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조명희 시선
오윤호가 엮은 ≪초판본 조명희 시선≫
이것뿐이냐! 아니다
조명희가 본 식민지 조선에는 단 두 가지만 존재했다. 죽임과 죽음이다. 당대의 문학이 보들레르와 타골을 번역하고 있을 때 그는 산비탈 돌아 황톳길을 걷는다. 원수를 거꾸러뜨리려는 싸움의 힘을 찾아 무산자의 희망을 노래한다.
짓밟힌 고려
일본 제국주의의 무지한 발이
고려의 땅을 짓밟은 지도 발서 오래이다.
그놈들은 군대와 경찰과 법률과 감옥으로
온 고려의 땅을 얽어 놓앗다.
칭칭 얽어 놓앗다-온 고려 대중이 입을 눈을 귀를 손과 발을.
그리고 그놈들은 공장과 상점과 광산과 토디를 모조리 삼키며
노예와 노예의 떼를 몰아 채즉질 아래에 피와 살을 사정없이 글어 먹는다.
보라! 농촌에는 땅을 잃고 밥을 잃은 무리가
북으로 북으로, 남으로 남으로, 나날이 쫓기어 가지 안는가
뼈품을 맞아도 먹어지지 않는 그 사회다. 도외에는 집도 밥도 없는 무리가 죽으러 가는 양의 떼같이 이리저리 몰니지 안는가
그러나, 채즉은 오히려 더 그네의 머리 우에 떨어진다-
순사에게 눈 흘긴 죄로, 디주에게 소작료 감해 달라는 죄로, 자본주에게 품값 올려 달라는 죄로.
그리고 또 일본 제국주의에 반항한 죄로, 쁘로레따리아트를 위하야 나와 가며 일하는 죄로.
주림과 막대에 시달려 빼, 말은 그네의 몸둥이 위에는 모진 채죽이 던져진다.
어린 ‘복남’이는 저의 홀어머니가 진고개 왜놈에게 종노릇하느라고 만나지 못하야 보고 싶다고 운다
젊은 ‘순이’는 산같이 믿던 저의 남편이 품파리하려 일본 간 뒤에 몇 년이나 소식이 없다고 ‘강곡구베야’에서 죽엇는가 보다고 감독하는 왜놈에게 총살당하엿나 보나고. 왜놈의 밥솟에 불을 집혀 주며 한숨 끝에는 눈물짓는다
아니다. 이것은 아직도 둘째다
기운 씩씩하고 말 잘하던 인쇄 직공 공산당원 ‘성룡’의 늙은 어머니는 어느 날 아츰결에 경찰서 문턱에서 매 맞아 죽어 나오는 아들의 시테를 부등켜안고 쓰러졋다-그는 지금 꿈에도 자긔 아들의 일홈을 부르며 운다
아니다 또 있다
십 년이나 두고 보지 못하던 자긔 아들이 정치범 미결감 삼 년 동안에 옷 한 벌 밥 한 그릇 들이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얼굴이나 한번 보겟다고 천 리 밖에서 달려와 공판정으로 기여들다가 무지한 간수 놈의 발길에 채여 땅에 잡버저 구르며 한울을 치어다보아 탄식하는 쉰 머리의 로인도 있엇다
이것뿐이냐! 아니다
온 고려 쁠로레타리아의 동무-몇 천의 동무는 왜놈들의 악독한 주먹에 맞아 죽고 병들고 쇠사슬에 매어 감옥으로 갓다
그놈들은 이와 같이 우리의 형과 아오를. 아니, 온 고려 뿌로레타리아트를 박해하랴 든다
고려의 쁘로레타리아 그들에게는 오직 죽임과 죽음이 있을 뿐이다
죽임과 죽음!
그러나 우리는 락심치 안는다. 우리의 힘을 믿기 때문에-
우리의 뼈만 남은 주먹에는 원수를 꺽구려트리랴는 거룩한 마음의 싸움의 힘이 숨어 있음을 믿기 때문에.
옳도다. 다만 이 싸홈이 있을 뿐이다.
