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희망
이효성의 <<삶과 희망>>
단지 희망 없는 이들을 위해
“우리이게 희망이 주어졌다”고 벤야민은 말했다. 수없는 자살 뉴스를 보면서 이효성은 희망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삶은 변화고 시련이며 고통이다. 희망은 절망을 가능성으로 보는 힘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시작될 때 삶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가 된다.
왜 지금 희망을 말하는가?
빈익빈 부익부, 학업과 취업 경쟁으로 고통받고 절망하는 사람이 많다.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거두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자살 뉴스를 자주 접하면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희망이란 무엇인가?
바라는 것을 성취하거나 사태를 잘 마무리하게 될 것이라는 긍정 사고이자 느낌이다. 바라기만 하는 수동태가 아니다. 바라는 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적극적 자세와 의지다.
희망에 주목한 계기는 무엇인가?
미국 유학 시절 발터 벤야민의 글귀를 발견했다. “단지 희망없는 이들을 위해 우리에게 희망이 주어졌다.” 당시 나 자신도 한국 민주화의 실패에 좌절하고 신군부의 쿠데타와 독재에 분노했다. 개인적 시련까지 겪는 우울한 상황에서 그 말의 울림은 더 컸다.
희망만 있으면 삶이 편안한가?
아니다. 희망만으로 실현되는 것은 거의 없다. 하지만 희망 없이 시작하고 견딜 수 있는 삶도 없다. 희망은 삶의 험로를 꿋꿋이 헤쳐갈 수 있는 용기의 원천이고 의지의 후원자다.
희망의 특성은 무엇인가?
미래지향적이다. 삶이 퇴행하거나 과거에 붙잡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 희망은 가변적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거기에 맞게 자신을 변모시킨다. 희망은 희망 자체의 존재를 우리에게 일깨우고 언제든 불러들이게 한다.
희망의 힘은 얼마나 큰가?
플라시보로 불리는 허구 약은 상당한 효능을 발휘한다. 신비성 때문이 아니라 바로 치유에 대한 기대와 희망 때문이다.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면 호르몬 분비나 면역 체계에 변화를 일으켜 병이 호전된다.
희망이 있는데 사람들은 왜 절망하나?
미래에 더 나은 삶이 올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참고 견디면 시련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더 성숙해질 수 있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자포자기한다.
삶에서 고난은 어떻게 벗어날 수 있나?
사소한 어려움도 두려워하면 극복하기 어렵다. 아무리 큰 어려움도 극복 가능한 것으로 인식하면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 속에서 실마리가 풀린다. 인간은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 성숙하고 강인한 인물로 거듭난다. 고통은 회피 대상이 아니다.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대결해야 할 대상이다.
삶의 기본 원리는 무엇인가?
변화다. 즐거움이 다하면 슬픔이 오고, 슬픔이 다하면 즐거움이 온다. 좋을 때는 어려울 때를 생각해 겸손하고, 어려울 때는 좋을 때를 생각해 의연해야 한다.
인간 삶에서 가장 위대한 힘은 무엇인가?
황제펭귄은 남극의 영하 60도 눈보라 속에서 알을 낳고 부화시켜 새끼를 기른다. 인간도 어떤 환경에서든 살아남으려 애쓴다. 수많은 불행에도 꿋꿋이 삶을 이어간다. 생명력은 인간의 가장 위대한 힘이다.
삶의 특권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생존은 가능성이다. 사형수나 말기 암 환자들은 살아 있기 때문에 무엇인가 할 수 있는 현재의 순간순간이 너무 소중하게 다가오고 멀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는다고 한다. 일상의 삶에서 우리는 가능성의 소중함을 쉽게 잊어버린다.
희망은 삶의 질과 어떤 관계가 있나?
절망은 사람들을 저급하게 만드는 파괴적인 힘이다. 희망은 사람들을 고상하게 만드는 건설적인 힘이다. 희망이 없는 이들은 조그만 시련도 견디지 못해 불미한 일을 저지르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희망을 가진 이들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의연히 처신하는 훌륭한 인품을 발휘한다.
인간은 어떻게 보람 있게 살 수 있는가?
과업을 수행함으로써,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도움으로써, 어떤 명분을 위해 헌신함으로써 커다란 기쁨과 활력을 얻을 수 있다. 일상에서 접하는 자연에서, 생활에서 많은 감동과 즐거움을 만날 수 있다.
누구를 위하여 이 책을 썼는가?
고난과 좌절 속에서 고통 받는 이들에게, 인생의 큰 전환이나 중요한 시도를 앞두고 불안 속에서 번민하는 이들에게 이야기했다. 누구나 언젠가는 고난과 좌절을 겪고 불안 속에서 번민한다. 희망의 메시지는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효성이다.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다. 소통학 교수지만 소통학의 틀에 갇히지 않고 폭넓은 탐구와 사색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