다. 다만 전쟁에서의 인간 양상을 예리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리는 데 작가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가는 1920년 이 책을 처음 내놓은 이후 수십 년에 걸쳐 무려 열한 번이나 개작했다. 이로 인해 총 일곱 개의 판본이 존재하는데, 1920년대 판본들에서는 윙거의 신민족주의적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당시 윙거의 정치적 입장은 ‘혁명적 민족주의(revolutionärer Nationalismus)’에 속했다. 그 무렵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쟁을 체험했던 일군의 젊은이들은 급진적인 민족주의 이념을 표방했고, 바이마르공화국의 민주주의적 체제와 정치 질서를 비판하면서 독일이 더욱 강력한 민족주의 국가가 되기를 원했다. 이에 혁명적 민족주의자들의 급진적, 반체제적, 반민주주의적, 혁명 지향적인 입장은 나치즘의 출현을 사상적으로 준비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윙거는 이미 1930년 초부터 나치즘의 대중 선동 정책과 전체주의를 직시하면서 분명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러한 신념의 변화가 작가 스스로《강철 폭풍을 뚫고》를 여러 차례 수정하게 한 동인의 하나로 작용했다. 초판 발행 이후 개작된 1930년대 판본들에서는 이전 판본에 있던 민족주의적 색채를 띤 부분들이 삭제되었으며, 본 서의 번역 저본으로 사용한 1961년도 판은 이념의 문제보다 문체의 수정에 더 집중하여 지나치게 잔혹한 전쟁 장면의 묘사를 완화하는 등 표현의 완성도를 높였다.
《강철 폭풍을 뚫고》에서 윙거는 전쟁을 마치 자연 현상처럼 냉철하게 관찰하고 서술한다. 책 제목에 ‘강철 폭풍(Stahlgewitter)’이라 한 것은 작가가 전쟁 역시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번개와 비바람, 폭풍을 동반한 일종의 자연 현상 같은 것이라고 여겼음을 드러낸다. 철저히 객관적인 서술 태도를 유지했기에 윙거는 자기 자신이나 동료의 부상과 고통에 대해까지도 특유의 무관심하거나 냉담한 태도를 숨기지 않았다. 이로써 처참한 전쟁 상황을 묘사함에도 역설적으로 유머가 드러나 보이는 것이 또한 이 소설의 특징이다. 작가는 유머와 잔혹을 혼합한 일종의 그로테스크 표현 기법을 의도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이 소설에는 비인간적인 전쟁 상황 속에서도 모험적이고 유희적인 즐거움을 얻으려 한 군인들의 모습까지 가감 없이 표현되어 있다.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세 이후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및 스페인어 문학, 그리스·로마 신화 및 《구약》과 《신약》에 대한 기본 지식 이상을 갖추어야 할 뿐 아니라, 유럽의 정치, 사회, 경제 상황에 대한 전문 지식 역시 필요하다. 공역자인 신혜양과 융크는 이 책의 번역을 위해 무려 10년의 세월을 바쳤다. 한 문장 한 문장 우리말로 옮기며 문장의 의미를 놓고 거듭 토론했으며 필요한 곳에 각주를 달아 독자들의 깊이 있는 이해를 도왔다.
21세기, AI 기술이 고도로 발전해 가고 있는 오늘날에도 지구상 곳곳에서 여전히 전쟁이 일어나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이 책이 독자들로 하여금 전쟁과 인간의 실존 문제에 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00자평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에른스트 윙거가 전쟁 당시 썼던 일기를 토대로 집필한 매우 사실적인 전쟁 소설이다. 작가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이 소설은 전쟁 문학으로서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의 문학적 성과를 훨씬 능가하는 작품으로 평가받을 뿐 아니라 앙드레 지드로부터 “의문의 여지없이 전쟁에 관한 최고의 책이다. 정직하고 참되고 믿음직하다”라는 극찬을 받았다. 윙거가 참전 때 찍은 사진 세 점을 실어 사실성을 더했다.