칼을 칼로 갚고 피는 피로 씻으랴는 싸홈이. 힘쎄인 뿌로레타리아트의 새 긔ㅅ대를 높이 세우랴는 거룩한 싸홈이!
그리고 우리는 또 믿는다
죽음의 골작이 죽음의 산을 넘어
그러나 굳건한 거름으로 거러 나가는 온 세게 뿌로레타리아들의 상하괴 싶슴인 몇 억만의 손과 손들이
저 동쪽 하늘에서 붉은 피로 물든인 태양을 떠밀어 올린 것을
거룩한 뿌로레따리아트의 세상이 올 것을 굳게 믿고 나간다!
≪초판본 조명희 시선≫, 오윤호 엮음, 82∼85쪽
이 시가 정말 순수문학이 주도하던 1920년대 후반에 발표된 시가 맞는가?
1928년 8월 일제 경찰의 탄압을 피해 소련으로 망명한 조명희가 ‘조생’이란 필명으로 쓴 시다. 순수 서정을 그리고 식민 현실을 노래했던 이전 시와는 달리, 일제에 빼앗긴 조선의 현실을 고발하고, 일제에 대한 강한 저항 의지를 담아 민족 해방과 계급 투쟁을 과감하게 드러냈다.
조명희는 누군가?
소설가이자 시인, 극작가다. 호는 포석이다. 1894년 충북 진천에서 태어났다. 1925년 카프에 가담했고 1928년 일제의 탄압을 피해 소련으로 망명했다. 1938년 하바롭스크 감옥에서 총살된 것으로 전한다.
한국 근대 문학 형성에 어떤 역할을 했나?
도쿄 유학 시절 그가 쓰고 극예술협회가 공연한 <김영일의 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희곡이다. 단편소설 <낙동강>은 일제 식민지 현실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꿈꾸는 계급적이면서도 민족적인 현실 인식을 제대로 형상화했다.
한국 문학사에서 조명희가 철저히 배제된 이유는 무엇인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나라인 소련으로 망명했다는 정치적인 이유가 크다. 망명 작가를 조선 작가로 볼 수 없다는 배타적 민족 문학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 그를 디아스포라로 만들었나?
식민지 조선에서 문학 청년기를 보내고, 도쿄 유학 시절에 서구 근대 문학을 본격적으로 접했으며, 다시 식민지 조선으로 돌아와 카프 문학 활동을 하다가, 소련으로 망명해 소비에트 조선 문학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디아스포라 삶은 결국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략에 원인이 있다.
첫 번째 시집 ≪봄 잔듸밧 위에≫는 한국 근대시사에서 어디쯤 자리하나?
우리나라 세 번째 창작 시집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첫 번째 창작 시집으로 볼 수도 있다. 김억의 시집은 번역 시집이고, 이학인의 시집은 출간 전에 출판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한 예술은 어떤 것인가?
시집 머리말에서 무한한 시간의 우주와 한 마리의 새, 그리고 한 사람의 영혼이 똑같다고 말한다. 한 마리의 새가 날아가는 것이나, 한 사람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말을 하는 것 역시 우주적인 사건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영혼 자체가 예술적이며, 우리가 표현한 것이 우리의 예술품”이 된다.
‘선과 빛과 소리’는 어떻게 시가 되나?
예술가가 형상화해야 할 물질적인 대상인 사물(자연)의 선과 빛, 소리를 시인은 언어를 통해 구체적으로 형상화한다.
시가 언어의 예술이라면 그 조건은 무엇인가?
“그 말은 아름다워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말 가운데에는 회화의 요소인 빗이 잇고 음악의 요소인 리듬이 잇슴이라”라고 했다.
근대 언어의 유효성을 문제 삼은 것인가?
근대 언어가 “상인화(商人化)하고 야속화(野俗化)된 것”뿐이어서 아름답지 못하다고 한탄한다. 일상 언어와 문학 언어를 구분한 것이다.
우리가 보들레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 이유는?
“우리는 보들레르가 될 수 읍스며 타고어도 될 수 읍다. 우리는 우리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남의 것만 쓸대읍시 흉내 내지 마를 것이다. 붉은 장미가 읏더니 당신의 레이쓰가 읏더니 하는 서인의 노래만 옴기랴 하지 말고, 우리는 몬저 산빗탈 길 돌아들며 지개 목발 두드리어 노래하는 초동에게 향하야 드르라”라고 했다.
