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최초의 국어사전 문세영 《조선어사전》
“조선말로 해석한 조선말 사전이 처음 나왔다. 집집마다 한권씩!” _1938년 《한글》
“조선학계가 처음으로 받은 가장 값나가는 보물” _1938년 《조선일보》
“조선말은 과연 불사조였다. 영원토록 살아 있을 불사조였다.” _1941년 조선의용군 김학철
1938년 처음 발행된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은 우리말을 우리말로 풀이한 최초의 국어사전이다. 한국어와 관련된 최초의 사전인 미하일 푸칠로의 《노한사전》(1874)은 뜻이 같은 러시아어와 한국어를 대응시켜 만든 대역사전이었다. 《조선어사전》 이전의 우리말 사전으로는 심의린이 펴낸 《보통학교 조선어사전》(1925)이 있지만 보통학교 교재에 나오는 어휘를 풀이한 학습 사전이며 국한문 혼용체를 사용했다는 한계가 있다.
사전의 역사는 곧 국어의 역사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가 공기처럼 당연하게 우리말을 호흡하고, 한국어가 세계 7위 학습 언어가 된 내력의 첫머리에 《조선어사전》이 있다. 이 책은 우리말이 나라말이 될 수 없던 시기, 어휘를 모으고 풀이한 사전인 동시에 한 언어가 아직 살아 있음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부끄러움이 낳은 22년의 분투
“조선어로 된 사전이 있느냐.” 1917년 일본 동양대학에서 유학하던 문세영에게 중국인 유학생이 물었다. 모국에 아무리 수소문해 봐도 우리말 사전은 없었다. 사전도 없는 민족이라는 수치심에 우리말 어휘를 모으기 시작한 문세영은 귀국하여 교편을 잡은 후에도 수집을 계속했다. 1928년에는 교직마저 그만두고 ‘한 칸짜리 움파리 같은 방’에서 하루 네 시간만 자며 사전 편찬에 매진해 1936년에 원고를 완성한다.
1938년, 출판 자금이 없어 전국을 수소문하던 문세영은 서점이자 출판사였던 박문서관의 주인 노익형의 지원으로 22년 만에 《조선어사전》을 세상에 선보인다. 문세영은 원고를 6번, 7번씩 수정하고 이미 완성된 활판을 뜯어 새 낱말을 끼워 넣는 등 마지막까지 열성이었다. 미국의 《웹스터 사전》은 완성까지 28년 걸렸고 그림 형제는 1938년 《독일어 사전》 편찬을 시작해 그들이 사망한 1963년까지 완성하지 못했다. 《조선어사전》은 일제 식민 통치 시기에 개인이 이루어 낸 노작이다.
다채로운 10만 표제어
《조선어사전》 초판본은 8만 7000여 어휘, 2년 후 발간된 수정증보판은 약 10만 어휘의 올림말이 실린 방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는 약 4만 어휘가 실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말모이〉나 약 6만 어휘가 실린 조선총독부 사전을 능가한다. 또한 표준말 외에도 방언, 옛말, 이두, 학술어, 속담, 관용구 등 다양한 우리말을 수록하고 있어 당대의 언어생활뿐만 아니라 사고방식과 문화를 두루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20세기 조선의 유행어와 신어
“현진건은 《조선어사전》이 처음 나오자 고어와 신어를 비교하면서 문장에 써먹을 어휘를 수십 독을 하였다”라고 문인 월탄 박종화는 《신천지》 1954년 9월호에서 밝힌다. ‘모던껄’, ‘모던뽀이’ 등 근래의 사전에는 수록되지 않은 신어가 실린 사례, ‘러버(Lover)’의 뜻풀이로 ‘마음 속에 있는 사람. 戀人(연인)’을 제시하고 있으면서 정작 ‘연인’은 올림말로 등재되지 않은 사례 등은 서구 문물이 유입되던 시대상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국어사전의 국어사전
《조선어사전》은 1원이 넘는 책이 드물던 때에 7원에 달하는 값비싼 책이었음에도 초판 1000부, 재판 2000부가 매진되었다. 1940년에는 전국 독자들의 도움으로 방언과 학술어 등 1만여 어휘를 보탠 《수정증보 조선어사전》이 영창서관에서 발행된다. 이를 바탕으로 《중등조선어사전》(1947), 《순전한 우리말사전》(1951), 《최신판 표준국어사전》(1954) 등 다양한 사전이 나오며 문세영 사전은 1957년 한글학회 《큰사전》 완간 전까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수정증보 조선어사전》은 “현대 국어사전의 기틀이 된 기념비적인 사전”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국립국어원의 ‘근현대 국어사전’ 서비스 활용 자료로 채택되었다.
