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고금의 웃음 다발’이라는 뜻의 《고금소총(古今笑叢)》은 현묵자 홍만종(洪萬宗)이 우리나라의 소화(笑話, 우스운 이야기) 가운데서 가장 우스운 것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많은 이야기가 남녀 간의 성(性)을 다루며 웃음을 자아내는 음담패설이다. 조선 시대 문헌에서는 드물게 수위가 높은 외설담을 내용으로 하기에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 왔다. 같은 제목의 번역서가 여러 차례 소개됐으며 내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홍만종의 정신을 제대로 반영한 책은 없었다. 우리에게 《고금소총》이 왜곡된 모습으로 알려져 왔던 가장 큰 이유는 ‘고금소총’이라는 말이 ‘고금(古今)의 소총(笑叢)’쯤으로 인식·사용되면서 홍만종이 직접 편집한 원본과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이다. 홍만종은 그저 우스운 이야기를 수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화관에 맞는 이론적 바탕을 구축하고 그에 맞는 이야기들을 골라 《고금소총》을 편집했다.
이 책은 홍만종이 직접 편집한 일사본 《고금소총》(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을 저본으로 했다. 강희맹의 《촌담해이(村談解頤)》, 송세림의 《어면순(禦眠楯)》, 성여학의 《속어면순(續禦眠楯)》에서 58편의 소화를 뽑은 원본 《고금소총》이다. 그간의 번역서에 아쉬운 마음을 가졌던 독자라면 이제 원작의 모습을 살린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한시 일색인 우리나라의 전통문학 풍조 속에서 통속문학의 영역을 확장해 나갔던 홍만종의 작가 정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홍만종의 소화(笑話)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아래의 책을 함께 읽어 보시면 좋습니다.
《속고금소총(續古今笑叢)》(홍만종 엮음, 정용수 옮김, 지만지한국문학, 2024)
《명엽지해(蓂葉志諧)》(홍만종 엮음, 정용수 옮김, 지만지한국문학, 2024)
200자평
‘고금의 웃음 다발’이라는 뜻의 《고금소총(古今笑叢)》은 편자 홍만종이 우리나라의 소화(笑話) 가운데서 가장 우스운 것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그간 같은 제목의 여러 번역서가 있었으나 아쉽게도 다소 왜곡된 모습으로만 소개되었다. 이 책은 서울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는 일사본 《고금소총》을 저본으로 했다. 《촌담해이》·《어면순》·《속어면순》에서 홍만종이 직접 가려 뽑아 만든 원본 《고금소총》이다. 한시(漢詩) 일색인 우리의 전통문학 풍토에서 통속문학을 옹호하고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갔던 홍만종의 작가 정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엮은이
이 책의 편저자 홍만종(洪萬宗, 1643∼1725)은 풍산 사람으로 자는 우해(于海), 호는 현묵자(玄默子), 몽헌(夢軒), 장주(長洲)라 했다. 부친 주세(柱世, 1612∼1661)는 자가 우문, 호가 정허당으로 생원과 문과를 거쳐 정랑에 이르고 영주군수를 지냈으며 뒤에 도승지에 증직되었다. 조부 보(靌, 1585∼1643)는 진사와 문과 장원으로 소무훈에 책봉되어 풍령군에 봉해지고 벼슬이 좌참찬에 이르렀으며 뒤에 영의정 및 부원군에 증직되었다. 증조 난상(鸞祥)은 형조좌랑을 역임했으며, 고조 수(修)는 부사직을 역임했다. 선조의 장녀 정명옹주에게 장가든 부마 주원(柱元)과는 재당질간이니 고조대에서 분가되었다. 외가는 중종대 영의정을 역임한 정광필의 후손으로 외조가 이조참판 광경이며 외숙이 좌의정 지화였다.