지은이
에른스트 윙거(Ernst Jünger, 1895~1998)
1895년에 태어나 1998년에 사망하기까지 한 세기를 넘게 산 에른스트 윙거는 독일어권의 경계를 넘어 세계 여러 나라에 독자를 가진 현대의 고전 작가다.
어려서부터 모험심이 많아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아프리카 대륙에 관한 책 한 권과 권총으로 무장한 채 부모님 몰래 집을 떠나 프랑스 외인 군단에 들어갔다 곧바로 알제리로 파견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탈영을 감행하고, 다행히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6주 만에 제대했다. 이때의 경험은 그에게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미쳐 후에 《아프리카 게임(Afrikanische Spiele)》(1936)이라는 책을 출간하게 된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당시 대부분의 독일 젊은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원병으로 입대했다. 전쟁에 대한 그의 열정은 금방 식었지만, 그는 비교적 빨리 소위로 임명되었으며 뛰어난 용맹성을 인정받아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전쟁이 끝날 무렵, 윙거는 독일군 최고 훈장인 ‘푸르 르메리트 훈장’을 받은 몇 안 되는 보병 소위 중 한 명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윙거는 나치 시대에 국가사회주의에 대해 양가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후일 무수한 공격을 받게 된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는 친나치적 성향을 지녔던 작가로 분류되어 매년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1980년대에는 그의 작품에서 비인간적이라는 비난을 받은 모든 문장들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르곤 했다. 1982년 프랑크푸르트시가 수여하는 괴테상의 수상자로 윙거가 선정되었을 때, 독일연방공화국의 모든 정치 진영에서 이를 대단한 스캔들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몇 년 후 상황은 매우 달라져 1998년 리들링겐에서 102세의 나이로 사망했을 때, 별세 소식을 알리는 대부분의 기사들에서 그에 대한 비판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대표작으로 민족주의와 엘리트주의 사상이 스며든 초기 작품들 《강철 폭풍을 뚫고》(1920), 《폭풍(Sturm)》(1923), 《불과 피(Feuer und Blut)》(1925), 《125번 숲》(1925)과 글쓰기 측면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평가되는 중기 작품들 《아프리카 게임》(1936), 《대리석 절벽에서(Auf den Marmorklippen)》(1939), 《정원과 도로(Gärten und Straßen)》(1942), 《대서양 항해(Atlantische Fahrt)》(1947), 그리고 노년기의 정화된 작품들 《새총(Die Zwille)》(1973), 《위험한 만남(Eine gefährliche Begegnung)》(1985), 《70년이 지나갔다 1∼5(Siebzig verweht Ⅰ∼Ⅴ)》(1998) 등이 있다. 1920∼1940년대에 쓴 작품들로 그는 많은 적을 만들었지만, 이후 노년기의 작품들은 문학 평론가들로부터 대체로 호평을 받았다.
옮긴이
신혜양
숙명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수학했다. 뮌헨의 괴테 인스티투트 본부에서 ‘독일어 교수자 양성 과정’을 이수하고 ‘독일어 교수자 디플롬’을 취득했으며, 〈헤르만 브로흐의 소설과 소설이론 연구〉로 숙명여자대학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한 독일문화원 전임강사를 역임하고, 1991년부터 현재까지 숙명여자대학교 독일언어·문화학과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 워싱턴 주립대학교 객원교수와 한국헤세학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 《한·독 여성문학론》(공저), 《독일어권 문화 새롭게 읽기》(공저), 《자본주의 사회와 인간 욕망 : 서구 리얼리즘 문학의 현재성》(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윌리엄 존스턴의 《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The Austrian Mind)》(공역), 헤르만 브로흐의 《베르길리우스의 죽음(Der Tod des Vergil)》(공역) 등이 있다. 〈1990년대 독일 신세대 문학과 베를린−유디트 헤르만의 소설문학을 중심으로〉, 〈귀환으로서의 여행 : 바바라 호니히만의 여행기 《천상의 빛. 뉴욕으로의 귀환》〉, 〈여행문학텍스트로서 카프카의 여행일기−시각적 지각방식과 문학적 의미화를 중심으로〉 등 연구 주력 분야인 독일 소설, 현대 독문학, 독일 문화 교육, 독일어 교수법 관련 다수의 논문을 한국어와 독일어로 발표했다.
