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전
최운식이 해설한 작자 미상의 ≪심청전≫
운명과 의지의 투쟁
쌀 300가마에 목숨을 판 것을 알고 장 승상 부인은 대납을 제안한다. 심청은 거부한다. 명분 없는 재물로는 효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우연으로는 안된다. 자유 의지로 자신의 목숨을 버릴 때에만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의지가 이겼다. 그는 효녀다.
심 봉사는 철도 모르고,
“야, 오늘은 반찬이 매우 좋구나. 뉘 집 제사 지냈느냐?”
그날 꿈을 꾸니, 이는 부자간 천륜이라 몽조(夢兆)가 있는 것이었다.
“아가 아가, 이상한 일도 있다. 간밤에 꿈을 꾸니, 네가 큰 수레를 타고 한없이 가 보이니, 수레라 하는 것이 귀한 사람이 타느니라. 우리 집에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보다. 그렇지 아니하면 장 승상 댁에서 가마 태워 가려는가 보다.”
심청이는 저 죽을 꿈인 줄 짐작하고 거짓,
“그 꿈 좋사이다.”
하고, 진짓상을 물려내고, 담뱃대에 불을 붙여드린 후에 그 진짓상을 대하여 먹으려 하니, 간장이 썩는 눈물은 눈으로 솟아나고, 부친 신세 생각하며 저 죽을 일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하고, 몸이 떨려 밥을 못 먹고 물린 후에, 심청이 사당에 하직 차로 들어갈 제, 다시 세수하고 사당 문 가만히 열고 하직하는 말이,
“불초(不肖) 여손(女孫) 심청이는 아비 눈 뜨기를 위하여 인당수 제수로 몸을 팔아 가오매, 조종향화를 이로 좇아 끊게 되오니 불승영모(不勝永慕)하옵니다.”
울며 하직하고 사당 문 닫친 후에 부친 앞에 나아와 두 손을 부여잡고 기색(氣塞)하니, 심 봉사 깜짝 놀라,
“아가 아가, 이게 웬일이냐? 정신 차려 말하여라.”
심청이 여쭈오되,
“내가 불초 여식(女息)이 아버지를 속였소. 공양미 삼백 석을 뉘라서 나를 주겠소. 남경 선인들에게 인당수 제수로 내 몸을 팔아 오늘이 떠나는 날이오니 나를 망종 보옵소서.”
심 봉사 이 말을 듣고,
“참말이냐, 참말이냐? 애고애고, 이게 웬 말인고. 못 가리라 못 가리라. 너 날더러 묻지도 않고, 네 임의대로 한단 말이냐? 네가 살고 내가 눈 뜨면 그는 응당하려니와, 자식 죽여 눈을 뜬들 그게 차마 할 일이냐? 아내 죽고 자식 잃고, 내 살아서 무엇 하리. 너하고 나하고 함께 죽자. 눈을 팔아 너를 살 데 너를 팔아 눈을 뜬들 무엇을 보려고 눈을 뜨리. 어떤 놈의 팔자기에 사궁지수(四窮之首) 된단 말인가! 네 이놈 상놈들아, 장사도 좋거니와 사람 사다 죽여 제하는 데 어디서 보았느냐? 하느님의 어지심과 귀신의 밝은 마음 앙화(殃禍)가 없겠느냐? 차라리 나를 대신 데려가거라. 여보시오, 동네 사람들. 저런 놈들을 그저 두고 보오?”
≪심청전≫, 작자 미상, 최운식 옮김, 63~65쪽
우리 고소설에서 꿈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 장치인가?
심 봉사는 딸이 처한 상황과 반대되는 꿈을 이야기함으로써 비장감을 더한다. 고소설에서 꿈 이야기는 복선이나 분위기를 고조하는 구실을 한다.
복선 구조를 만드는 꿈의 등장 사례는 어떤 것이 있는가?
≪금방울전≫에서 ‘장삼’의 아내는 남편을 싸움터로 보낸 뒤 남편이 용을 타고 들어오는 꿈을 꾼다. 장삼은 고아인 ‘해룡’을 업고 들어온다. 괴물에게 납치된 공주의 꿈에 선관이 나타나 ‘내일 오시에 한 젊은이가 와서 구해 줄 것’이라고 한다. 정말 다음 날 오시에 해룡이 나타나 공주를 구해 준다. 꿈은 앞일을 예시하면서 사건 전개의 복선 구실을 한다.