세계 문학의 보편성에 대해 무지한 것은 아닌가?
도쿄 유학 시절 접한 서구 문학에 정통했다. 그렇기에 오히려 이를 절대적 가치로 삼지 않고 바른 균형 감각을 가질 수 있었다.
조명희 문학의 주제는 무엇인가?
“조선 혼의 울음소리”를 듣고 쓴 시다. 당대 현실의 생활 감정 속에서 풍요한 조선어를 사용해 조선적 문학 감각으로 형성한 조선적 문학이다.
초기에 나타나는 외국 문학의 영향은 어찌 된 것인가?
시집 중 초기 작품인 ‘노수애음’부에 실린 시에서는 폴 베를렌의 <가을의 노래>가 표현하는 정취가 느껴진다. ‘어둠의 춤’부는 도쿄 유학 시절 경험한 가난한 식민지 지식인의 초상을 ‘고독자’의 이미지로 형상화한다. 그러나 ‘봄 잔듸밧 위에’부에 이르면 위의 시론이 잘 드러난다.
개인의 서정으로부터 민족 현실로의 지향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첫 시집 이후 매체에 발표한 시들에서 그 경계가 명확히 드러난다. 사회주의 문학에 경도되었고 시에서 소설로 창작 태도가 바뀌었다.
작가의 계급 조건이 문학에 어떻게 투영되는가?
1925년 초에 발표한 단편소설 <땅속에서>를 보면 “몸 하나 둘 곳도 별로 없”어 “內省生活이고 예술 창작이고 무엇이고 다 이 기분과 이 생활 속에서는 생각하고 돌아다볼 겨를이 없”는 처참한 가난이 드러난다. 이는 <낙동강> <저기압> 등의 사실주의 소설을 쓰는 바탕이 되었다.
소련 연해주로 망명한 뒤에 작품이 달라지는가?
그동안 일본의 감시로 자유롭지 못했던 표현이 구속을 벗는다. 망명 후 처음 쓴 산문시 <짓밟힌 고려>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일제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고 식민지 조선에 대한 애국심과 무산 계급의 국제적 연대감을 잘 조화시켜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망명은 가난과 일제로부터의 도피인가?
소련 땅에서 열심히 일하고 프롤레타리아의 조국인 소련을 사랑한 이유는 앞으로 프롤레타리아 국가가 될 조선을 해방시키는 것이 궁극적인 지향점이었기 때문이다.
소련에서 무엇을 이루었나?
조선사범전문학교에서 조선어문학을 강의하며 쓴 시, 소설, 정론, 평론 등의 작품들은 소비에트 조선 문학의 방향성을 보여 주었다. 조선사범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선봉≫ 신문에 문예란을 만들고, 자신의 한글 및 문학 교육을 받아 창작된 한글 문학 작품들을 모은 ≪로력자의 조국≫을 출간하기도 했다. 블라디보스토크나 우수리스크 인근 연해주 또는 빨치산스크 등지에서 많은 제자들을 문학가로 길러 냈다.
조명희 작품의 문학 의미는?
소설이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그 사회 변혁의 중심에 놓인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적 정체성을 강조해 보여 준다면, 시들은 식민지 지식인이 근대 문학에 눈뜨고, 자기 삶의 곤궁한 현실에 다가가며 고뇌하는 슬픔을 담아내고 있다.
나라를 잃어버린 시인에게 시란 무엇인가?
식민지 현실 속에서 정치적 디아스포라를 경험한 조명희에게 시란 우주적 관념의 자연을 앞에 둔 고독자의 고뇌이며, 가난한 식민 현실 속에서 스스로를 응시해야 하는 지식인의 한숨이며, 프롤레타리아가 승리하는 조선을 꿈꾸며 부르는 혁명가의 구호다.
당신은 누군가?
오윤호다. 이화여대 인문과학원 교수다. 디아스포라하는 자들(문학)을 추적하고 그들의 ‘플롯’을 짜며, 탈경계 인문학을 연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