에릭ᐨ요아킴 융크(Erik-Joachim Jungk)
독일 베를린에서 출생했다. 베를린 자유대학교와 보훔 루르대학교에서 한국학과 독문학을 전공했으며,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언어학과 박사과정에서 수학했고, 베를린 훔볼트대학교 한국학과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숙명여자대학교, 숭실대학교를 비롯해서 국내 여러 대학의 독어독문학과 전임강사를 역임하고, 2006년부터 서강대학교 유럽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 한국인을 말하다》, 《또 다른 서울 사람들》 등 공저로 다양한 저서를 출간했고, 〈한국어와 독일어에서 영어 외래어의 범람과 한국 및 독일식 영어에 대한 논쟁〉, 〈파우스트 번역본 비교 연구−고사성어 번역을 중심으로〉, 〈이디시어는 성분 언어인가?−서게르만어에서 이디시어에 위상에 관하여〉 등 연구 주력 분야인 언어학과 관련해서 다수의 논문을 독일어와 한국어로 발표했다.
차례
샹파뉴 지방의 백악 참호에서
바장쿠르에서 아통샤텔까지
레제파르주
두시와 몽시
일상의 진지 전투에 대해서
솜 전투의 서막
기예몽
생피에르바스트
솜으로부터의 후퇴
프레누아 마을에서
인도 출신 영국군을 대적하며
랑게마르크
레니에빌
다시 플랑드르에서
캉브레에서의 전투들
코죌천에서
대전투
영국군의 진격
나의 마지막 공격
끝까지 버티기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전투 행위가 나에게는 다른 별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이상하고도 연관성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사실 두렵지는 않았다. 적이 나를 보지 못한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어, 누가 나를 표적으로 삼고 있고 그래서 내가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동료들이 있는 쪽으로 돌아간 나는 태연자약하게 전방을 주시했다. 그것은 무식한 자의 용기였다.
2.
전장에 충만한 엄청난 파괴의 의지가 우리의 뇌에 응집되었다가 붉은 안개 속으로 발산되었다. 우리는 어쩔 줄 몰라 흐느끼기도 하고 더듬거리기도 하면서 말을 주고받았다. 이런 우리를 지켜보는 구경꾼이 있었더라면 우리가 행복에 겨워서 그런다고 생각했겠다.
3.
내가 나타나자 그 사람은 움찔하며 크게 뜬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얼굴을 권총으로 가린 채 살의를 품고 천천히 다가갔다. 우리 만남은 증인 없는 피의 축제가 될 것 같았다. 드디어 적을 목전에 두게 되니 소원을 성취하게 되리라. 두려움에 마비된 그 사람의 관자놀이에 권총을 들이대고, 다른 한 손으로는 훈장과 계급장이 달린 그의 군복을 움켜쥐었다. 그는 아마 이 지대의 지휘를 맡은 장교였을 것이다. 탄식하는 소리를 내며 그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는데, 내 얼굴 앞으로 내민 그것은 권총이 아니라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그는 어느 테라스 위에서 여러 명의 식구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4.
이제 드디어 당한 것이었다. 총격을 맞은 순간에 이것은 생명을 위협하는 부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모리 앞 국도 근처에서 죽음의 손길이 다가왔었는데, 이번엔 그 손길이 좀 더 단단하고 확실했다. 묵직하게 참호 바닥에 떨어진 나는 생명의 최후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이 순간은 내 인생의 몇 안 되는 정말 행복했던 순간들 중 하나였다. 그때 나는 번개의 섬광 속에서처럼 내 인생을 완전히 이해했다. 내 명이 바로 여기서 끝난다는 사실에 대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놀라움이 느껴졌지만, 그 놀라움은 매우 유쾌한 것이었다. 그러자 마치 쏴쏴거리는 수면 아래로 돌 하나가 서서히 가라앉는 것처럼, 전투 소리가 점점 희미하게 들렸다. 저 심연에서는 전쟁도 적대감도 더 이상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