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레터 [주간 인텔리겐치아]입니다.
현대인에게 실존의 위기는 만성 질환과도 같습니다. 그 이유도 각양각색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여파로 ‘사실’에 대한 믿음이 깨졌고, 일터와 가정 사이 불균형이 여전히 우리를 위협하며, 첨단 기술이 삶의 전 영역을 송두리째 뒤엎고 있는 데다 타자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사회를 뒤덮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논의가 필요한 상황임에도 목소리를 내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듯합니다. 시대에 뒤처지고 경직된 인문 사상은 이러한 위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존 학문이 배제하거나 간과한 영역을 다시 들여다보고 문제 상황을 돌파하려 분투한 사상가들이 있습니다. 각각 철학, 사회학, 기술, 비평에서 침묵을 깨트린 힘찬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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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물질적 존재를 말하다 《마르쿠스 가브리엘》
‘탈진실’의 시대, 우리는 포퓰리즘의 선동과 온갖 음모론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독일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이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새로운 실재론을 주창합니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형이상학적 ‘세계’ 개념을 과감히 폐기하고, 존재를 둘러싼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는 ‘의미장’ 개념으로 존재론적 다원주의의 장을 엽니다. 모든 것을 물질적으로 환원해 설명하려는 자연주의가 결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주제들, 즉 도덕적 가치, 예술의 창작 과정, 심지어 픽션 속 존재들을 철학적으로 생각해 볼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김남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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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와 가정의 미묘한 감정을 말하다 《앨리 러셀 혹실드》
오랫동안 사회학은 사회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을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감정’을 그저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간과해 왔기 때문입니다. 앨리 러셀 혹실드는 이러한 상황에 도전하며 감정 사회학의 기틀을 다진 사회학자입니다. 탁월한 사회학적 상상력과 끈질긴 질적 탐구로 감정노동, 일과 가족의 관계, 이주 여성, 트럼피즘 등을 세밀히 연구했습니다. 혹실드로 인해 한층 넓어진 사회학의 지평에서 우리 일상을 분석하고 해석할 개념을 듬뿍 얻을 수 있습니다.
함인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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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사회에서 자유를 말하다 《빌렘 플루서, 기술 이미지의 우주로》
산업 혁명 이래 기술 발전은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한 만큼 인간 소외와 삶의 부조리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철학자 빌렘 플루서에 따르면 이는 기술이 마치 ‘블랙박스’와 같이 그 내부 작동 원리를 알 수 없다는 데 기인합니다. 플루서는 기술이 도구에서 기계 그리고 기구로 점차 진화하는 과정을 탐색하며, 기술 시스템에 종속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실존을 ‘재발명’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챗지피티를 비롯한 첨단 기술이 인간 행위와 사고에 점점 더 깊이 침투하는 오늘날, 자유를 잃지 않게 도울 사유를 제공합니다.
이진욱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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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타자를 말하다 《아즈마 히로키》
불신과 혐오가 만연한 사회는 우리에게 피로를 안깁니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논의는 예전보다 훨씬 험난해 보입니다. 각자도생이 사회의 제일 원리로 자리 잡은 데다 ‘타자를 존중하라’고 말하던 전통 인문 사상이 힘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아즈마 히로키는 그러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마땅히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연결에 실패할 가능성을 뜻하는 ‘오배’ 개념에 기반해 ‘오타쿠’, ‘관광객’ 등 친숙한 소재들을 도구 삼아 곤경을 헤쳐 나갈 새로운 타자 철학을 정립해 나갑니다. 철학과 비평의 쓸모를 깊이 고민한 히로키의 사유에서 다시 타자를 말할 용기를 얻어 보시길 바랍니다.
한송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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