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안드레아스 그뤼피우스의 비극 〈레오 아르메니우스, 혹은 황제 시해〉는 바로크 문학의 대표작으로, 독일어를 문학 언어로 정립하려는 시도와 함께 탄생한 작품이다. 30년 전쟁 이후 독일 사회의 혼란 속에서, 작가는 “세상사 덧없음(Vanitas)”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간 존재의 허망함과 기독교적 구원을 탐구한다.
이 비극은 9세기 비잔틴 황제 레오 5세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며, 역사적 소재에 17세기 절대주의 시대의 폭군 시해 논쟁을 결합했다. 작품은 세 가지 비극적 서사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첫 번째는 미카엘의 비극으로, 그는 반역을 도모하다 체포되어 화형 선고를 받지만 처형 연기로 인해 황제 레오를 암살하며 비극의 흐름을 뒤바꾼다. 두 번째는 레오 황제의 비극으로, 폭군으로 묘사되던 황제는 작품 말미에 회개하며 십자가에 입 맞추고 죽는다. 마지막은 황비 테오도시아의 비극으로, 성탄절 자비를 호소하며 미카엘의 처형을 연기한 자신의 선택이 남편의 죽음과 자신의 몰락을 초래했음을 한탄한다.
서사는 주인공들의 강렬한 갈등과 언어 표현으로 바로크 문학의 특징을 드러낸다. 1막부터 미카엘과 레오 사이의 논쟁이 극적 긴장을 고조시키며, 레오의 죽음 직전 장면에서는 예수의 피와 레오의 피가 섞이는 묘사가 등장해 기독교적 구원 메시지를 강화한다. 또한 그뤼피우스는 비극 말미에 성가 구절을 경구로 삽입해 삶의 덧없음을 환기하며 신앙을 구원의 원천으로 제시한다.
문학 언어로서 독일어의 독창성과 예술성을 보여 준 〈레오 아르메니우스, 혹은 황제 시해〉는 폭군 시해의 정당성, 권력의 덧없음, 신앙을 통한 구원을 탐구한 점에서 시대적 가치를 지닌다.
역자는 독일에서도 아직 현대 독일어로 소개되지 못하고 있던 이 작품의 가치를 우리말로 온전히 전하기 위해 지난 30년간 작품 번역과 해설에 매달렸다. 이 책은 그 결실이다.
200자평
폭군 황제 레오의 비극적 몰락과 회개, 반역자 미카엘의 처형과 반란, 황비의 자비심으로 인한 몰락을 다룬 바로크 문학의 정수. 독일어로 쓴 최초의 비극이다. 그뤼피우스는 역사적 소재와 17세기 폭군 시해 논쟁을 결합해 세상사 덧없음을 강조하며, 독일어 문학 언어의 발전에 기여했다.
지은이
안드레아스 그뤼피우스(Andreas Gryphius, 1616∼1664)
영국의 셰익스피어가 세상을 떠난 해에 독일 슐레지엔 지방 글로가우(Glogau)에서 루터교 목사 아들로 태어났다. 30년 전쟁(1618∼1648) 중이던 5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12세 때는 재혼한 어머니마저 잃어 결국 13세부터 의붓아버지와 의붓어머니 밑에서 자라게 된다. 12세에 의붓아버지와 함께 종교상 이유로 고향에서 추방되었으며 어린 나이에 약탈과 방화 현장을 목격한다. 이러한 불행 속에서도 다행히 여러 후원자를 만나 김나지움을 다녔고, 네덜란드의 라이덴 대학에서 해부학과 법학을 수학했다. 1646년에는 브레슬라우시 시의원이 되며, 1648년에는 프랑크푸르트/오데르 등 몇몇 대학에서 교수직을 제안받았지만 거절한다. 전쟁 직후인 1649년에 결혼해 자녀 일곱을 두었으나 첫째 아들만 성년이 될 때까지 살아남는다. 1650년 34세에 고향 글로가우의 신분 의회 법률 자문이 되었다.
이렇듯 그뤼피우스는 극도로 불우한 삶으로 얼룩진 역경을 극복한 위대한 지식인이며, 이러한 내적, 외적 상태를 문학에 투영하는 데 성공한 바로크 시대의 대표 작가다. 전쟁에 의한 혼돈과 아픔 그리고 도덕적, 종교적 상실감은 그의 시와 비극 작품에서 “인간사 덧없음”이라는 핵심 주제를 형성한다. 그는 이미 살아생전에 드라마 작가로서 널리 알려지면서 “독일 드라마의 아버지”라고 평가되었다. 공무 수행 중 뇌졸중으로 48세 나이에 사망할 때까지 공직을 수행하면서도, 소네트와 송가, 비극 5편, 희극 3편, 산문 3편을 출간했으며 그 외 출간되지 않은,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옮긴이
이정준
성균관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헨 대학에서 석사(1988) 학위를 받고 〈전통과 갈등: 마리루이제 플라이써와 베르톨트 브레히트 사이의 협력관계〉(1992)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특히 독일 문화의 각 시대적 양상에 대한 문학적 담론과 수용을 탐구한다. 2020년 퇴임 이후 현재 성균관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다. 논문으로 〈독일 드라마의 첫 거장 안드레아스 그뤼피우스〉(2002), 〈하인리히 뵐의 소설 《어느 어릿광대의 견해》 속의 전화 모티브〉(2014),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집 《노래 시 합창》〉(2017) 외 다수가 있다. 역서로는 프란츠 크사버 크뢰츠의 《가내노동》(2004), 《오버외스터라이히》(2004) 등이 있다. 《청년 브레히트 “혁명을 꿈꾸다”》(2019), 《브레히트 연극 사전》(2021)을 공동 집필했다.
차례
친애하는 독자여
비극의 내용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제5막
몇 군데 불분명한 곳에 대한 해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참고 문헌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테오도시아: 끝내는 그들이 너에게도 죄를 물을 것이야.
여러 번 탐냈던 왕위에 이 소원과 함께 오르거라.
음모와 피와 살인으로 얻은 왕관을 가져가거라!
난 궁을 잘 알아. 부조리한 궁궐을 말이야.
시기와 거짓 충성 그리고 황제의 지긋지긋한 방문객들,
힘든 삶과 두려움. 너 일어나, 맞서 괴롭히고
습격하고, 돌진하고, 죽이고 찌르라, 너의 시간이 올 때까지
그렇게 우리의 피로 얼룩진 네 곁에 그자들을 등용하라,
우리의 몰락을 통해 큰 명예와 행운을 물려받는 자들을.
등용하라, 정직함보다 거짓 맹세를 더 좋아했던 자를,
황제 시해를 아주 훌륭하게 수행했던 자를,
교회와 궁전과 지하 감옥을 부숴 버리는 힘 있는 자를,
그리고 갈고닦아라, 언젠가 네 가슴을 찔러 꿰뚫을 검을.
2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