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삼설기》는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방각본(坊刻本 : 조선 시대 민간에서 상업적 목판으로 제작된 목판본 소설) 단편집이다. 1848년에 방각된 이래 손으로 베껴 쓴 필사본은 물론, 근대 이후 제작된 활자본까지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한 세기에 이르는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독자들에게 읽혔다.
《삼설기》는 일반적인 방각본 소설과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 문제적인 텍스트다. 가사와 소설, 동물 우화 등 《삼설기》에 수록된 아홉 개의 단편들은 형식과 문체가 매우 다양해 그것들이 어떤 논리에서 하나의 작품집을 구성하게 됐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현대의 기준, 곧 서구의 문예 미학을 기준으로 할 때 《삼설기》는 ‘소설’ 혹은 ‘소설집’에 미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잡스러움이야말로 《삼설기》의 매력이다. 운문과 산문이, 이야기와 소설이 서로 담을 쌓지 않고 열린 공간에서 함께 향유되었던 우리 문학장의 맥락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내용에서도 다른 방각본 소설과 다르다. 상업적 목적으로 제작되고 유통됐던 방각본은 그 특성상 대중 독자들의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방각본 소설이 영웅의 일대기를 다루고 당대 인기 있었던 군담과 애정의 모티프가 나타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삼설기》는 영웅이 아닌 평범한 인물들을 내세웠다. 한량에 불과한 선비들, 시집 못 간 불구의 노처녀, 말단 초포수에 이르기까지. 《삼설기》가 문제 삼는 것은 19세기의 ‘생활’이다.
2010년 《삼설기(三說記)》 단독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신희경 교수가 원문을 배려한 전문적인 번역을 선보인다. 간단한 어휘부터 전통 문화와 복식, 중국 고사와 인물에 대한 방대한 주석을 붙인 첫 완역본이다.
200자평
우리나라 최초의, 유일한 방각본(坊刻本) 단편집이다. 가사와 소설, 동물 우화 등 다양한 형식을 가진 아홉 개의 독립된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삼설기》는 서구 문예 미학의 ‘소설(집)’ 개념을 빗겨가는 문제적인 텍스트다. 운문과 산문, 이야기와 소설이 서로 담을 쌓지 않고 열린 공간에서 함께 향유되었던 우리 문학장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도 문제적이다. 대부분의 방각본이 대중 독자의 요구를 반영해 당대에 인기 있었던 영웅의 일대기를 다룬 것과 달리 《삼설기》는 평범한 인물들을 내세웠다. 시집 못 간 불구의 노처녀부터 말단 초포수에 이르기까지. 《삼설기》가 문제 삼는 것은 19세기의 ‘생활’이다.
옮긴이
신희경은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삼설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전소설을 당대 문학적 전통과 문화적 인식의 산물이라고 보아 작품의 생성과 향유에 영향을 미친 사회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성신여대, 경희대, 국민대에서 강의했으며 2019년에 연구재단의 학술연구교수 지원사업에 ‘고전소설의 공간정보를 활용한 내러티브 구축 방안’으로 선정되어 성신여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24년에는 ‘신작 고소설의 공간 지명에 대한 계량적 분석’이 선정되어 현재 선문대학교 중한번역문헌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차례
삼사횡입황천기(三士橫入黃泉記)
오호대장기(五虎大將記)
황주목사계자기(黃州牧使誡子記)
서초패왕기(西楚覇王記)
삼자원종기(三子原從記)
노처녀가(老處女歌)
황새 결송(決訟)
녹처사연회(鹿處士宴會)
노섬상좌기(老蟾上座記)
해설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인간 세상에 좋게 있는 사람을 악착같은 차사를 보내어 잡아들여 올 때 열나흘 길이오니 이제 돌아가라 하시니 왕복 길이 28일이라. 그 사이 칠일장(七日葬)을 했을지 구일장(九日葬)을 했을지 석 달 동안 상여가 길에 머무를 리는 만무하여 벌써 장사를 지내서 시신이 없을 것이니 혼백(魂魄)을 어디에다 붙이라 하시나이까.”
하며 발악하거늘, 염왕이 들으니 그 말이 사리에 맞는지라. 이에 달래어 말하기를,
“그러면 아무 재상가(宰相家)에 네 가문과 같은 집에 점지해 줄 것이니 도로 나가라.”
세 사람이 다시 아뢰되,
“좋게 있는 사람을 잡아다가 오거라, 가거라 하니 응당 그 값이 있을지라. 우리들의 원대로 점지해 주소서.”
염왕이 웃으며 말하기를,
“너희 소원대로 아뢰어라.”
− 〈삼사횡입황천기(三士橫入黃泉記)〉 중에서
“소인은 좌사우부(左司右部) 초소에 다니는 포수이옵니다. 사또께 실제에 들어맞는 말씀을 아뢰고자 대령했나이다.”
하니, 대장이 처음에는 실없는 소리 하는 군졸로 여겨,
“무슨 말인지 아뢰어라.”
하니 포수가 가까이 나와 다시 절하고 꿇어 아뢰되,
“사또께서 오늘 습진(習陣)을 마친 후에 모든 집사(執事), 장교(將校), 칠색군병(七色軍兵)을 거느리시고 물으시기를, ‘내가 삼국 적에 있었으면 어디 적당하냐?’ 하시니, 그 말씀부터 무색(無色)하옵고 오호대장에 돌아 보내시니 만에 하나 아주 조금이나마 그림자에라도 마땅한 말씀이니이까? 사또는 모르시고 그렇게 여겨 좋아하시나 소인은 비록 초포수라도 영문(營門)의 요패(腰牌)를 차고 사또를 섬기는 도리에 매우 젊은 혈기로 일어나는 분(憤)을 참지 못해 이유를 아뢰고자 하나이다.”
− 〈오호대장기(五虎大將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