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오카 시키 수필선
손순옥이 뽑아 옮긴 ≪마사오카 시키 수필선(正岡子規隨筆選)≫
죽음과 삶 사이에서 알았다
태연히 죽는 것은 어렵다. 태연히 사는 것은 더 어렵다. 참기 힘든 육신의 고통과 함께 찾아오는 세계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작고 소박하다. 저승에 가져갈 선물 하나를 얻고 어둠에서 빛을 본다.
집안일을 줄이기 위해서 취사 회사를 세워 밥을 짓게 하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좋은 생각이다. 밥을 짓기 위해서는 하녀를 두고 아궁이를 설치하는 등 쓸데없는 비용과 수고를 들인다. 우리 집처럼 하녀를 두지 않는 집에서는 가족 중 누군가가 밥을 짓지만 이 역시도 많은 시간과 수고를 요하기 때문에 병간호를 하면서 틈틈이 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럽다.
밥을 짓고 있을 때 환자에게 급한 일이라도 생기면 그것 때문에 밥이 눌어붙거나 설익는 등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다. 그러니 취사회사 같은 것이 생겨 그 일을 떠맡아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에도 근처 음식점에 주문을 하면 밥을 지어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간혹은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역시 옛 습관을 버리지 못해 가족 중 여자들은 그것을 꺼려, 될 수 있는 한 직접 밥을 지으려 한다. 밥 짓는 수고를 아껴 다른 필요한 일에 힘을 쏟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한가할 때는 그래도 괜찮겠지만 일손이 부족해서 곤란할 때 무리해서 밥을 짓고자 하는 것은 역시 여자에게 상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 노력을 아껴 다른 필요한 일에 쏟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필요한 것이 집집마다 다르겠지만, 하나의 예를 들면 밥 짓기에 힘쓰기보다 반찬 조리에 힘쓰는 편이 훨씬 맛있는 식사가 될 수 있다.
환자가 있는 집이라면 병상에 붙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거나, 듣고 싶어 하는 것을 읽어 주는 편이 훨씬 현명하다. 일본의 밥은 집집마다 된밥을 선호하거나 진밥을 선호하는 등 똑같을 수 없기 때문에, 서양의 빵과 같을 수야 없겠지만, 그런 것은 어떻게든 할 수 있다. 취사회사가 된밥, 진밥, 고급, 하급으로 각양각색의 주문에 맞춰 준다면 식구가 적은 가정에서는 집에서 밥을 짓는 것보다 주문하는 편이 오히려 편할 것이다.
≪마사오카 시키 수필선≫, 손순옥 옮김, 195~196쪽
이 글이 정말 1900년대의 발상인가?
1902년 7월 4일자 ≪일본≫에 실린 <병상육척(病牀六尺)>의 일부다. 이 밖에도 세계화나 간호, 문자 개혁, 교육 등 다양한 방면에 대해 놀랄 만큼 진보적인 의견을 제시한다.
병상육척이라면 병상에서 쓴 글인가?
22세에 결핵을 앓기 시작해 29세부터는 거동이 불가능했고 35세에 사망했다. <묵즙일적(墨汁一滴)>, <앙와만록(仰臥漫錄)>, <병상육척>, 그 외 많은 신문 잡지의 논평이 삶의 최대 공간이었던 ‘병상 6척’에서, 생명의 한 방울과 다름없는 ‘먹물 한 방울’로 써내려 간 것이다.
고통 속에서도 죽기 직전까지 글을 쓴 이유는 무엇인가?
“병상 6척, 이것이 나의 세계다. 그럼에도 이 여섯 자의 병상이 나에게는 너무 넓다. 약간 손을 뻗쳐서 다다미 바닥을 만지는 일은 있지만 이불 밖으로까지 발을 뻗어서 몸을 편하게 할 수도 없다. 아주 심할 때는 극단적인 고통에 시달려 조금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고통, 번민, 소리 내어 울기, 진통제, 죽음의 길에서 겨우 한 줄기 활로(活路)를 구해 약간의 안락을 탐하는 무상함, 그래도 살아 있기에 말하고 싶은 것은 말하고 싶다. 매일 보는 것은 신문 잡지에 불과하지만, 그것조차 읽지 못하고 괴로워할 때도 많지만, 읽으면 화가 나는 것, 신경에 거슬리는 것, 때로는 왠지 기뻐서 병고(病苦)를 잊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병상에 갇힌 시키에게 글은 세상을 향한 창이고, 삶의 의미이며 고통을 잊게 하는 진통제였다.
