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복고의 희망, 《신고금와카집》
《신고금와카집》이 편찬되던 헤이안(平安) 시대 말기는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의 개설과 함께 정치의 주도권이 귀족 세력에서 무사 세력으로 옮겨 가고, 기존의 귀족 세력들은 점차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과도기였다. 《신고금와카집》의 선집을 하명한 고토바인(後鳥羽院)과 당시의 귀족들은 대규모의 칙찬 와카집 편찬에 스러져 가는 자신들의 입지 회복과 왕실을 중심으로 한 통합의 희망을 담았다. 《신고금와카집》이 전대의 칙찬집을 뛰어넘는 대대적인 규모로 기획된 점과 《신고금와카집》이라는 가집명에서 알 수 있듯이 최초의 칙찬 와카집이자, 국풍 문화(国風文化)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고금와카집》의 이름을 계승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신고금와카집》의 구성
《신고금와카집》은 1978수의 와카를 수록하고 있으며 마나 서문(真名序), 가나 서문(仮名序), 봄노래 상, 하/ 여름 노래/ 가을 노래 상, 하/ 겨울 노래/ 축하 노래/ 애상/ 이별/ 여행 노래/ 사랑 노래 1, 2, 3, 4, 5/ 잡가 상, 중, 하/ 신기(神祇) 노래/ 석교(釋敎) 노래를 포함한 총 2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초의 칙찬 와카집인 《고금와카집》의 구성 이념을 계승하고 있으며, 이 구성에는 전통성과 역사의식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노래의 선가 범위는 만엽(万葉) 시대부터 당대 가인까지로, 작자 미상의 노래를 제외하고 약 396명의 가인들의 노래가 실렸다. 가장 많은 노래를 수록한 가인으로는 94수의 사이교(西行), 그다음 92수의 지엔(慈円), 79수의 후지와라노 요시쓰네(藤原良経), 72수의 후지와라노 슌제이(藤原俊成), 49수의 쇼쿠시 내친왕(式子内親王), 46수의 후지와라노 데이카(藤原定家), 42수의 후지와라노 가류(藤原家隆), 35수의 자쿠렌(寂蓮), 35수의 고토바인(後鳥羽院), 29수의 슌제이의 딸(俊成郷女), 22수의 후지와라노 마사쓰네(藤原雅経), 19수의 아리이에(藤原有家), 17수의 미나모노토 미치토모(源通具) 등으로, 사이교와 슌제이, 데이카 등 미코히다리 가문(御子左家)의 가인들이 많았고 이 점은 가집 전체의 가풍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신고금와카집》의 가풍
《신고금와카집》의 가풍은 만엽, 고금(古今), 신고금(新古今), 이른바 3대 가풍 중 하나로 칭송받으며 근세는 물론 근대의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朔太郎)나, 쓰카모토 구니오(塚本邦雄)와 같은 시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의 시대 상황과 《신고금와카집》에 담긴 정서들은 가집의 내용과 성격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모든 세상의 스러져 가는 것들에 대한 공명과 연민을 담거나, 이러한 정서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기조를 띠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신고금와카집》의 가풍은 이른바 여정미(余情美)와 요염미(妖艶美), 전체적으로는 유현미(幽玄美)로 특징지을 수 있다. ‘여정미’란 노래를 읽는 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긴 여운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움, ‘요염미’란 독자를 매료하는 듯한 아름다움을 일컫는다. 또한 이 여정미와 요염미 등 《신고금와카집》의 미의식을 아우르는 것이 유현미라고 할 수 있다. 《신고금와카집》의 편찬자 중 하나인 후지와라노 데이카는 부친 슌제이의 와카 비평에서 등장했던 유현미라는 개념을 《신고금와카집》을 통해서 여정 요염미와 융화시킨 자신만의 유현미로 발전시키고 확립했다. 유현미라는 것은 원래는 불교와 노장 사상 등 중국 사상에서 쓰였던 용어를 차용한 것으로, 사물의 정취가 깊어 헤아릴 수 없고 고상하며 우아하고, 기품이 서려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와카뿐만 아니라 당시의 문예, 예능, 회화, 건축 등 다방면에 쓰여 일본의 중세를 대표하는 미적 관념으로 자리 잡게 된다.