1938년 출간 당시 그 모습 그대로 재현한 영인본
새롭게 출간되는 《조선어사전》 영인본은 한글학회 《우리말 큰사전》 수석 편찬원 조재수 국어학자가 소장한 초판본을 저본으로 삼았다. 《조선어사전》은 그 역사적·학술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온전한 실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국립한글박물관, 국립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소장본과 비교 후 원형과 최대한 동일하게 재현했다. 활자체와 4단 세로쓰기 양식은 물론 활판 인쇄 기술의 한계로 발생한 오류까지 고스란히 실어 첫 출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만날 수 있다. 가격은 1938년 초판본의 정가 7원에 지난 86년 동안의 물가지수 상승률을 반영해 책정했다.
1938과 2024, 그 사이를 잇는 부클릿 〈사전말끝〉
《조선어사전》과 함께 제공하는 부클릿 〈사전말끝〉은 사전의 처음이자 끝을 의미한다. 책에 실을 수 없었던 편집자의 머리말과 맺음말을 대신한다. 《조선어사전》에서만 실린 독특한 어휘와 뜻풀이를 만날 수 있다. 머리말 ‘전승(傳承)’은 《조선어사전》 초판본을 입수한 편집자의 사용기로, 《조선어사전》과 현진건의 〈타락자(墮落者)〉를 함께 읽으며 느낀 아름다움과 사전의 소상한 체제를 파헤친다. 맺음말 ‘왕래(往來)’는 편찬인 문세영과 편집자의 가상 대담으로, 사전 집필 과정과 당대 조선 문화를 알 수 있는 풍부한 자료를 담았다.
추천사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이 발간된 1938년으로부터 86년이 지난 2024년, 지식공작소에서 이 책을 영인본으로 복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전에 문세영과 그의 《조선어사전》을 다각도로 연구해 온 역사학자로서 필자는 이 소식에 감개무량했다. 《조선어사전》은 반드시 복간해야 할 우리말 사전이라고 단언한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도 우리말 사전은 펴내지 못했다.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조선어학자인 문세영은 1938년 최초로 제대로 된 우리말 사전을 편찬했다.
문세영[文世榮, 1895∼1952, 호는 청람(靑嵐)]은 1917년 동양대학에 입학한 이후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에게 우리말 사전이 없다는 현실을 타개하고 일본인이 만든 일본어 대역체의 《조선어사전》(1920)만 있는 상황을 타파하고자, 우리말 어휘를 수집해 카드에 기입하기 시작했다. 1929년부터 카드를 뜻풀이하면서 본격적인 사전 편찬에 돌입한 문세영은 10년간의 원고 정리와 교정 작업을 마무리해 44세가 된 1938년 7월에 10만 어휘에 달하는 《조선어사전》을 발행한다. 《조선어사전》은 박문서관 발행으로 국판 1,696쪽에 달했으며, 4단 내리짜기로 쓰인 중사전 규모였다. 조선말 사전이 없는 것을 방관하거나 비판만 난무하던 현실에서 1917년에서 1938년까지 묵묵히 22년간 어휘를 수집·주해·교정한 결과다.
