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감옥 속에 핀 꽃’이라는 뜻의 《옥중화》는 한국의 대표적인 고전소설 《춘향전》을 개작한 작품이다. 신소설(新小說) 작가로 알려진 이해조(李海朝)가 판소리 광대들의 창 〈춘향가〉를 듣고 이를 산정(刪正, 쓸데없는 것을 없애 바르게 하다)해 1912년 1월 1일부터 3월 16일까지 《매일신보》에 연재했다. 당시로 보면 고전소설을 새롭게 고친 일종의 뉴트로(newtro)인 셈이다.
연재 당시에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옥중화》는 같은 해 8월 박문서관과 보급서관에서 열흘 간격으로 단행본으로 출판되며 활자본 고전소설이 성행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활자본으로 출판된 《춘향전》 이야기는 대부분 《옥중화》를 저본으로 하고 있다. 연간 7만 권 정도가 팔리고, 100여 종의 이본을 파생시킨 《옥중화》는 역설적으로 ‘근대 문학기’를 대표하는 독서물로 자리매김해 1920~1930년대 근대 소설을 제치고 독보적인 베스트셀러로서의 지위를 누렸다.
이광수가 《춘향전》을 개작했을 때 《옥중화》를 염두에 두고 독자적인 제목을 달지 못해 “하나의 이야기”라는 의미의 ‘일설(一說)’을 덧붙여 《일설 춘향전》이라 했으며, 하야가와 고슈(早川孤舟)가 1923년 최초의 민간 제작 영화 〈만고열녀 춘향전〉을 제작할 때도 변사가 《옥중화》를 읽어 주고 거기에 맞춰 배우들이 연기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근대 문학기 《옥중화》는 단순한 독서물이 아니라 조선 문화계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던 하나의 ‘문화 현상’이었던 것이다.
《옥중화》가 근대 문학기 최고의 베스트셀러로서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춘향전》을 당대의 감각에 맞게 새롭게 개작했기 때문이다. 만남과 사랑, 이별과 수난 그리고 재회라는 《춘향전》의 통속적 연애담이 대중들에게 흥미를 주었지만, 그 속에는 당대 대중들이 요구하는 모더니티의 인식과 미학이 내재해 있다. ‘열(烈)’이나 ‘충(忠)’과 같은 봉건적 윤리 규범이 아니라 개인의 권리를, ‘절행(節行)’이 아니라 남녀 간의 상호 존중과 신뢰에 바탕을 둔 애정 윤리로 새로운 시대를 맞아 남녀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에 대해 대안을 제시했다.
200자평
신소설 작가로 알려진 이해조는 널리 구연되고 있던 대표적인 판소리 4작품〈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토끼 타령〉을 산정(刪正)해 신문이라는 근대적 매체 안에서 활자화했다. 듣기 텍스트를 읽기 텍스트로 전환하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감옥 속에 핀 꽃’이라는 뜻의 《옥중화(獄中花)》는 한국의 대표적인 고전소설 《춘향전》을 새롭게 개작한 작품이다. 1912년 1월 1일부터 3월 16일까지 《매일신보》에 연재됐다. 1920~1930년대 근대 소설을 제치고 독보적인 베스트셀러로 이름이 높았으며, 이후 춘향 이야기를 다루는 모든 소설과 영화의 저본이 되어, 지금까지도 단순한 독서물이 아닌 문화계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문화 현상으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지은이
이해조(李海朝, 1869∼1927)는 친일 개화 노선을 지향한 이인직(李人稙, 1862∼1916)과 달리 애국 계몽 노선을 표방했다. 경기도 포천에서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麟坪大君)의 10대 손으로, 이철용(李哲鎔)의 3남 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열재(悅齋), 이열재(怡悅齋), 동농(東濃)이며, 필명은 선음자(善飮子), 하관생(遐觀生), 석춘자(惜春子), 신안생(神眼生), 해관자(解觀子), 우산거사(牛山居士) 등을 사용했다.