마지막 칙찬 와카집
《신고금와카집》의 편찬 16년 후 조큐의 난이 막부 타도, 왕실 권위 회복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나고, 오히려 왕실과 귀족 계급의 몰락을 앞당기게 되었다. 하지만 비록 그런 비운의 아이러니 속에서도 결국 《신고금와카집》 속에 담긴 왕실과 귀족 문화의 복권과 재흥이라는 염원은 문화적 영향력으로 발현해 후대의 일본 문화 전반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신고금와카집》에 담긴 고토바인의 염원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결국 꺼져 가는 불꽃이 마지막에 가장 환한 빛을 발하듯이, 저물어 가는 시대의 마지막 유산으로서 《신고금와카집》의 시대적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출간한 8대 칙찬 와카집 정선
《고금와카집(古今和歌集)》기노 쓰라유키(紀貫之) 외 엮음, 최충희 옮김, 142수 수록, 18800원
《후찬와카집(後撰和歌集)》오나카토미노 요시노부(大中臣能宣) 외 엮음, 최충희 · 이상민 옮김, 154수 수록, 22800원
《습유와카집(拾遺和歌集)》후지와라노 긴토(藤原公任) 외 엮음, 최충희 외 17인 옮김, 140수 수록, 22800원
《후습유와카집(後拾遺和歌集)》후지와라노 미치토시(藤原通俊) 엮음, 최충희 외 15인 옮김, 140수 수록, 22800원
《금엽와카집 / 사화와카집(金葉和歌集 / 詞花和歌集)》미나모토노 도시요리(源俊頼) / 후지와라노 아키스케(藤原顕輔) 엮음, 최충희 외15인 옮김, 각 70수씩 총 140수 수록, 22800원
《천재와카집(千載和歌集)》후지와라노 슌제이(藤原俊成) 엮음, 최충희 외 15인 옮김, 140수 수록, 22800원)
《신고금와카집(新古今和歌集)》후지와라노 데이카(藤原定家) 외 엮음, 최충희 · 이상민 옮김, 140수 수록, 22800원)
200자평
일본 헤이안 시대의 여덟 번째 마지막 칙찬 와카집인 ≪신고금와카집≫을 국내 최초로 번역 소개한다. 총 1978수 가운데 140수를 정선해 옮겼다. 칙찬 와카집 편찬을 통해 스러져 가던 왕실과 귀족의 세력 회복을 꿈꾼 고토바인과 당시 귀족들의 희망이 들어 있다. 와카를 잘 모르는 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한 작품 해설과 주석이 함께한다.
엮은이
후지와라노 데이카(藤原定家, 1162∼1241)
아버지는 《천재와카집(千載和歌集)》의 편찬자 후지와라노 슌제이(藤原俊成)다. 병약했던 어린 시절로 인해 다소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로 성장했다. 10대에 이미 요염미를 강조한 자신만의 가풍을 성립시켰지만, 너무나 생소했던 탓에 젊은 시절 그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방황의 시절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이른바 데이카의 새로운 가풍은 《쇼지 백수(正治百首)》 참여를 계기로 고토바인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게 되면서, 이후 《신고금와카집》의 편자에 발탁되는 등 고토바인 가단을 이끄는 존재로까지 발돋움하게 된다. 그러나 《신고금와카집》 완성을 축하하는 연회가 열릴 즈음부터 고토바인과의 관계가 악화했고, 가마쿠라 막부 측과 친밀한 관계를 쌓아 나갔다. 1221년 막부 토벌을 기치로 내건 조큐의 난(承久の乱)의 실패로 인해 고토바인 세력이 정계에서 축출되면서 명실상부한 가단의 권위로 자리 잡게 되었다. 《신고금와카집》 편찬 이외에도 다양한 우타아와세(歌合)에서 판정원(判者)을 맡고 《매월초(毎月抄, 마이게쓰쇼)》와 같은 가론서 제작을 통해 자신의 가풍을 확고히 해 나갔다. 말년에는 고전 작품의 서사에 힘을 쏟았으며 그의 가풍은 신고금가풍으로 칭송되면서 당시의 가단은 물론 후대의 가풍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개인 가집 《습유우초(拾遺愚草, 슈이구소)》, 자작 모노가타리 《마쓰라노미야 모노가타리(松浦宮物語)》 등을 남겼다.