《조선어사전》의 국어사전사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은 일제 시기 조선총독부가 만든 58,639어의 《조선어사전》을 능가한 10만 어휘의 우리말 사전이다. 우리 민족의 손으로 제대로 만든 조선어사전이 없다는 부끄러움을 해소한 것이다. 그의 사전은 우리 민족이 문화 민족임을 자부하게 했다.
둘째,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은 민족어 규범에 의거하여 최초로 편찬한 우리말 사전이다. 이 사전은 조선어학회가 발표한 <한글맞춤법 통일안>(1933)과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1936)을 토대로 편찬했다.
셋째, 조선어사전사(朝鮮語辭典史)에서 ‘한글전용’을 실천했다. 일제시기 일한혼용체의 일어 문장과 국한문혼용체의 조선어 문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언어 현실에서 이 사전이 국문전용을 실천했다는 데서 그 선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넷째, 문세영의 단독 저술이다. 이 점에서 집단적 성과물인 여타 사전들과 차별화된다. 사전을 단독으로 저술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문세영은 그 일을 해냈다.
다섯째, 해방 후 조선어학회(한글학회의 전신)가 편찬하고 있던 《조선말 큰사전》에 영향을 미쳤다.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은 1938년 7월 10일 초판 1,000부를 발행했다. 초판은 수일 만에 매진되었고, 1938년 12월 15일 다시 재판 2,000부를 찍었다. 당시 베스트셀러였다. 이 사전은 조국을 일제 침략자의 손아귀에서 해방하기 위해 중국 관내의 조선의용군에서 활약하던 독립군의 사기를 높이는 역할을 했다. 1941년 조선의용군에서 활동한 김학철(1916~2001)은 《격정시대》에서 “문세영 사전이 우리의 사기를 활화산같이 북돋워 주웠다”고 기술했다.
해방 후 문세영은 우리글을 빛낸 3대 저술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조선어학회는 1946년 7월 8일 우리글을 빛낸 3대 저술가로 《조선문자급어학사》의 저자 김윤경, 《우리말본》의 저자 최현배, 그리고 《조선어사전》의 저자 문세영을 뽑았다. 또 1949년 10월 25일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은 국어학 4대 저서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었다. 이와 같이 문세영과 그의 《조선어사전》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전언에 의하면 문세영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북한 정권이 행한 유명인사 모시기 작전의 대상이 되어 납북되었고, 1952년 별세했다고 한다. 필자는 그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상을 하나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2012년 7월 4일 문화체육관광부에 한글발전유공자 포상 후보자로 문세영을 추천했고, 관련 서류와 증빙 자료를 상세히 첨부했다. 그런데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문세영의 납북을 입증하는 서류를 제출하라는 말을 들었다. 필자는 “문세영 사망에 대한 의견서”만을 제출할 수 있었는데, 불행히도 인터넷상 “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원” 납북자 명단에 문세영에 대한 기록이 없었기 때문이다. 담당 공무원 역시 문세영 선생이 최고의 훈장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했지만, 그의 납북을 입증할 방도가 없어 포상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분단의 비극이다. 그러나 문세영이 국보급 인물인 것은 틀림없다. 이제라도 대한민국이 특별조치를 단행해서라도 그에게 포상하기를 바란다.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은 조선말글 말살 정책에 광분한 일제 말기에 민족어의 말살을 막고 민족어를 보전·유지하는 역할을 해냈다. 그의 우리말 사전 편찬은 문화투쟁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그의 《조선어사전》은 해방 후 1950년대 말 다른 사전들이 나오기 전까지 거의 유일한 국어사전 역할을 했다.
2024년 새롭게 복간되는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을 통해, 그의 우리말과 한글 사랑에 대한 끈질긴 투지와 진면목을 확인하기를 바란다.
