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주인공 모자 한씨와 장영이 절(節)과 효(孝)를 성취하는 과정을 그리는 소설이다. 특이한 것은 두 사람이 절과 효를 실천하는 과정이 ‘복수’라는 행위를 통해 나타난다는 점이다. 남양태수 오세신이 한씨의 미모를 탐해 그녀의 남편 장필한을 죽이자, 한씨는 오세신을 독살해 원수를 갚는다. 이에 오세신의 아내 진씨 또한 남편을 위해 복수를 결심하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수는 《장한절효기》의 인물들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200자평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수 이야기
《장한절효기》는 남양태수 오세신이 세 살배기 장영의 부친 장필한을 모함해 옥에 가두고 나아가 장필한의 아내 한씨를 탐해 장필한을 죽게 한 데서 시작한다. 자신의 남편이 오세신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을 안 한씨는 혼인을 빙자해 오세신을 자기 집으로 유인해 독살한 후 잔인하게 사체를 훼손하고 도주한다. 한씨의 복수는 또 다른 인물에게 복수심을 일으킨다. 오세신의 아내 또한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한씨를 뒤쫓게 된 것이다. 한편, 모친과 헤어져 양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던 장영 또한 친부모의 억울한 사연을 알고는 오세신과 모의했던 영릉태수 진한을 죽여 복수를 완성한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외국에 사신으로 갔던 진씨의 부친 진무가 귀국해 장영과 진한의 대결에서 장영에게 목숨을 잃은 아들 진건의 원수를 갚고자 한 것이다. 이쯤 되면 ‘복수’란 《장한절효기》의 서사를 관통하는 핵심어이자 작중 인물들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으로, 이 작품의 서사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꼬리에 고리를 무는 복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송(宋)vs원(元)의 대립구도
《장한절효기》는 영웅소설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원나라 초기,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족이 세운 송나라가 망하고 몽골의 나라인 원나라가 건국된 ‘송말원초’를 배경으로 한다. 장영 부자를 비롯한 송나라 유민들과 남양태수 오세신을 필두로 한 원나라 관원들의 대립이 《장한절효기》의 기본 구조다. 따라서 원나라 관원인 남양태수 오세신과 영릉태수 진한의 모함에 의한 장필한의 죽음은 개인적 차원의 불행을 넘어 망국의 유신에게 주어진 ‘숙명’이라는 거대한 차원으로 확대될 수 있다. 주목할 것은 원나라에 대한 작자의 인식이다. 작품에서 원나라 관원들은 하나같이 불의하며, 그들을 돕는 조력자들에게는 ‘사특한 요물’의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 반대로 장영을 비롯한 송나라 유민들은 선하며, 그들을 돕는 조력자들은 ‘신격의 구원자’로 그려진다.
‘송말원초’라는 작중 배경은 한족의 나라가 망하고 이민족이 세운 나라가 중원의 주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선 조선 후기의 시대 상황과 유사하다. 즉 송나라 유민들과 원나라 관원의 대립 구도, 나아가 그들에게 부여된 악(惡)과 선(善)의 구도는 조선 후기 청나라에 대한 변치 않는 부정적인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의 배경인 송말원초와 작품이 창작된 조선 후기의 정치 상황을 겹쳐 보며 《장한절효기》에 흐르는 숭명배청(崇明排淸) 의식을 읽어 내는 주수민 교수의 섬세한 독법은 이 작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던지며 읽는 재미를 배가한다.
옮긴이
주수민(周修旼)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고소설을 공부하고 2017년 〈고전소설에 나타난 중국인식 연구−원·청 배경 작품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익대학교 및 남서울대학교에서 시간 강의를 했으며, 홍익대학교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2년간 근무한 뒤 2020년부터 현재까지 한국학중앙연구원 전통한국연구소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처음에는 중국 배경 작품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고소설의 서사적 특성을 고려해 고소설의 ‘중국 배경’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해당 작품들에 나타난 중국에 대한 작자 인식을 연구했고 이를 통해 중국 배경 고소설 작품들이 중국에 대한 소설 향유자들의 인식을 상당히 입체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고소설의 시공간 배경에 대한 실증적인 검토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현전하는 상당수의 작품을 검토의 대상으로 해 유형별로 배경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다. 현재는 중국의 역사적 왕조를 배경으로 서사를 전개하고 있는 조선 후기 장편소설 작품들을 대상으로 각 작품에 나타난 중국의 역사담이 어떠한 서사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가를 연구하고 있다. 〈〈장백전〉의 형성동인과 주제의식〉 및 〈〈현수문전〉 이본 연구〉를 비롯해 〈조선 후기 가문소설의 시·공간 배경과 재위 황제〉, 〈한국 가전체소설 작품들의 존재 현황에 대한 종합적 이해〉, 〈〈양현문직절기〉에 나타난 당나라 현종 연간의 역사 수용 양상과 그 의미〉 등 여러 편의 논문을 학계에 발표했다.
차례
장한절효기
원문
해설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날이 저물자 한씨는 계향을 내당으로 보내 오세신을 살폈는데 그는 이미 죽은 지 오래였다. 이 말을 들은 한씨는 손에 칼을 들고 내당에 들어가 세신의 사지를 자르고 간(肝)을 꺼내 장 시중의 영위 앞에 놓았다. 그러고는 직접 제문을 지어 제사했으니…
– 본문 18∼19쪽 중에서
한쪽에서 개와 돼지가 무언가를 다투어 뜯어먹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사람의 다리였다. 이를 본 하인들이 놀랍고도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어 내당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사람의 시체가 있었는데 사지와 머리는 없었고 배는 갈라져 있었다. 또한 주변을 살펴보니 탁상 위에 두 눈은 노끈으로 꿰었고 가운데 칼이 박힌 머리가 놓여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오 태수의 머리였다. 하인들이 깜짝 놀라 흩어져 사지를 모았으나 결국 두 팔을 찾지 못하고 남아 있는 신체 부위만을 싸서 관아로 돌아왔다. 이 소식을 들은 진씨는 그 자리에서 기절해 쓰러졌다. 잠시 후 겨우 정신을 차린 진씨는 남편의 참혹한 모습을 보고는 더욱 슬퍼 통곡하며 초상을 치렀다. 그러고는 한씨를 잡으면 천금을 상으로 주겠다고 하인들을 독려하자 이들 중 백여 명이 자원해 한씨를 찾아 사방으로 흩어졌다.
– 본문 21∼22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