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사상, 연극의 주인공이 되다
언어철학에서 현대 물리학까지 망라하는 풍부한 극작 세계
연극은 삶의 은유며, 삶은 연극을 반영한다. 톰 스토파드는 이러한 연극관에 기반해 독창적인 극작품들을 선보인다. 스토파드의 극은 ≪햄릿≫, ≪맥베스≫와 같은 고전 작품이나 역사적 사건을 창조적으로 변형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에서 현대 물리학의 양자역학과 혼돈 이론에 이르는 온갖 소재를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모험 정신 가득한 스토파드의 작품들은 존재의 의미, 사회 속 예술가의 위치, 정치와 예술의 관계 등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 기발하게, 그러나 결코 얕지 않게 다룬다.
스토파드의 극에서는 주제 또는 사상이 이야기보다도 우선한다. 이 책은 ≪로젠크랜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 ≪곡예사들≫, ≪희작≫ 등 스토파드의 작품들을 살피며 스토파드가 무슨 사상을 극에 어떻게 녹여 냈는지 상세히 살핀다. 스토파드의 작품 세계가 품은 무수한 지식과 사유를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다. 기존 통념과 전통을 가차 없이 깨 버리는 스토파드를 좇아 우리 삶을 색다른 각도에서 조망해 보자.
톰 스토파드(Tom Stoppard, 1937∼ )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영국 극작가, 각본가, 영화감독. 고전 연극에 바탕을 두고 새로운 형식적 실험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동안 침체되었던 영국 연극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극예술의 기본 도구인 언어의 의미와 기능, 연극의 기본 개념, 극적 행동의 역할, 관객의 감상 태도 등 거의 모든 주제에 걸쳐 사실주의 연극에서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지던 관념을 뒤흔들었다. 의미 전달 매개체로서 언어의 중요성을 해체하고, 텍스트보다 공연을 강조했다. 대표작으로 ≪로젠크랜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1967), ≪곡예사들≫(1972), ≪희작≫(1974), ≪아카디아≫(1993), ≪사랑의 발명≫(1997) 등이 있다. 그중 ≪로젠크랜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는 로열내셔널시어터의 레퍼토리 중 하나가 되었고, 직접 영화로 연출해 1990년 제47회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또한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1998)의 시나리오를 써서 1999년 제7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마크 노먼과 함께 각본상을 수상했다.
200자평
연극에 풍부한 지적·철학적 사유를 담아내는 톰 스토파드의 작품 세계를 해설한다. 스토파드는 고전 작품과 역사를 창조적으로 변형하고, 언어철학에서 양자역학에 이르는 다양한 소재를 자유자재로 다룬다. 기존 통념과 전통을 분쇄하며 진리의 상대성, 예술과 정치의 관계, 이성과 감성의 대립 등에 대해 기발한 통찰을 제시한다. 도발적이고 모험 정신 가득한 스토파드의 극작을 통해 우리 삶을 색다른 각도로 조망해 볼 수 있다.
지은이
윤정용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글로벌학부 초빙교수. 충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톰 스토파드를 주제로 영문학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톰 스토파드 관련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미국의 천사들≫에 나타난 쿠시너의 정치 철학”(2018), “≪제인 에어≫: 페미니스트적 열망과 제국주의적 기획”(2015), “‘이웃’의 정치신학: 아서 밀러의 ≪시련≫”(2014), “≪헨리 5세≫에 나타난 왕권의 탈신비화 양상”(2013), “권력투쟁과 주체성으로 살펴본 ≪귀향≫”(2013),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나타난 남성성과 가부장적 폭력”(2012), “본드의 ≪리어≫와 셰익스피어 다시 쓰기”(2007) 등의 논문도 발표했다. 저서로 ≪권력과 욕망의 영미드라마≫(2022), ≪영화로 숨을 쉬다≫(2022), ≪미래는 꿈꾸는 대로 온다≫(2021), ≪낯선 시간 길들이기≫(2021), ≪조금 삐딱한 책읽기≫(2020), ≪무한독서≫(2019), ≪매혹적인 영화인문학≫(2019), ≪영화로 문학 읽기, 문학으로 세상 보기≫(2018), ≪Talk to movie, 영화에게 말을 걸다≫(2018) 등이 있다.
차례
창조적 변형, 스토파드 극에 나타난 상호텍스트성
01 전복적 연극쓰기
02 연극의 유희성
03 열린 극 구조
04 단편들의 몽타주
05 역사와 허구
06 예술과 정치의 희화화
07 메타드라마
08 창조적 변형
09 혼돈 이론
10 사랑의 발명
책속으로
스토파드는 작품 창작의 순서 면에서도 독창적이다. 일반적으로 극작가들은 어떤 특별한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작품의 틀을 결정하며 그 틀에 자신의 사상을 담는다. 그러나 스토파드는 먼저 자신이 전달하려 하는 사상을 정하고, 그다음에 그 사상에 맞는 특정한 사건을 찾는다. 마지막으로 그 사상과 사건을 담을 형식을 결정한다. 따라서 스토파드 자신이 한 인터뷰에서 밝혔듯, 그의 극에서는 주제 또는 사상이 이야기보다도 우선한다. 이때 스토파드가 즐겨 사용하는 방법은 내용을 담을 틀을 독창적으로 창조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기존 작품을 빌려 오는 것이다.
_“창조적 변형, 스토파드 극에 나타난 상호텍스트성” 중에서
스토파드는 범인을 추적하는 탐정 추리극 형태에 적합한 것에 대한 극을 쓰길 원했다. 일례로 자신이 추리극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추리극과 물리학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물리학은 본질적으로 ‘확실성(certainty)’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논리상 스토파드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스토파드에 따르면 현대 물리학의 수학적 측면은 불확실성·확률·우연에 기반하므로 ‘불확실성(uncertainty)’을 규명하는 탐정 추리극과 연관된다.
_“03 열린 극 구조” 중에서
시간일탈은 진행되던 행위가 갑자기 정지되고 원점으로 돌아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기법이다. 기억을 통한 극작 행위의 시행착오를 나타내는 시간일탈은 카의 기억이 얼마나 무질서하고 불안정한지 보여 준다. 카는 시간일탈을 통해 연대기적 시간의 흐름을 역행해 자신의 기억을 몇 번이고 다시 재구성한다. 시간의 직선적 흐름이 뒤로 역행하면서 허구의 공간이 생겨나고, 그 공간 속에서 과거가 자꾸 바뀐다. 한마디로 시간일탈 장면은 카의 억눌린 소망을 보여 준다.
_“05 역사와 허구” 중에서
≪진짜≫는 “거울로 둘러싸인 홀”과 같이 연극이 현실을 반영하고 연극이 연극을 반영하며 현실이 연극을 반영할 수도 있다는 스토파드의 연극관을 구체화한다. 스토파드는 현실 장면과 극중극을 관객에게 번갈아 보여 주면서 이 두 세계의 상호 작용을 시각적으로 인식시킨다. 극중극에서는 같은 상황이 여러 차례 반복되는데, 이는 마치 어떤 대상이 마주 보는 두 거울 앞에 섰을 때 거울 속에 거울이, 그 속에 또 다른 거울이 반사되며 대상의 이미지가 무한대로 나타나는 것과 같다.
_“07 메타드라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