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플레이보이(playboy)’, ‘호색한(好色漢)’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 편력 기질을 가진 남자를 지칭하는 표현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역사상 실존했던 인물 가운데는 프랑스 사드 후작, 이탈리아의 카사노바가 유명하다. 특히 카사노바는 호색한 이미지를 세계적으로 확산시켜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굳어졌는데 문학과 예술에서 이에 필적하는 캐릭터가 ‘동 쥐앙’이다. 연극 주인공으로 탄생한 동 쥐앙은 발원지 스페인을 벗어나 이탈리아, 프랑스를 거친 다음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공간적 확장에 성공한 것과 더불어 연극을 넘어 오페라, 시, 소설,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재해석된 끝에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몰리에르는 〈타르튀프〉 초연 이후 강력한 종교계 반발을 직면한다. 몰리에르를 절대적으로 지지해 온 루이 14세도 종교계의 성화에 못 이겨 〈타르튀프〉 공연을 금지했다. 몰리에르는 작가로서 위신이 상한 데다 극단 운영이 어려울 만큼 심각한 재정 위기를 맞게 된다. 극단 정상화를 위해 몰리에르가 기획한 작품이 바로 〈동 쥐앙〉이다. 앞서 스페인 극작가 티르소 데 몰리나가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의 초대 손님〉에서 묘사한 돈 후안 캐릭터가 동 쥐앙 신화의 초석이 되었다.
이 작품으로 몰리에르는 최고 수입을 거둬들이며 극단 재정 악화를 만회했다. 무대는 화려했다. 동 쥐앙에게 희생당한 석상을 등장시키고 움직이게 하는 기계장치가 등장했고, 사후 세계를 연출하기 위한 특수 효과가 동반되었다. 여기에 연출가 몰리에르는 무대를 장식할 그림을 별도로 주문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18세기 들어 동 쥐앙은 연극을 넘어 다른 장르에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특히 로렌초 다 폰테가 대본을 쓰고 모차르트가 작곡한 오페라 〈돈 조반니〉가 대단히 성공했다. 두 사람이 합작해 보마르셰의 걸작 〈피가로의 결혼〉을 가극으로 제작해 성공한 지 불과 1년 만이었다.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성공 이후 동 쥐앙 소재는 연극과 오페라를 넘어 소설과 시 장르에서도 다양하게 재해석되어 이른바, ‘동 쥐앙 신화’라는 표현까지 만들어진다. 호프만의 〈동 쥐앙〉, 푸시킨의 〈석상의 손님〉, 레나우의 〈동 쥐앙〉, 보들레르의 시 〈지옥의 동 쥐앙〉, 메리메의 산문 《연옥(煉獄)의 영혼들》, 바르베 도르비이의 산문 《동 쥐앙의 가장 아름다운 사랑》 등이 그 사례다.
200자평
몰리에르의 대표작 〈동 쥐앙〉은 1665년에 초연되었다. 몰리에르는 동 쥐앙을 사회적 규범과 종교적 도덕에 도전하는 유혹적이고 반항적인 귀족으로 묘사한다. 공연은 대성공을 거둔다. 이후 모차르트가 곡을 붙인 오페라 <돈 조반니>가 또 한 번 성공하며 ‘동 쥐앙’은 불멸의 캐릭터로 자리매김한다.
지은이
몰리에르(Molière, 1622∼1673)
몰리에르는 1622년 1월 15일 파리의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장 바티스트 포클랭(Jean-Baptiste Poquelin)이다. 대표적인 몰리에르 전기 작가 그리마레에 따르면 소년기의 장 바티스트는 당시 파리에서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던 클레르몽 학교에서 중등교육을 받으며 에피쿠로스 철학에 동조하는 가상디(Gassendi)의 영향을 받았다. 20대에 접어든 장 바티스트는 여배우 마들렌 베자르(Madeleine Bejart)와 더불어 유명 극단(Illustre Theatre)의 창단에 참여했다. 몰리에르라는 예명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것은 1643년부터다. 하지만 유명 극단은 이내 파산했고, 파리를 떠난 몰리에르 일행은 에페르농 공작의 후원을 받고 있던 뒤프렌(Dufresne)의 극단과 합류한다. 1653년부터 1657년 사이에 몰리에르의 극단은 콩티 공(公)의 후원을 받는다. 몰리에르의 극단은 왕제 오를레앙 공의 주선으로 1658년 10월, 최초의 왕실 공연에 성공하여, 이듬해 <우스꽝스러운 재녀들>의 공연에서 큰 성공을 거둔다. 1622년 2월, 몰리에르는 스무 살 연하의 여배우 아르망드 베자르(Armande Bejart)와 결혼하여 사회적 파장을 야기한다. 같은 해 12월에 공연된 <아내들의 학교>는 코르네유(Pierre Corneille)의 <르 시드> 논쟁 이후 가장 심각한 연극 논쟁에 휘말린다. <아내들의 학교 비판>과 <베르사유 즉흥극> 등으로 자신의 연극관을 변호하던 몰리에르는 문제작 <타르튀프>로 다시 한 번 격한 논쟁을 야기하며 급기야 공연 금지 처분을 받는다. 1666년 몰리에르는 악화된 건강에도 불구하고 <인간 혐오자>를 무대에 올려 <타르튀프>, <동 쥐앙>과 더불어 성격희극의 3대 걸작을 완성한다. 1668년에는 <앙피트리용>을 필두로 <조르주 당댕>, <수전노>를 연속으로 무대에 올리는 역량을 과시한다. 1673년 2월 17일, 발레희극 <상상으로 앓는 환자>의 네 번째 공연 후에 쓰러진 몰리에르는 더 이상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영면한다.
옮긴이
이경의
1962년 인천 부평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초·중·고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서강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며 연극 장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파리 4대학에서 프랑스 고전극 연구를 시작해 몰리에르 연극에 관한 연구로 석사과정과 박사준비과정을 이수한 데 이어, 1994년 〈17세기 프랑스 희극에 등장하는 바르봉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6년부터 경북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프랑스 문학사를 비롯하여 프랑스의 역사, 파리의 역사, 프랑스 동화 및 영화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제5막
해설
몰리에르 작품 연보
지은이에 대해
몰리에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동 쥐앙 : 위선이라는 악덕이 유행하고 모든 종류의 악덕이 미덕으로 치부되는데 부끄러울 게 어디 있느냐? 요즘엔 착한 척하는 게 최상의 역할이고 남을 속여야 얻을 게 많은 법이다. 위선을 떨려면 남을 속이는 기술이 필요한데 설사 그게 발각되어도 아무도 항의하지 않는단 말이야. 다른 악덕은 전부 비난의 대상이라 누구나 소리 높여 공격하지만, 위선은 특별한 악덕이기에 모든 사람의 입을 틀어막을 수 있고 벌 받을 걱정을 전혀 안 해도 된단다.
118-1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