심학규는 어떤 인간인가?
무능력한 가장이다. 어린 심청을 안고 다니며 젖동냥과 구걸로 힘들게 길렀다. 그러나 심청이 자라서 밥을 빌고, 품팔이를 하자 더는 아무 일도 않는다. 딸에 의지해 사는 무능력한 인물이다.
심청이 자기 목숨과 바꾸면서까지 얻으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심청의 결심은 아버지의 가장 큰 소원, 곧 눈을 뜨고 세상을 보는 것을 이루어 드리겠다는 효심의 발로다.
스스로 죽지 않고서는 아버지의 행복을 실현할 방도가 달리 없었는가?
없지 않았다. 장 승상 부인이 쌀 300석을 내주겠다고 했다. 심청은 이 제안을 거부한다.
살 수 있는데 죽음을 선택했다면 심청의 인생관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심청은 말한다. ‘효를 이루는 데에 명분 없는 재물을 받을 수 없고, 행선날이 임박하여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선인들이 낭패할 것이니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한다.
아버지의 개안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이 효를 이루는 데 필요한 명분인가?
노력과 희생 없이는 효를 이룰 수 없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옥황상제와 사해용왕을 감동케 한 원인이 여기에 있다. 자신을 희생한 보답으로 심청은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린다.
≪심청전≫을 구성한 스토리텔링 요소는 어떤 것인가?
여러 가지 설화가 섞여 있다. 크게 다섯 가지 설화가 보인다. 태몽(胎夢) 설화, 효행 설화, 인신공희(人身供犧) 설화, 재생(再生) 설화, 개안(開眼) 설화 등이 그것이다.
태몽 설화와 효행 설화가 연결되면 어떤 메시지가 만들어지는가?
태몽 설화는 고소설뿐만 아니라 역사 인물 이야기에도 많이 전한다. 효행 설화는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는 설화다. ‘지성으로 부모를 섬기자 이적이 일어나 효를 성취하고, 잘 살았다’는 메시지를 구성한다.
인신공희, 재생 그리고 개안 설화의 기본구조는 무엇인가?
인신공희는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에서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내용의 설화다. 우리나라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전해 오는 설화다. 재생 설화는 부활(復活)과 환생(還生)의 양식으로 표현된다. 개안 설화의 주인공들은 대개 아들·딸·며느리의 효성 덕분에 눈을 뜬다.
심청전은 복합 설화 스토리텔링인가?
≪심청전≫의 작가는 작품의 각 단락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설화를 수용하여 작품의 설득 효과를 노린다. 사용된 설화는 오래전부터 전한 이야기다. 한국인의 다양한 의식이 잘 드러난다.
텍스트가 심청을 선녀로 설정한 이유가 뭔가?
이 책 ≪심청전≫은 1905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국립도서관 소장 완판 <심쳥젼> 71장본을 텍스트로 삼았다. 이 텍스트에 따르면 심청은 본래 천상계의 선녀였다. 세상으로 귀양 온 선녀다.
효를 주장하는 데에 착한 사람으로는 부족했다는 뜻인가?
비범한 인물의 근원을 비현실계인 천상계에 둠으로써 비범성을 강조한다. 인간 존재의 근원이 본래 비현실계임을 드러내려는 의도다.
이 작품에서 현실계와 비현실계는 어떻게 관계되나?
비현실계의 선녀는 현실계인 지상으로 와서 심 봉사의 딸로 태어난다. 그리고 다시 비현실계인 용궁에 갔다가 다시 현실계로 돌아와 행복을 누린다. ≪심청전≫의 배경 공간은 비현실계-현실계-비현실계-현실계-비현실계로 바뀌어 순환한다. 심청의 일생을 중심으로 봤을 때 현실계와 비현실계가 서로 바뀌어 순환하는 구조를 보인다.
순환구조는 심 봉사의 일생에서는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는가?
첫째, 심 봉사는 곽씨 부인이 늦은 나이에 심청을 낳자 좋아하며 행복하게 산다. 둘째, 산후병으로 부인이 죽고 딸마저 뱃사람들이 데려간 뒤에 슬픔과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셋째, 왕비가 된 딸을 만나 눈을 뜬 뒤에 행복하게 살았다.
행복과 불행이 꼬리를 무는 구조인가?
