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유진 오닐의 마지막 작품 〈잘못 태어난 자를 위한 달〉 초연은 극단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작품의 상반된 평가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조시’라는 거구의 여성을 제대로 연기할 배우의 부재가 실패 요인 중 하나로 언급되었다. 남성적 외향과 여성적 내면이라는 복합적인 개성을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다. 작품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무관하게 오닐 자신은 이 작품을 매우 높게 평가했고, 아서와 바버라 겔브는 작품의 “신화적 힘”을 찬양하기도 했다.
오닐이 이 작품에 이처럼 애정을 가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의 다른 여느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도 어느 정도 자전적 요소가 반영되었는데, 특히 일찍 자살로 생을 마친 형 제임스 오닐 2세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이 창작의 토대가 되고 있다. “잘못 태어난 자”로 묘사된 조시의 상대역 제임스 타이론은 제임스 오닐 2세의 재현이다.
<잘못 태어난 자를 위한 달>은 제임스와 조시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내면 갈등, 용서, 연민을 다루며, 제임스가 조시에게 자신의 죄책감을 고백하고 용서를 받는 장면은 마치 종교적인 구원을 상징하는 듯한 “피에타”의 이미지를 환기한다. 결국 이 작품은 제임스의 구원과 조시의 강한 모성애를 중심으로 하는 복합적인 이야기로, 코믹한 요소와 함께 비극적 정서가 어우러진 게 특징이다. 국내에는 “불출자의 달”로 제목이 번역 소개되기도 했으나 원제의 “Misbegotten”에는 형 제임스가 용서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오닐의 마음이 반영되어 있기에 이 책에서는 “잘못 태어난 자를 위한 달”로 옮겼다.
200자평
오닐의 유작. 대표작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 이어지는 세계관으로, 그 등장인물의 하나인 형 제이미가 주인공이다. 오닐이 형에게 가졌던 애증의 감정이 잘 표현되어 있어 오닐 작품 세계는 물론 생애를 들여다보는 데 도움이 된다. 초연은 실패했으나 오닐 사후인 1957년 브로드웨이 입성 후 네 차례나 리바이벌되었다.
지은이
유진 오닐(Eugene O’Neill, 1888∼1953)
“미국 현대 연극의 아버지”라 불리는 유진 오닐은 1888년에 연극 배우이자 아일랜드계 이민자였던 제임스 오닐(James O’Neill)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공연을 따라 계속 이곳저곳 옮겨 다닌 그는 호텔에서 태어나 호텔에서 생을 마감했다.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했지만 도중에 중퇴하고 어린 나이에 캐슬린 젠킨스와 결혼해 아들까지 낳았다. 그는 도피의 일환으로 배를 탔고 서인도제도와 남미를 여행하며 해양 생활을 경험했다. 오랜 바다 생활에 몸이 쇠약해져 폐결핵에 걸린 그는 요양원에 입원하게 되고 거기서 니체와 스트린드베리 등 유럽 작가들을 만난다. 오닐은 유럽에서 그동안 이루어져 왔던 다양한 예술적 실험들을 받아들여 미국 무대에 올리려 했다. 오닐은 두 번째 아내와 이혼한 뒤 칼로타 몬터레이와 재혼했고 몬터레이는 오닐 사후인 1956년에 오닐이 사후 25년간 발표하지 말라고 했던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를 출판 공연하도록 허락함으로써 그에게 네 번째 퓰리처상을 안겨 주었다.
그가 미국 연극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것은 한 세계에 안주하지 않고 유럽에서 개발된 사조나 극작 기법을 과감하게 도입해 끊임없이 실험함으로써 후대 극작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렇게 변화하는 기법과 실험 가운데서도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불가해한 세력을 밝혀내려는” 시도였다. 그는 신에 대한 신앙과 전통적 가치 체계에 대한 신념이 붕괴된 사회에서 무엇이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가에 관심을 가졌으며 이를 희극보다는 비극을 통해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닐은 후기로 가면서 자전적인 경험에 바탕을 둔 <얼음장수 오다(The Iceman Cometh)>, <밤으로의 긴 여로> 같은 사실주의 작품으로 회귀했고 원숙한 경지를 보여 주며 노벨상과 4회에 걸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미국 현대 연극의 기초를 놓은 유진 오닐은 후배 극작가들의 영원한 영감과 영향력의 원천이 되면서 미국 연극의 아버지로 남아 있다.
옮긴이
이형식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고 건국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33년간 재직했다. 현재는 명예교수로 강의와 집필, 번역에 몰두하고 있다. 문학과영상학회 회장, 현대영미드라마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지은 책으로 《현대 미국 희곡론》, 《영화의 이해》, 《무대와 스크린의 만남》, 《다문화주의와 영화》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미국 영화/미국 문화》, 《영화의 이론》, 《영화에 대해 생각하기》, 《숭배에서 강간까지 : 영화에 나타난 여성상》, 《하드 바디》 등이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무대 배경
극의 무대 배경
1막
2막
3막
4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호건 : 내가 죽일 놈이지, 이건 쓰디쓴 약이야.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가능성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조시의 문이 열린다. 그는 즉시 이전 상태가 된다. 조시는 입술에 미소를 머금고, 머리를 높이 들고, 단호한 표정으로 나온다. 하지만 울었음이 분명하다.)
조시 : (결연하게) 자, 됐어요. 어떤 술주정뱅이에게라도 1만 불 가치는 있어 보이지 않아요?
호건 : 백만 불짜리로 보인다, 딸아!
조시 : (방충망 문으로 가서 배수진을 친 사람의 태도로 문을 연다.) 따라와요. (나간다. 호건은 그녀를 바짝 따라간다. 첫발을 떼자마자 갑자기 멈춘다−놀라서) 봐요! 길에 누가 있어요…
1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