– 박용규(前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
우리는 고유한 말과 글자를 지녔으면서도 1910년대까지 우리말 사전을 가지지 못하였다. 결심과 집념의 개척자가 있어야 했다. 누구나 결심을 하나 집념으로 성취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말 사전 편찬의 개척에도 그러했다. 1910년대에 주시경 선생과 그 제자들이 시작한 《말모이》 편찬이 첫 시도였는데 완성을 보지 못하였고, 이후 뜻있는 이들의 노력이 이어졌으나 중도에 그치고 말았다. 그 성취의 보람을 거둔 이는 단연, 청람 문세영 선생이었다.
선생은 1916년에 일본 동경으로 가, 1917년 동양대학 윤리교육과에 유학하면서 아직 우리말 사전이 없는 민족임을 수치스럽게 여겨 사전을 편찬할 결심을 하였다. 20대에 결심하여 20여 년 만에 이뤄낸 결실이 8~9만 어휘의 《조선어사전》이었다. 현대 언어사전의 면모를 갖춘 우리말 뜻풀이사전의 우뚝한 첫 봉우리였다.
이제는 우리말 사전의 고전으로 희귀본(稀貴本)이 되어 구해 보기 어렵게 되었다. 큰 도서관이나 박물관에 가도 혹 소장본으로 깊숙이 보관되어 열람하기 어렵다고 한다. 보물은 실물로 보거나 만져 볼 때 그 가치가 빛난다. 기록의 보물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기록물은 책이다. 책 가운데도 ‘사전(사서)’이 아닐까 싶다. 사전이야말로 인류가 지은 책 가운데 가장 잘 지은 지식의 문헌이다. 귀한 책은 유리 상자 속의 전시물로나 소장본으로 수장고에 간직만 해야 할까? 책도 얼굴과 향기가 있는 생물로 비유할 수 있다. 손으로 책장을 넘기면서 활자로 박힌 말의 행렬을 읽어 나갈 때 책의 생명을 느낄 수 있다.
읽고 쓰기의 수단이 컴퓨터인 디지털 시대를 맞았다. 사전도 종이책 사전이 물러나고 전자사전이 실세가 되었다. 그런 즈음에 우리말 사전 편찬의 첫 성취물인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을 복간한 지식공작소가 있어 반갑다. 고전의 가치와 보존을 생각한 특별한 출판이 아닐 수 없다.
수천 년 책의 역사에서 종이를 이용한 필사본과 인쇄본이 나오게 되면서 인류의 지식은 축적되고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디지털 시대라 해도 우리 눈에 익숙한 책은 활자본이고 종이책이었다. 종이책의 품위와 가치를 아래 두 분의 글로 되새겨 보기 바란다.
책만은 ‘책’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 ‘책’보다 ‘冊’이 더 아름답고 더 책답다. 책은 읽는 것인가? 보는 것인가? 어루만지는 것인가? 하면 다 되는 것이 책이다. 책은 읽기만 하는 것이라면 그건 책에게 너무 가혹하고 원시적인 평가다.
의복이나 주택은 보온만을 위한 세기(世紀)는 벌써 아니다. 육체를 위해서도 이미 그렇거든 하물며 감정의, 정신의, 사상의 의복이요 주택인 책에 있어서랴!
책은 한껏 아름다워라. 그대는 인공으로 된 모든 문화물 가운데 꽃이요 천사요 또한 제왕이기 때문이다.
이태준(1904~?). 《尙虛 文學讀本》. 白楊堂. 1946.
책은 읽고 싶은 독서욕과 함께 갖고 싶은 욕망을 부르는 물성을 갖추어야 한다. 왜 옛 사람들이 책의 장정에 노력을 기울였겠는가. ‘디지털 시대’의 전자책이 대세라고 해도 종이책이 갖는 품격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서점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디자인과 편집이 뛰어난 책이다. 좋은 내용과 반영구의 지질이라면 그 책은 소장본이 된다.
김미옥. “책의 운명”, 《중앙일보》. 2024. 1. 16.