심 봉사의 일생은 ‘행과 불행의 순환 구조’를 보인다. 삶의 우연성과 운명의 절대 의지를 민중에게 설득하고 있다.
황주 도화동과 인당수는 실재했던 공간인가?
중국 황주일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우리나라 황해도 황주로 보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인당수’ 역시 우리나라에 있는 곳으로 본다. 서해 장산곶과 백령도 중간쯤 되는 바다는 물살이 세기로 이름난 곳인데, 여기가 인당수다. 남북분단 이전에 이곳을 오가며 물고기를 잡던 어부들이나 뱃사람들은 예전부터 이곳을 인당수라고 불렀다 한다.
백령도에 있는 <심청 전설>은 인당수의 위치에 대한 해석에서 비롯된 것인가?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에는 오래전부터 “효녀 심청이 인당수에 빠졌다가 연꽃을 타고 물 위로 떠올랐는데, 그 연꽃이 남쪽으로 떠내려 오다가 백령도 남쪽에 있는 바위섬인 연봉바위에 와서 걸렸다. 이를 뱃사람들이 보고 임금님께 바쳤는데, 연꽃에서 나온 심청이 왕비가 되었다”는 내용의 <심청 전설>이 전해 온다. 이 전설은 황해도 옹진, 장연 지역에도 있다.
≪심청전≫은 어떤 판본이 있는가?
필사본(筆寫本), 판각본(板刻本), 활자본(活字本)으로 전해 오는데, 모두 80여 종이다. 고소설에서 활자본을 가지고 있다면 당대 베스트셀러다. 판각본은 ‘한남본 계열’, ‘송동본 계열’, ‘완판본 계열’로 나뉜다.
‘한남본 계열’의 특징은 무엇인가?
내용이 간소하고 구성 역시 차분하므로 재미가 덜하다. 문체는 간결하고 소박한 산문체다. 배경은 명나라 시대 남군 땅이다. 심 봉사의 이름은 ‘심현’, 그의 처는 ‘정씨’라고 했다. 한남본 계열 이본에는 장 승상 부인, 뺑덕 어미, 안씨 맹인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송동본 계열’과 ‘완판본 계열’의 특징은 무엇인가?
송동본은 문장이 율문체다. 배경은 송나라 시대의 황주 도화동이다. 심 봉사의 이름은 ‘심학규’, 그의 처는 ‘곽씨’라고 했다. 여기에는 곽씨 부인이 아기를 갖게 해달라고 비는 이야기, 심 봉사가 순산과 아기의 장래를 축원하는 이야기, 뺑덕 어미 이야기, 안씨 맹인 이야기 등 한남본 계열에 없는 내용이 첨가됐다.
이 책의 저본으로 ‘완판본 계열’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내용이나 문체 면에서 송동본과 대체로 같지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첫째, 완판본 계열에는 송동본에 없는 삽입가요(揷入歌謠), 잔사설, 고사성어(故事成語), 한시(漢詩) 등이 많이 나온다. 둘째, 송동본에 없는 장 승상 부인 이야기가 나온다. 셋째, 심청이 배를 타고 인당수에 가기까지 항해 경로와 오래전에 죽은 유명한 사람의 영혼을 만나는 이야기가 첨가되어 있다. 넷째, 맹인 잔치에 가는 심 봉사가 목동과 방아 찧는 여인을 만나고, <목동가>와 <방아타령>을 부르는 이야기가 첨가되어 있다. 다섯째, 심 봉사가 눈을 뜰 때 모든 맹인이 함께 눈을 뜨는 이야기, 심청이 아버지를 만난 후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가 첨가됐다.
신소설로 수용되면서 ≪심청전≫은 어떻게 변신하나?
활자본을 보면, 1912년에 ≪강상련(江上蓮)≫이 나왔다. 이해조가 완판본의 문장을 다듬고, 내용을 덧붙이거나 빼면서 신소설처럼 바꿔서 출판한 것이다. 1913년에는 신문관에서 ≪심청전≫이 나왔다. 한남본의 문장을 부분적으로 손질하고, 송동본의 뺑덕 어미 이야기를 첨가해 간행한 것이다. 그 후 여러 출판사에서 ≪심청전≫이 나왔고, 많은 작가들이 다양하게 패러디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최운식이다.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다. 고소설을 연구한다. 터키 에르지예스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객원교수로 터키 학생들에게 한국문학과 문화를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