병상의 글인데도 밝고 긍정적이다. 그 에너지는 뭔가?
미(美)와 학문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다.
이 책에는 어떤 글을 엮었나?
16세부터 쓰기 시작한 수필 <붓 가는 대로>, 4대 수필인 <송라옥액(松蘿玉液)>, <묵즙일적(墨汁一滴)>, <앙와만록(仰臥漫錄)>, <병상육척(病牀六尺)>, 그리고 기타 잡지에 실린 글 중 시키의 생활이나 정신적인 내면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문장을 골라 주로 연대순으로 엮었다.
어떤 주제를 다뤘나?
문명론부터 친구에 대한 평, 회상이나 일상의 견문, 문학 평론, 자녀 교육, 야구 해설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마사오카 시키는 어떤 사람인가?
일본 메이지 시대의 학자이자 시인, 화가다. 1867년에 태어나 서른다섯의 젊은 나이에 병사했다. 본명은 마사오카 쓰네노리(正岡常規)다.
‘시키(子規)’란 필명은 두견새를 뜻하나?
1889년 5월 일주일 정도 객혈을 계속한 후, 이제부터 울며 피를 토한다는 두견새[子規]를 필명으로 하자고 결심했다.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그해 9월, 나쓰메 소세키의 기행 한시문집 ≪목설록(木屑錄)≫을 비평하면서다.
나쓰메 소세키와는 어떤 사이였나?
도쿄대학 예비문 동창이다. 둘은 동갑인데, 입학해서 6년째 되는 1889년 1월 교실에서 대중 연예장 ‘요세(寄席)’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의기투합해 친해졌다. 나쓰메 긴노스케의 소세키라는 필명도 시키의 문예집 ≪칠초집(七草集)≫ 비평에 처음으로 사용했다.
일본 문단에서 하이쿠와 단가를 정립한 것이 이 사람인가?
그렇다.
하이쿠란 무엇인가?
하이쿠란 5/7/5의 17음을 정형(定型)으로 하는 짧은 시다. 에도 시대의 전통 시가 ‘하이카이(俳諧)’의 앞 구, 즉 홋쿠(發句)를 따로 떼어 시키가 ‘하이쿠(俳句)’라고 명명하면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긴 시를 단시로 혁신한 것인가?
형식만 바꾼 것이 아니다. 관념적이었던 전통 시가의 주제를 생활과 풍경의 장으로 옮겨 왔다. 이른바 “사생(寫生)” 기법이다.
사생이란 미술에서 사용하는 기법 아닌가?
시키는 미술에도 정통했다. 특히 서양화의 과장 없이 사실을 그대로 그리는 “사생”의 묘미를 깨달아 이를 문학에 적용했다.
사실주의인가?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의 정취를 그린다. 기교에 집착하지 않고 진솔한 본질을 그려 내면 그 속에 대상의 진수인 정신이 담긴다고 했다.
운문의 대가인데 수필을 소개하는 이유는 뭔가?
하이쿠가 문학성을 드러낸다면, 수필은 시키라는 인간 자체를 보여 준다. 나라가 다르고 시대도 다르지만, 자연을 아끼고 인간을 사랑하며 정의로웠던 그의 정신세계를 소개하고 싶다. 물질이 풍요롭고 육체가 건강한데도 자주 좌절하는 나약한 현대인이 시키의 건강한 정신을 함께 나누기를 바란다.
하이쿠 대가의 깨달음이란 어떤 것인가?
대체로 이런 것이다.
유리 항아리에 금붕어 열 마리 담아 책상에 두었다. 아픔을 참으며 병상에서 찬찬히 들여다본다. 아픈 것도 아픈 것이고 예쁜 것도 예쁜 것이다.
아픈 것도 아니고 아프지 않은 것도 아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 머리맡에 손님이 없다. 옛 잡지를 꺼내 호시노 박사의 <守護地頭考>를 읽는다. 10년 의혹이 한순간에 풀리는 기쁨, 저승에 가져갈 선물 하나 늘었다.
지금까지 선종이 말하는 깨달음을 오해했다. 깨달음이란 언제 어디서나 태연히 죽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틀렸다. 언제 어디서나 태연히 사는 것이다.
당신은 누군가?
손순옥이다. 중앙대학교 일본어과 명예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