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조선무산자예술가동맹(KAPF) 맹원으로서 단편 〈洛東江〉 발표.
1928년, 소련으로 돌연 망명.
1934년, 소련작가동맹(SSSR) 가입.
1938년, 하바롭스크, 총살.
‘혁명’을 찾아 소련으로 망명한 조명희의 삶은 식민지 조선의 작가가 그릴 수 있는 가장 깨끗한 포물선이었습니다. 망명 이후 그의 삶은 물론 죽음에 대해서도 알 수 없었던 동료 문인들은 1946년, 아직 돌아오지 않는 조명희를 그리며 《낙동강》을 다시 펴냈습니다. 중간(重刊)에 부쳐 임화가 글을 썼습니다.
“포석 형이 조국을 떠난 지 어언 18년, 그가 몽시간에도 그리든 조국에 자유가 차저오려는 날, 아즉도 형은 이역에서 도라오지 않었다. 하로바삐 많은 수학과 건강한 몸으로 도라오기를 바라는 것은 나 한 사람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이제 포석 형의 귀중한 업적이 형이 도라오기에 앞서 중간됨에 당하여 멧 마듸의 말로 형에 대한 그리움의 정과 바램의 마음을 적고, 아울러 그 업적에 대하여 두어 마듸의 말을 적어 중간사에 대신하는 것이다. (…) 일본 황국주의의 압력으로 인하여 ‘복자(伏字)’를 쳤든 것을 소생시키려 하였으나 역시 함부로 손을 대일 바가 아니어서 그대로 인행하고, 형이 도라올 날을 기다리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