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시선 초판본
무더운 여름밤
무더운 여름밤
밤에 익은 애인들이 물가에 모여서
길수록 외로워지는
긴 이야기들을 하다간…밤이 깊어서
장미들이 잠들어 버린 비탈진 길을
돌아들 간다
마침내 먼 하늘에 눈부신 작은 별들은
잊어버린 사람들의 눈
무수한 눈알들처럼 마음에 쏟아지고
나의 애인들은 사랑보다 눈물을 준다
내일이 오면 그날이 오면
우리 서로 이야기 못한 그 많은 말들을
남긴 채
영 돌아들 갈 고운 밤
나의 애인들이여
이별이 자주 오는 곳에 나는 살고
외로움과 슬픔을 받아 주는 곳에 내가 산다
무더운 여름
밤이 줄줄 쏟아지는 물가에서
이별에 서러운 애인들이 밤을 샌다
별이 지고
별이 뜨고
≪초판본 조병화 시선≫, 김종회 엮음, 81~82쪽
무더운 여름밤, 잠 못 드는 이들이 있다.
사연은 서로 다르다.
더위에 지쳐, 이별에 서러워, 이야기에 빠져,
별빛에 취해 밤을 새운다.
별이 지고 별이 뜨고.
그렇게 또 하루의 여름밤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