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젊은평론가상 수상 작품집
한국문학평론가협회의 ≪2013 젊은평론가상 수상 작품집≫
순심으로 볼 수 있다면
올해의 젊은 평론가는 이경재다. 장편소설의 가능성을 찾아 나섰다. 찾았는가? “純心으로 구체적인 삶과 시대의 명암을 절실하게 응시”한다면 새로운 미학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 관념이나 스타일의 반복은 지금의 현실과는 무관한 물신화된 관념론을 소설적으로 번안하는 일에 불과할 수도 있다. 진정한 장편소설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시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물론이고, 그러한 성찰의 결과물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한 자기만의 고유한 방법론적 탐구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이것은 단순히 시각의 확보가 안 되니까 스타일이라도 새롭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전망의 확보를 위해서라도 우선은 순심(純心)으로 구체적인 삶과 시대의 명암을 절실하게 응시하고, 그에 바탕을 두고 새로운 미학적 형식을 창출하자는 간절한 제안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일군의 작가들은 자기만의 목소리를 발견하는 데 나름의 성과를 내고 있다. 이 글에서 집중적으로 살펴본 김사과 역시 그중 하나다. 김사과는 산문적인 견고함으로 시대의 리얼리티를 재현하기보다는 시적인 목소리로 시대의 실재를 환기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현실이 가하는 폭력과 공포를 ‘몫 없는 자들’이 느끼는 실감의 차원에서 이미지나 비유 혹은 분위기를 통해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김사과가 그려 내고 있는 대상은 현실과는 무관한 가상의 공간으로 치닫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 가상의 공간이야말로 시대 현실이 부과한 심리적 실재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현실과의 관련성은 더욱 끈적하다고 볼 수 있다. 손아람이나 유현산의 경우에서도 시대 현실과 호흡하기 위한 새로운 문학적 고투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우리는 문학의 기로에 당당하게 서 있는 신인류들을 만나 왔는지도 모른다. ≪테러의 시≫에서 마지막으로 울려온 속삭임인 “그들이 가까이 왔어”라는 말처럼 말이다.
<장편소설의 새로운 가능성>, ≪2013년 젊은평론가상 수상 작품집≫, 이경재, 35~37쪽.
‘사재기 베스트셀러’는 누가 책임질 소동인가?
출판사들의 도덕적 해이나 상업적 술책을 비난하는 일은 손쉽다. 하지만 실제 책임은 ‘베스트셀러’에만 관심을 갖는 우리 사회, 그것에 맞추어 책을 출간하는 출판업계,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좋은 책’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이끌지 못하는 평론계 모두에 있다.
좋은 문학이 좋은 독자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문학은 잘 만들기만 하면 소비자들이 알아서 현명하게 구매하는 일반적인 상품과는 다르다. 심지어 상품도 광고를 통해서 소비자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이미지를 노출함으로써 구매 행위를 반복적으로 교육한다. 문학은 상품보다 더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접할 수 있어야 하며 지속적으로 교육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문학 역시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우리의 사회적 흐름에 파묻혀 버린 것이 현실이다.
비문학의 시대에 문학 평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수많은 문학 작품이 홍수처럼 쏟아진다. 독자가 모두 감당하기는 어렵다. 평론가는 이 무수한 작품들을 해석, 평가해서 진정한 가치를 가진 작품을 선별한다. 즉, 물량 공세에 파묻힌 진정한 작품의 가치를 드러내고, 독자들을 가치 있는 작품으로 안내한다. 동시에 문학의 현주소를 정확히 파악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오늘, 한국 문학 평론의 자화상은 어떤 모습인가?
지나치게 학술적인 가치에만 매달린 강단 평론이나 작품 외부적인 기준으로 그 가치를 추인해 주는 이른바 ‘주례사 비평’ 등이 여전하다. 이미 공인된 작품의 가치에 매달려 개성 없는 관점의 평론을 쏟아 내느라 새로운 작품들을 발굴하는 일에 인색한 것 또한 문제다.
이 시대 문학 평론에 원칙이 있는가?
독자를 고려해야 하고, 독자에게 좋은 작품을 선보이는 데에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평론의 원칙은 이것 하나이고, 하나일 수밖에 없고, 하나뿐이어야 한다.
젊은평론가상은 무엇인가?
해마다 가장 활발하고 수준 높은 평론 활동을 펼친 젊은 비평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동시대 젊은 비평의 흐름과 경향, 역할에 주목해 시상한다. 2000년에 시작해 올해로 14회째다.
젊은평론가를 고르는 기준은?
한 해 동안 각종 문예지에 발표되었던 평론 중에서 젊음의 열정과 패기로 우리 평단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우수한 작품을 고른다.
수상자의 면면이 어떻게 이어졌나?
홍용희, 권명아, 오형엽, 김춘식, 이재복, 이상숙, 고인환, 홍기돈, 김문주, 이성천, 허혜정, 고명철, 오태호다. 모두 한국 문학 평론계의 젊은 세대를 대표하면서 2000년 이후 우리 문학의 흐름을 주도한 평론가다.
올해는 어떤 평론이 후보에 올랐나?
김영희의 <귀신전과 연출의 변>, 남승원의 <‘동일성의 시론’으로 본 균열의 미학>, 서영인의 <문학의 빈곤과 전환의 상상력>, 서희원의 <분노의 날>, 소영현의 <서발턴을 위한 문학은 없다−김이설론>, 송종원의 <미래가 되지 않은 것들>, 이경재의 <장편소설의 새로운 가능성>, 이성혁의 <한국 근대시와 고통의 시화>, 정주아의 <‘계모 찾기’, 버림받은 세대와 냉혹한 모성의 세계>, 차미령의 <이야기꾼의 탄생과 진화2−윤성희론>이다. 다양한 목소리로 우리 문학의 현장을 점검하는 평론들이다.