미나모토노 미치토모(源通具, 1171∼1227)
내대신(内大臣)을 지낸 미나모토노 미치치카(源通親)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다이라노 노리모리의 딸이었다. 청년기에는 아버지의 후광을 배경으로 좌근위중장(左近衛中将), 장인두(蔵人頭), 참의(参議) 등을 거쳐, 1212년 권대납언(権大納言)까지 벼슬이 오르게 된다. 1201년 이후 《1500번 우타아와세(千五百番歌合》 등 고토바인 가단을 대표하는 수많은 우타아와세에서 명성을 쌓았고, 이 활약을 바탕으로 《신고금와카집》의 편자로 선출되는 영예를 안았다. 《신고금와카집》 이후 칙찬집에 37수의 노래를 실었다.
후지와라노 아리이에(藤原有家, 1155∼1216)
대재대이(大宰大弐)를 지냈던 후지와라노 시게이에(藤原重家)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이름은 나카이에(仲家)였으나, 1180년 아리이에(有家)로 개명했다. 벼슬은 종3위(従三位), 대장경(大蔵卿)에 이르렀다. 이후 《신고금와카집》의 편찬자로 선출되는 등, 당시 가단의 중심인물로 자리 잡았다. 《천재와카집》 이후 67수의 노래를 칙찬집에 실었다.
후지와라노 가류(藤原家隆, 1158∼1237)
중납언(中納言) 후지와라노 미쓰타카(藤原光隆)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20세경에 후지와라노 슌제이(藤原俊成) 문하에 들어가 와카를 공부했다. 슌제이와 더불어 당대의 시성 사이교(西行)와도 교류했으며, 그의 추천으로 《후타미우라 백수(二見浦百首)》를 읊은 이후, 미코히다리 가문(御子左家)의 소장파 가인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슌제이의 아들 데이카(定家)와 함께 고토바인 가단을 대표하는 가인으로 성장했다. 《천재와카집》 이후 칙찬집에 281수의 노래를 실었다.
후지와라노 마사쓰네(藤原雅経, 1170∼1221)
후지와라노 요리쓰네(藤原頼経)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벼슬은 종3위 참의(参議)까지 이르렀다. 헤이안 말기에 유행하던 놀이인 축국(蹴鞠, 게마리)의 대가로, 이후 축국으로 유명한 아스카이 가문(飛鳥井家)의 시조가 된다. 고토바인의 총애가 남달랐으며, 고토바인 가단에서 주최한 다양한 노래 모임에 출석했다. 이후 《신고금와카집》의 편찬자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개인 가집으로는 《아스카이집(明日香井集)》이 있다.
자쿠렌 법사(寂蓮法師, 1139∼1202)
속명은 후지와라노 사다나가(藤原定長)다. 아자리 슌카이(阿闍梨俊海)의 아들이며, 후지와라노 슌제이(藤原俊成)의 조카다. 종5위상(從五位上) 중무소보(中務小輔)에 오르지만 쇼안(承安) 2년(1172) 무렵에 출가한다. 미코히다리(御子左)가의 가인으로 활약했고, 1201년 《신고금와카집》의 선자로 발탁되었지만, 이듬해 사망하고 말았다. 가집으로 《자쿠렌 법사집(寂蓮法師集)》이 남아 있다.
옮긴이
최충희
최충희(崔忠熙)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일본 쓰쿠바대학교 대학원에 유학해 일본 고전 시가 문학 전공으로 석·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일본 고전 시가 문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3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언어문화학부 교수로 재직 후 2019년 3월 정년 퇴임했다. 주된 연구 분야는 일본 고전 시가, 그중에서도 와카, 렌가, 하이카이를 중심으로 주석학적 연구 방법에 입각해 고전 읽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부총장, 한국일어일문학회 회장을 지낸 바 있으며 국내의 다양한 일본 연구 관련 학회에서 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일본 시가 문학사》(공저, 태학사, 2004), 《일본 시가 문학 산책》(제이앤씨, 2006), 《일본 문학의 흐름》(공저,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2007), 《요사 부손의 봄, 여름, 가을, 겨울》(제이앤씨, 2007), 《고바야시 잇사 하이쿠 선집−밤에 핀 벚꽃》(태학사, 2008), 《고금와카집 천줄읽기》(지식을만드는지식, 2011), 《햐쿠닌 잇슈의 작품 세계》(공저, 제이앤씨, 2011), 《렌가라는 문학과 소기》(인문과 교양, 2014), 《일본 시가 문학 길라잡이》(한국외대 지식출판원, 2017), 《후찬와카집 천줄읽기》(공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17), 《습유와카집》(공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18), 《후습유와카집》(공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18), 《금엽와카집 / 사화와카집》(공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19), 《천재와카집》(공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20) 등이 있으며, 일본 시가 문학 연구와 관련한 많은 논문이 있다.