이태준 님이 예찬(禮讚)한 “책”은 종이책이었다. 책에 대한 예찬으로 이보다 더 훌륭한 표현이 있을까 싶다. 오늘날의 전자책을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김미옥 작가의 “책의 운명”은 전자책에서 느낄 수 없는 ‘종이책이 지닌 물성’과 디지털 시대에 전자책이 뛰어넘지 못할 ‘종이책의 품격’을 짚어주었다.
고전은 생각과 지식의 기록 유산이다. 앞으로도 우리 언어문화의 고전을 가까이할 수 있는 고전의 복간을 기대하면서 이만 마무리 짓고자 한다.
– 조재수(前 한글학회 수석편찬원)
200자평
《조선어사전》은 훈민정음 반포 이래 약 500년이 지나 탄생한 최초의 국어사전이다. 표준말, 방언, 옛말, 이두, 속담, 외래어 등 다양한 우리말과 오늘날 사전에는 없는 당대의 유행어 등을 실어 일제강점기 조선의 언어와 문화를 고스란히 볼 수 있다. 2024년 출간하는 《조선어사전》은 1938년 출간 당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영인본이다. 사전 하나 없던 언어를 세계 7위 학습 언어로 성장시킨 출발점을 2024년 다시 만난다.
지은이
문세영
호는 청람(靑嵐). 최초의 국어사전인 《조선어사전》을 비롯해 《중등조선어사전》,《표준가나다사전》, 《최신판 표준국어사전》,《순전한 우리말사전》 등을 펴낸 사전 편찬인. 1935년 조선어학회 표준말 사정위원, 1936년 조선어학회 표준말 수정위원을 지냈다. 1917년 동양대학 윤리교육과에 입학했다. 재학 당시 사전도 없는 민족이라는 수치심에 우리말 어휘를 수집하기 시작했으며, 동경 유학생으로 조직된 문원사(文園社)에서 방정환 등과 민족 각성을 위해 활동하기도 했다. 졸업 후 배재고등보통학교, 근화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어휘 수집을 계속했다. 1928년에 학교를 사직하고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한 문세영은 1938년 7월 10일, 사전 편찬을 결심한 지 22년 만에 8만 7천여 어휘의 《조선어사전》을 발행한다.
차례
지은이 말슴
일러두기
이 책에 쓴 부호
ㄱ~ㅎ
한문 글자 음 찾기
이두 찾기
책속으로
그러면서도 아직까지 말을 하는 데 앞잡이가 되고 글을 닦는 데 가장 요긴한 곳집이 되는 사전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에 느낌이 간절한 지은이는 안타깝고 애타는 마음을 하소연할 곳이 없으므로 평일에 모아 두었던 어휘로 밑천을 삼고 그 위에 널리 고금을 통하여 많은 문헌에서 조선말과 인연이 있는 어휘를 두루 뽑아 한 체계를 세워 이 《조선어사전》을 만들기로 스스로 맹서하였습니다.
원래 사전의 편찬은 책을 짓는 가운데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편찬이 끝났다고 허둥지둥 사회에 공포하기는 너무나 외람한 일인줄 모르는 바가 아니오나 “우리의 사전이 얼른 나왔으면…” 하는 여러분의 바라심에 이바지하고자 불완전하나마 우선 발행하기로 하고 앞으로 고침과 보탬에 힘을 다하여 완전한 대사전까지 만들어 놓기를 지은이의 일생 할 노릇으로 삼겠사오니 이 책을 보시고 가르치실 점이 있는 분은 괴로움을 아끼지 마시고 편달하시어 이 사업의 완성을 꾀하시면 이것이 어찌 이 사람 한 개인의 사업이라고만 하겠습니까.
_“지은이 말슴” 중에서
一, 이 책은 순전한 조선말과 이두는 물론이요 한문으로 된 말 기타 외국에서 들어온 말 및 학술상 용어를 ㄱㄴㄷ의 차례로 벌려 놓고 이에 대하여 낱낱이 우리말로 알기 쉽게 주해한 것입니다.