이 같은 좋은 배경을 바탕으로 일찍부터 동명 정두경의 문하에서 시를 배우며 휴와 임유후, 백곡 김득신, 만주 홍석기 등과 더불어 나이를 잊은 만년지교를 맺고 시주를 즐겼으나 이는 나중의 일이다. 그의 생애에서 삶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20세 때의 부친상과 연이은 득병, 10년 이상의 긴 요양 이후 출사했으나 곧 이은 파직이 아니었을까 한다. 명확하지 않은 부친의 죽음이나 당쟁에 휘말려 삭탈관직되는 개인적 불행은 남자 형제도 없는 단신인 그에게 저작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이 기회를 촌로나 일반 서민들과 교유하는 장으로 만들며 시간적 여유를 누렸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게 교서관제조 신완(申玩, 1646∼1707)의 추천으로 《동국역대총목(東國歷代叢目)》의 편찬 기회를 얻었지만, 이것마저 고지식한 신료들의 “포폄여탈”, “참람되다”는 비난을 받음으로써 그의 저작이 더 이상 유포·간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당쟁의 여파가 평생 그에게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에 새로 발굴된 그의 친필문고 《부부고(覆瓿藁)》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청구영언(靑丘永言)》이나 《고금소총(古今笑叢)》, 《속고금소총(續古今笑叢)》 외에도 그가 수많은 기록을 남겼음이 밝혀졌다. 그 저술의 범위도 그렇거니와 내용을 봐도 그가 얼마나 방대한 자료를 섭렵해 하나하나 분류를 시도하려 했는지 알 수 있다. 앞으로 그에 대해 보다 광범위한 조사와 평가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옮긴이
정용수는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를 거쳐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고전문학 전공으로 문학석사 및 문학박사 과정을 수료해, 동아대학교에서 정년을 마쳤다. 2000년부터 버클리 대학교(U.C. Berkeley) 동아시아연구소(Institute of East Asia Studies)에서 1년간 객원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고전 번역과 저술에 전념하고 있다.
역서로 《후탄선생정정주해 서상기》(국학자료원, 2006), 《전등신화구해》(푸른사상, 2003), 《고금소총 명엽지해》(국학자료원, 1998), 《국역 소문쇄록》(국학자료원, 1997) 외에 다수의 논문이 있다.
차례
옮긴이 서문
촌담해이(村談解頤)
촌담해이 자서
기생 모란의 재산 탈취
어리석은 종이 첩을 돕다
무 아비와 독 묻은 과실
목을 매단 주지 스님
어면순(禦眠楯)
어면순 서
임랑의 돈독함
정경이 점을 잘 보다
다섯 아들이 아비를 조롱하다
새 사위의 황금 꾀꼬리
아내를 훔치고 지아비를 속이다
주인 여자의 약은 교활한 종놈이다
주장군 이야기
처녀가 남편감을 결정하다
음란한 노파가 바람이 불기를 축원하다
객의 해박함에 탄복하다
저녁 먹는 도둑
교생이 학질을 그치게 하다
자라 머리를 찍어 버리다
호랑이가 곰 털을 무서워하다
비지촌의 유래
옥경과 손은 맛이 다르다
솥을 짊어지고 도둑의 뒤를 밟다
소금 장수가 벙어리를 건드리다
아내는 존중받고 싶지 않다
신부는 다복하다
새신랑이 면을 훔치다
시골 종이 마희를 하다
어면순 발
속어면순(續禦眠楯)
시골사는 여자들의 시구 잇기
네 사람이 객을 쫓아 버리다
세 여자가 벙어리를 점검하다
빈 땅을 팔고 생선을 얻다
늙은 기생이 판결하다
처녀가 먼저 연습을 하다
어리석은 백성이 사슴을 분별하다
관부인 이야기
교활한 여종이 정분을 끌다
음란한 첩이 도둑을 가두다
아픈 척해서 즐기려 하다
나라를 위해서 어진 이를 만들다
종의 도움으로 해를 면하다
지아비를 속여서 밭을 갈게 하다
사또 두 사람과 어리석은 종 하나
교활한 여자가 말을 내쫓다
시구를 외어 웃음을 보태다
어리석은 신랑이 구멍을 잃다
처녀가 재미를 말하다
어린 딸을 속이지 말라
알(閼)과 알(遏)을 다 놓치다
토담집 안을 빙빙 돌다
인색하다고 서로 비웃다
업고 온 중은 어디 갔소?
