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의 저자 비방 드농은 외교관이자 행정가이면서 박물관학과 미술사의 선구자로서 루브르박물관 초대 관장으로 널리 알려진, 명실상부 르네상스맨이다. 이 짧은 소설은 드농이 남긴 유일한 문학 작품임에도 프랑스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작품은 ‘리베르티나주’ 문학으로서 18세기 당시 자유분방했던 프랑스의 시대상을 잘 드러낸다. 디드로의 《백과전서》(1751∼1772)에 따르면 ‘리베르티나주’란 “감각의 즐거움으로 이끌어 가는 본능에 굴복하는 습관”으로서, “좋은 품행을 존중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풍습에 맞서려 하지는 않으면서”, “관능과 방탕 사이의 중간 지대”를 유지하려는 태도를 가리킨다. ‘리베르티나주’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6∼17세기로, 이때는 무신앙을 표방하는 자유사상가들의 입장과 태도를 가리켰다. 그랬던 것이 18세기에 이르러 당시 프랑스 섭정기의 문란한 품행이 덧입혀지면서 그 의미가 상당히 달라졌다. 《내일은 없다》 역시 당대 사회 상류층 일부의 사교 양상, 특히 방탕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남녀 관계의 면모를 여과 없이 사실적으로 보여 준다.
이 작품의 주인공 다몽은 이제 막 사교계에 입문한 20대 초반의 청년이다. 당시 상류사회라는 ‘미궁’에 신참으로 발을 들인 젊은이는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부인들’의 지도와 안내를 받게 마련이었다. 다몽 역시 다르지 않았다. 다몽은 자신을 이끌고 남편의 집으로 찾아온 T××× 부인과 온갖 ‘굼뜬 의례와 절차’를 생략해 버린 채 하룻밤 관계에 심취해 들어간다. 이들의 쾌락 추구는 그저 태평한 딜레탕트의 탐미주의적 바람기로 비칠 수 있으나, 가벼움, 그것은 철학의 세기라 불리는 18세기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였다. 따라서 이 이야기에서 도덕적 교훈을 찾으려 할 필요는 없다. 다만 당대 가장 뛰어난 심미안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비방 드농의 심미주의의 절정을 이 글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첫 발표 당시 드농이 아닌, 이 소설을 발견해 잡지에 실은 당대 문인 클로드조제프 도라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졌다. 이후에도 한참 동안이나 드농의 작품임이 제대로 밝혀지지 못하다가 수년 후에야 잘못이 바로잡혔다. 이번 책에는 당대 유명 인사였던 드농이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을 낱낱이 밝히고 도라가 저자로 잘못 알려진 연유에 대해서도 소상히 밝힌 1876년 판본의 편집자 오귀스트 풀레말라시의 글을 함께 실었다. 또한 초판인 1777년과 프랑스대혁명 이후 새로 발표된 1812년 판본을 함께 실어 독자들이 두 글을 비교하여 읽으며 시대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게 했다.
200자평
당대 최고의 심미안이자 루브르박물관 초대 관장으로 널리 알려진 도미니크 비방 드농이 남긴 유일한 문학 작품이다. 이 짧은 소설은 ‘리베르티나주’ 문학의 일종으로서 18세기 당시 자유분방했던 프랑스 상류사회의 남녀 관계를 여과 없이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초판인 1777년과 프랑스대혁명 이후 새로 발표된 1812년 판본을 함께 실어 두 판본을 비교하며 읽을 수 있게 했다.
지은이
도미니크 비방 드농(Dominique Vivant Denon, 1747∼1825)은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이르는 프랑스 예술과 문화의 중심인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외교관이자 행정가이면서 박물관학과 미술사의 선구자로서 루브르박물관 초대 관장으로 널리 알려졌다. 특히 이집트 전문가로서 명성을 쌓았으며, 프랑스 박물관의 컬렉션을 풍부하게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림에 조예가 깊어 예술품을 수집하는 것 외에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또한 문학적 재능을 발휘해, 단 한 편의 단편소설로 프랑스문학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프랑스와 다른 국가 간의 관계를 개선하고 유지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그의 사교적인 성격과 독특한 매력은 귀족 사교계에서 널리 알려졌다. 누구에게나 친근하고 화목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능력으로 귀족 부인들의 살롱에서는 항상 환영받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생애는 예술과 문학, 외교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의 활약으로, 프랑스 문화사에 독특한 반향을 남겼다.
옮긴이
이효숙은 연세대학교 불어불문과를 졸업했다. 프랑스 파리4대학(소르본)에서 베르나노스 연구로 석사학위, 장리스 부인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연세대와 중앙대에서 강의했으며, 번역한 책으로는 크레비용의 《마음과 정신의 방황》,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 자크 아탈리의 《등대》, 르사주의 《질 블라스 이야기》, 루소의 《공연에 관하여 달랑베르 씨에게 전하는 편지》 등이 있다.
차례
들어가기 전에
1777년 판본
1812년 판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입맞춤도 속내 이야기와 마찬가지입니다. 입맞춤이 입맞춤을 부르고,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서로 달아오르게 하지요. 실제로 첫 번째 입맞춤이 주어지자마자 두 번째가 이어지고, 또 그다음이 이어지고, 서두르게 되고, 대화를 끊고, 입맞춤이 대화를 대신했습니다. 마침내 가까스로 숨을 내쉬게 되었지요. 침묵이 찾아왔고, 침묵의 소리가 들렸고(왜냐하면 때로는 침묵도 들리니까), 침묵이 겁에 질리게 했습니다.
2.
안으로 들어가면서 우리는 부르르 떨었습니다. ‘성소(聖所)’, 그것도 ‘사랑의 성소’였으니까요! 사랑의 신이 우리를 압도하여 무릎이 꿇어졌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그 신이 주는 힘밖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힘없는 팔들은 서로 얽어졌고, 계획이라고는 전혀 없이 우리는 그 신전의 한쪽을 점유하던 카나페에 쓰러질 참이었습니다. 달은 기울어 가고, 곧이어 마지막 빛줄기가 거추장스러워진 수줍음의 베일을 걷어 가 버리는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