후보 선정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매년 11월 즈음 임원진은 그해 문학 월·계간지에 나온 모든 평론들을 대상으로 후보 작품들을 서로 추천·교환한다. 추천한 평론 작품들의 목록을 취합한 뒤, 일차적으로 같은 책의 동일한 기획에 속한 작품들은 되도록 한 편만 남기고 탈락시킨다. 한 기획 아래 쓰인 평론들은 그 글의 수준과는 무관하게 유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추천한 임원들의 평을 들은 뒤, 그 기획을 대표할 만하거나 가장 개성적인 시선으로 기획 의도에 접근하고 있는 글을 선정한다.
2013년 수상 후보작들의 특징은?
다양한 목소리로 우리 문학의 현장을 점검한다. 동시대 우리 문학의 다양한 현장의 모습과, 그에 반응하면서 우리 문학을 이끌어 가는 평론가들의 치열한 고민과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시론의 경향은 어땠나?
시를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데, 시인의 역할은 점점 커져만 가는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시 문학이 가진 힘에 주목한다. 최근 젊은 시인들의 작품에 주목하면서 그들의 시 세계에 내재된 ‘결핍감과 상실감’이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시대에 내재된 ‘불안’을 반영하고 있다는 글부터, 그러한 젊은 시인들의 특징을 기존의 시론과 연결해 ‘균열의 미학’이라 부르면서 우리 문학의 변화·발전을 이끌어 갈 원동력으로 파악하는 글, 그리고 섣불리 ‘미래파’ 이후를 말하기보다 ‘충분히 역사화하지 못한 미래파 이전의 시들’이나 한국 근대시가 보여 주는 ‘심적 고통’을 계보학적으로 고찰하는 글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문학의 한계와 새로운 가능성을 진단한다.
소설 평론이 주목한 문학 지형도는?
정치적인 영향력의 폐해가 빚어낸 골을 따라 만들어진다. ‘우울한 현실’에 대한 일종의 저항 의지로 표출된 ‘유쾌 발랄의 재치와 기지’ 또는 ‘맹렬한 분노’에 주목하는가 하면, 사회적 폭력이 닿는 가장 최종의 현장이자 구체적인 장소로서 ‘여성의 몸’을 포착한다. 또 출구 없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느라 ‘지쳐 버린 청년들’의 현실 탐색을 자세히 분석하기도 한다. 물질적 풍요를 지시하는 가시적인 수치마저 무력화하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일깨우는 든든한 목소리들이다.
수상작은 어떻게 결정했나?
결정된 수상 후보 작품들을 가지고 일차 모임을 갖는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조금 늦은 1월 4일에 임원진의 일차 모임이 있었다. 총 대상 작품은 16편. 임원진 각자 추천의 변을 듣고 토론을 거치는 가장 어려운 과정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장시간의 토론을 거쳐 10편의 수상 후보 작품들을 선정했다. 그리고 10편에 대한 추천 의견을 문서화해서 교환한 뒤 임원진 모두 이 작품들을 숙독한 후에 다시 수상작 결정 모임을 갖기로 하고 일차 모임을 마쳤다. 예년에 비해 조금 더 긴 시간을 갖고 숙독한 뒤, 3월 12일에 2차 모임을 가졌다. 후보 작품들이 가진 다양한 문제의식과 성과만큼 치열한 의견이 오고 간 자리에서 수상작을 결정했다.
올해의 수상작은?
이경재의 소설 평론, <장편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이다.
왜 이경재였나?
한 분야에서 새로운 동력은 항상 건전한 논쟁을 통해 나온다. 수상작인 <장편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은 최근 우리 소설 장르를 중심으로 뜨겁게 벌어졌던 ‘장편소설 논쟁’의 한계를 지적하는 한편 그 가능성을 이어받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 하나의 문학 작품에 대한 단편적인 해설과 평가를 지양하고 복잡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문학의 가치를 고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사과, 손아람, 유현산 등 신예 작가들을 대상으로 개별 작품의 문학적 성과를 분석하는 동시에 독자들과의 소통을 고려하고 있는 점 역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평소 문학과 사회의 경계를 넘고자 노력하던 필자의 비평 노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이경재는 누군가?
200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으로 등단했다. ≪단독성의 박물관≫, ≪끝에서 바라본 문학의 미래≫ 등의 저서를 출간하고, 계간 ≪문학수첩≫ 편집위원을 지냈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우리 문단의 주요 평론가다.
이 책에는 어떤 작품을 실었나?
2013년 젊은평론가상 수상작과 아홉 편의 후보작을 엮었다. 동시대 우리 문학의 다양한 현장의 모습과, 그에 반응하면서 우리 문학을 이끌어 가는 평론가들의 치열한 고민과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특집으로 실은 <젊은 평론가의 선택, 2012년 한국 문학 최고작>은 우리 문학을 접하는 즐거움을 한층 크게 만들어 줄 것이다.
<젊은 평론가의 선택, 2012년 한국 문학 최고작>이란?
평론의 본질적인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 기획이다. 젊은평론가상 후보에 오른 평론가들은 모두 현재 우리 문학 현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의 검증된 시선으로 2012년 한 해에 출간된 작품 중 추천할 만한 작품들을 선정한 뒤, 그 추천 이유에 해당하는 짤막한 서평을 붙였다. 모쪼록 독자들에게 ‘좋은 책’을 안내하는 독서의 길잡이기 되기를 바란다.
당신은 누군가?
김종회다. 경희대 국어국문과 교수이고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