여자가 방귀를 다시 뀌겠다고 청하다
음(陰)을 양(陽)으로 바꾸다
직책을 주며 이름을 좋게 하다
아내와 첩이 방을 함께 쓰다
호장이 아내를 자랑하다
다섯 가지 묘술로 마음을 움직이다
십격이라 전하는 기술
수구(水口)와 나성(羅星)
속어면순 발
해설
엮은이에 대해
엮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어떤 한 선비가 아리따운 첩을 갖게 되었다. 하루는 첩이 친정에 다녀오려 하자, 선비는 노비 중에서 음사(陰事)를 알지 못하는 놈을 골라 첩의 행차를 돕고자 했다.
종들을 불러 놓고 물었다.
“너희들 중에 옥문(玉門) 있는 곳을 아는 자가 있느냐?”
모두들 미소만 짓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중에서 어떤 어리석은 놈이 겉으로는 순박해도 속으로는 간특해 재빨리 대답했다.
“바로 두 눈썹 사이에 있지요.”
선비는 그가 음사를 알지 못함을 기뻐하며 즉시 행차를 돕도록 했다.
한 시냇가에 다다랐다. 첩이 어리석은 종에게 안장을 풀고 잠시 쉬어 가자고 했다. 어리석은 종은 시냇물에 들어가 목욕을 했다. 첩은 그의 양물(陽物)이 장대함을 보고 희롱하며 “네 양다리 사이에 있는 방망이는 무슨 물건이냐?” 하고 묻자 종이 대답했다.
“태어날 때 살에 붙어 점점 튀어나오더니 이렇게 되었소.”
첩이 말했다.
“나도 태어날 때 양다리 사이가 조금 들어가더니 점점 깊은 구멍이 되었단다. 만약 오목이와 뾰족이가 서로 물리면 또한 즐겁지 않겠느냐?”
드디어 서로 사통(私通)을 했다.
선비는 비록 바보 놈을 보내기는 했으나 의심이 들고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산마루턱에 올라서 가만히 살펴보았다. 깊은 숲속에서 첩이 종과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고 있었다.
그는 크게 분개해 산에서 내려가 물었다.
“너희들 방금 무슨 짓을 한 거냐?”
거듭 다그치니 종은 끝내 숨기지 못할 것을 알고 망태 주머니에서 쇠 송곳과 새끼줄을 꺼내 굽혔다 들었다 하면서 무엇을 깁고 꿰매는 시늉을 했다.
선비는 물어보았다.
“그게 무엇이냐?”
종은 울면서 대답했다.
“아가씨께서 끊어진 다리를 건너시다가 떨어진지라 소인이 온몸을 살펴보니 한 군데도 상처가 없고 다만 배꼽 밑에 한 치쯤 찢어진 곳이 보였어요. 깊이도 측량하기 어렵고 혹시 풍독(風毒)을 입을까 봐 보철(補綴)을 했사옵니다.”
하며 변명을 하는 것이었다. 선비는 크게 기뻐하며 마음속으로 칭찬하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네놈이야말로 진짜 바보로군. 저절로 생긴 찢어진 구멍이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하거라.”
태사공(太史公)은 말한다.
“사람을 아는 것이 가장 어렵거늘, 대간(大姦)은 충(忠)과 같고 대사(大詐)는 신(信)과 같은 법. 저 어리석은 종을 두고 일컫는 것일진저. 진실로 선비가 집안을 법으로써 바로 세우고 간악한 자를 일찍 찾아내려 했다면, 틀림없이 어리석은 종이 더럽히고 어지럽히는 일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한 집안의 어른이 되어서 아랫사람을 대하는 자가 경계할 바를 몰라서야 되겠는가?”
– 〈어리석은 종이 첩을 돕다(癡奴護妾)〉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