이상민
이상민(李相旻)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했다. 동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한 후, 문부성 장학생으로 도일했다. 도쿄대학교 대학원 인문사회계 연구과에서 중세 가인 돈아(頓阿)의 와카를 테마로 해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6년 귀국 후 현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방송대학교에서 일본어와 일본 문학에 관련한 강의를 하고 있다.
중세 남북조 시대의 가인, 돈아의 와카를 중심으로 다이에이(題詠) 영법의 특징과 중세 가단들의 관계를 테마로 해서 연구하고 있다. 역서로 《후찬와카집 천줄읽기》(공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17), 《습유와카집》(공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18), 《후습유와카집》(공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18), 《금엽와카집 / 사화와카집》(공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19), 《천재와카집》(공역, 지식을만드는지식, 2020) 등이 있다.
차례
봄노래 상(春歌上)
봄노래 하(春歌下)
여름 노래(夏歌)
가을 노래 상(秋歌上)
가을 노래 하(秋歌下)
겨울 노래(冬)
축하 노래(賀)
애상 노래(哀傷)
이별 노래(離別)
여행 노래(羇旅)
사랑 노래 1(恋1)
사랑 노래 2(恋2)
사랑 노래 3(恋3)
사랑 노래 4(恋4)
사랑 노래 5(恋5)
잡가 상(雜上)
잡가 중(雜中)
잡가 하(雜下)
신기 노래(神祇)
석교 노래(釋敎)
해설
엮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출가하신 슈카쿠 법친왕 댁에서 오십수 와카를 지을 때 읊다
守覚法親王家五十首歌に
넓은 하늘은 매화 향기 때문에 아스라하고
봄날 밤의 달빛엔 구름이 좀 끼었네(후지와라노 데이카,* 40)
おほ空はむめのにほひにかすみつつくもりもはてぬ春のよの月(藤原定家朝臣, 40)
사이교 법사가 권해서 백수 와카를 읊었을 때
西行法師すすめて、百首歌よませ侍りけるに
바라다보니 벚꽃도 단풍잎도 전혀 없도다
바닷가 어촌 마을 가을 석양 무렵에(후지와라노 데이카, 363)
見わたせば花も紅葉もなかりけり浦のとま屋の秋の夕暮(藤原定家朝臣, 363)
데이카의 어머니가 죽은 후, 가을 무렵에 묘소 가까이에 있는 법당에 가서 읊은 노래
定家朝臣母身まかりてのち、秋ごろ墓所ちかき堂にまかりて、よみ侍りける
어쩌다 오는 밤에도 불어 대는 솔바람 소릴
그대는 땅 밑에서 계속 듣고 있겠지(후지와라노 슌제이, 796)
まれにくる夜はもかなしき松風をたえずや苔の下に聞くらむ(皇太后宮大夫俊成, 796)
사랑하는 사람의 침소에 다니기 시작한 다음 날 아침에 지어 보낸 노래
人の許にまかりそめて、あしたにつかはしける
어제까지는 만나기만 한다면 죽겠다 했네
오늘 아침엔 다시 안 죽길 참 잘했네(후지와라노 요리타다,* 1152)
きのふまであふにしかへばとおもひしをけふは命のをしくもあるかな(廉義公, 1152)
와카도코로 우타아와세에서, ‘깊은 산 새벽달(심산효월)’이라는 주제를 읊다
和歌所歌合に、深山暁月といふことを
밤이 새도록 홀로 깊은 산속의 나뭇잎 위로
흐렸다 개어 가는 청명한 새벽 달빛(가모노 조메이, 1523)
夜もすがらひとり深山の槙の葉にくもるもすめる有明の月(鴨長明, 1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