1906년 11월부터 잡지 《소년한반도(少年韓半島)》에 소설 《잠상태(岑上苔)》를 연재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주목되는 작품인 《자유종(自由鐘)》(1910)은 봉건 제도에 비판을 가한 정치적 개혁 의식이 뚜렷한 작품이다. 특히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 신교육의 고취, 사회 풍속의 개량 등 계몽 의식이 두드러진다.
처첩 문제, 계모의 박해 등을 보여 주는 《빈상설(鬢上雪)》(1908)·《춘외춘(春外春)》(1912)·《구의산(九疑山)》(1912)이나 미신 타파를 내세운 《구마검(驅魔劍)》(1908), 일반적인 젊은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의 사연에 중점을 둔 《화세계(花世界)》(1911), 《원앙도(鴛鴦圖)》(1911), 《봉선화(鳳仙花)》(1913) 등 36편의 작품을 발표해 신소설 최고의 작가로 평가된다. 모두 봉건 부패 관료에 대한 비판, 여권 신장, 신교육, 개가 문제, 미신 타파 등의 새로운 근대 의식과 계몽 의식을 담고 있다.
특히 1912년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토끼전》 등의 판소리를 명창 박기홍(朴起弘) 조(調)나, 심정순(沈正淳)의 창(唱)을 듣고 각각 《옥중화(獄中花)》, 《강상련(江上蓮)》, 《연의 각(燕의 脚)》, 《토의 간(兎의 肝)》 등으로 산정(刪正)해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연재하고 단행본으로도 출판해 ‘활자본 고소설(이야기책)’의 유행을 주도했다.
옮긴이
권순긍(權純肯)은 1955년 경기도 성남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고전문학 전공)를 받았다. 경신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1993년~2021년 세명대학교 미디어문화학부 한국어문학과 교수를 지냈다. 지금은 세명대 명예교수로 있다.
‘이야기’를 좋아해 40년 넘게 고전소설을 연구해 왔으며, 한국고소설학회, 한국고전문학회, 우리말교육현장학회 회장을 두루 지냈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검정심의위원을 맡기도 했으며, 2008년∼200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엘테(ELTE)대학교 한국학과 초빙 교수를 지냈다.
우리 고전소설을 연구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과 고전의 다양한 콘텐츠를 대상으로 연구하고 활용하는 노력을 계속해 오고 있다. 《역사와 문학적 진실》(1997), 《활자본 고소설의 편폭과 지향》(2000), 《고전소설의 풍자와 미학》(2005), 《고전소설의 교육과 매체》(2007), 《살아 있는 고전문학 교과서》(공저, 2011), 《한국문학과 로컬리티》(2014), 《고전소설과 스토리텔링》(2018), 《헌집 줄게 새집 다오》(2019) 등의 책을 썼으며, 《홍길동전》, 《장화홍련전》, 《배비장전》, 《채봉감별곡》 등의 고전소설을 쉽게 풀어 펴냈다.
2022년 〈《춘향전》의 근대적 변개와 정치의식〉으로 이주홍문학연구상을 수상했다.
차례
제1장 광한루의 인연
제2장 사랑, 사랑, 내 사랑아
제3장 이별이야, 이별이야
제4장 신임 사또 내려오네
제5장 열녀 춘향 어찌하리
제6장 이 도령, 암행어사로 내려오다
제7장 암행어사, 출두야
해설 : “모지도다, 모지도다! 서울 양반 모지도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모지도다, 모지도다, 서울 양반 모지도다. 어제 저녁 감옥에 와서 내 형상을 보셨는데, 나더러만 말씀하고 마음 놓고 있으라면 지난 밤 그 간장을 안 녹이고 안심하고 있었을 걸. 저년 어찌 아니 죽나 죽는 꼴을 보려는 것을, 어리석은 춘향이는 이를 갈고 아니 죽고 행여나 살아나서 낭군을 다시 만나 지난 고생 다 잊어버리고 백 년 동안 같이 살리라 단단히 맹세하려던 년을 불쌍히는 아니 알고 죽이기로 드신 마음 내 몰랐지! 내 몰랐어! 그 마음 알았으면 내가 벌써 없을 걸. 아이,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