一, 주해의 표준은 서울 중류 계급에서 쓰는 말로 하고 서울에 없는 말은 그 말 자체를 표준으로 삼아 주해를 붙였습니다.
一, 옛날 말은 지금 발음할 수 있는 것만 수용하였습니다.
一, 동식물은 될 수 있는대로 우리말에 주해를 붙이고 끝에 한문 글자를 적었습니다.
一, 한 말이 여러가지 뜻으로 활용되는 것은 그때마다 ㊀㊁㊂의 부호를 붙이어 갈라서 주해하였습니다.
一, 우리말의 접두어에 딸린 말은 딴 줄을 잡지 않고 그 줄에 잇달아 따루따루 설명하였습니다.
一, 발음이 길게 되는 것은 그 글자의 왼쪽에 두 점 곧 ··을 달았습니다.
一, 이 책은 실용에 간편을 꾀하여 발음의 차례대로 어휘를 정리하고 어원은 설명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상태에 있어서 어원을 캐는 것은 도리어 혼란을 이르킬 폐단이 있을가 염려한 까닭입니다.
_“일러두기” 중에서
거북선: 수영에 딸렸던 병선의 하나. 선조 때 전라 좌수사 이순신이 창조한 철갑선. 그 모양이 거북 같이 된 것.
_“ㄱ∼ㅎ” 중에서
독립: ㊀ 남에게 의뢰하지 않고 자립하는 것. ㊁ 나라가 완전히 독립권을 행사하는 것.
_“ㄱ∼ㅎ” 중에서
매국: 적국과 정을 통하여 제나라의 비밀한 사정을 보수를 받고 적국에 알려주는 것.
_“ㄱ∼ㅎ” 중에서
바눌뼈두부살: 아픈 것을 조금도 참지 못하는 사람을 조롱하는 말.
_“ㄱ∼ㅎ” 중에서
새무릇하다: 마음에 못마땅하게 여기다.
_“ㄱ∼ㅎ” 중에서
식민: 국외의 미개지에 국내의 백성을 많이 이주시켜서 영주하게 하고 본국과 관계를 보전하여 경제생활을 하는 것.
_“ㄱ∼ㅎ” 중에서
일본: 표제어 없음
_“ㄱ∼ㅎ” 중에서
조선: 아시아 동쪽 반도인 우리가 사는 땅.
_“ㄱ∼ㅎ” 중에서
해방: 구속 또는 수금을 풀어 놓는 것.
_“ㄱ∼ㅎ” 중에서
표준국어대사전의 ‘사랑’: ①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②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③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④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⑤ 성적인 매력에 이끌리는 마음. ⑥ 열렬히 좋아하는 대상.
《조선어사전》의 ‘사랑’: ㊀ 귀애하는 것. ㊁ 이쁘게 여기는 것. ㊂ 좋아하는 것. ㊃ 마음속에 두는 것. ㊄ 고이는 것. ㊅ 사모하는 것. 동경하는 것. ㊆ 인자한 것. 가엽게 여기는 것. ㊇ 친절한 것. 잘 대접하는 것.
_부클릿 <사전말끝>, “전승” 중에서
편집자: 지금 우리에게는 말이 너무 당연해진 듯합니다. 이 시점에 《조선어사전》을 출간하는 게 맞는 걸까요?
문세영: 그렇다면 사전이 더더욱 필요한 상황입니다. 말을 잊는다는 건 우리를 잃는다는 것과 진배없지 않습니까? 일본 유학 시절 하숙집에 같이 살던 중국인 유학생이 내게 “너희 나라의 사전을 구할 수 있느냐”라고 물은 적이 있었소. 사전이 있나 한번 찾아봤는데 조선말로 된 사전이 하나 없는 겁니다. 사전이 없는 나라라고 알릴 바에야 나는 하숙집을 옮기는 것을 택했지.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조선어를 카드에 적어 모았습니다.
_부클릿 〈사전말끝〉, “왕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