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교순 동화선집
임교순이 짓고 박혜숙이 해설한 <<임교순 동화선집>>
개불알 꽃과 은방울 꽃
어린 시절, 긴 봄날을 홀로 기다리는 임교순에게 어머니는 산나물 다래끼 내놓았다. 그곳에는 언제나 꽃들의 웃음 소리 왁자했다. 기다림은 이야기가 되었고 꽃은 시가 되었으며 웃음은 노래가 되었다. 오늘도 그곳에선 쪼로롱 방울 소리 쏟아지겠다.
“옛날, 먼 옛날에도 지금처럼 이 마을에 연못이 있었는데, 바로 그 연못가에 외딴집이 한 채 있었대. 그 집에는 부모도 없는 총각 혼자서 살고 있었는데, 그 총각은 이 집 저 집 일을 해 주고 밤이면 혼자 이 집에서 잤대. 그런데 어느 겨울날, 땔나무를 하러 산에 갔다가 어두워서야 집에 돌아와 보니, 방 안에는 촛불이 밝혀져 있고 따뜻한 밥상이 놓여 있더래. 마을 아줌마가 갖다 놨겠거니 했는데, 다음 날도 산에 가서 나무를 해 가지고 와 보니 또 밥상이 놓였더래. 이상하게 생각한 총각은 사흘째 되던 날 나무하러 가는 척하다가 다락 속에 숨어 해가 지기를 기다렸는데, 저녁이 되어 어두워지자 부엌에서 달그락달그락 그릇 소리가 나더래. 살며시 부엌문을 열자 아주 예쁜 아가씨가 깜짝 놀라며 얼굴이 빨개져 총각을 바라보지 못하더래. 총각은 얼른 아가씨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촛불을 밝히고 아가씨의 손을 잡으며 부인이 돼 달라고 했대. 그런데 아가씨는 잡힌 손을 빼며 눈물을 흘리더래. 그 눈물방울이 구슬같이 굴러 두 볼을 타고 내려 목덜미로 사라지자 총각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대. 아가씨 목 밑에 누런 엽전 같은 고기비늘이 다닥다닥 붙어 있더래. 총각은 깜짝 놀라서 눈이 똥그래졌는데, 예쁜 아가씨는 두어 번 재주를 넘더니 커다란 금붕어로 변해서 두 눈을 글썽거리고 있더래. 더욱 놀란 총각은 금붕어를 안아 연못 속에 넣어 주었대. 이 소문은 온 마을에 퍼지고 총각은 간다 온다 말도 없이 어디론가 가 버렸대. 총각이 떠난 뒤 총각이 살던 집은 한 번도 불이 켜지지 않는 무서운 집이 되었대. 그러던 어느 해 겨울밤 이 집에는 촛불이 환히 켜졌더래. 이상하게 생각한 이 동네 청년들이 가만히 가서 문구멍으로 들여다봤더니 아주 예쁜 아가씨가 밥상을 옆에 놓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더래. 그래서 마을 청년들이 방문을 열고 기다리는 총각은 어디론가 떠나고 없는데 기다려 무엇 하느냐 했더니, 금붕어 아가씨는 울면서 연못 속으로 사라지더래. 그 뒤로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대. 아직도 이 연못 속에는 금붕어 아가씨가 살고 있을지도 몰라. 지금 이 집이 바로 총각이 살던 집이야.”
혼자 사시는 할머니 얘기를 들은 아이들은 멍청히 할머니의 허연 머리털을 보면서 금붕어 아가씨의 모습을 그리며 꿈을 꾸듯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습니다.
<연못 속의 동네>, ≪임교순 동화선집≫, 임교순 지음, 박혜숙 해설, 3~5쪽
‘우렁 각시’ 설화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이유는 무엇인가?
환상적인 주인공을 설정하기 위해서였다. 설화와의 유사성을 감안했다.
이 작품에 대한 박혜숙의 견해에 동의하는가?
그는 “이야기를 통해 꿈을 키우고,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행동을 교정해 가는 아이들을 통해 이야기의 힘을 잘 보여 준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당신에게 죽음은 무엇인가?
소멸이 아니다. 내 작품은 죽음을 환생의 기쁨으로 표현하고 유토피아로 가는 길로 제시한다. 죽음은 종말이라는 상식은 우리를 허탈감에 빠뜨린다. 난 그게 싫다.
죽음이 등장하는 당신의 작품은 어떤 것인가?
<연못 속의 동네>와 <풀씨 한 알>이 있다. 박혜숙은 “죽음이 다른 생명으로 변화 내지는 ‘하늘나라’라는 새로운 세계로 이사하는 것을 암시”하면서 내가 “다양한 죽음을 형상화함으로써 ‘지금-여기’에서의 삶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우리 앞에 주어진 삶을 어떻게 영위해 나가야 할지 일깨운다”고 했다. <인형이 사는 동네>에서는 목수 할아버지의 죽음과 애도를 축제처럼 그렸다.
평론가는 ‘모성애’를 당신 작품의 키워드로 꼽는다. 당신에게 어머니는 무엇인가?
봄이면 먹을 것이 없어 어머니가 뜯어 오는 산나물을 먹었다. 깊은 산동네에서 컸지만 어머니의 사랑에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모성애는 고단한 현실을 이겨 내는 힘이었다.
실제 어머니도 그런 분이셨나?
일제 말기 한글도 못 배우고 어른이 되신 분이다. 어머니는 80이 넘어서 안경을 쓰고 손자손녀들 앞에 성경책을 내밀고 물어물어 글을 깨쳤다. 그렇게 해서 영세를 받고 돌아가실 때까지 기도문을 읽으셨다. “내가 이제야 눈을 떴다”던 말씀과 표정이 나의 눈 속에 아직도 살아 있다.
아동문학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독자가 많아 좋다. 유아에서 80세 노인에 이르기까지 쉽고 재미있게 언제나 읽을 수 있다. 어려운 지식을 요구하지도, 복잡한 관계를 따지지도 않는다. 동화 속 세상, 동시·동요 속 세상에 묻히면 이 복잡하고 무서운 세상인심에서 벗어나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이 내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문단에서 아동문학의 위치는 적당한가?
쉬워서 깔보거나 단순해서 얕잡아 보는 경향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학의 장르에 서열이 있을 수 없는데, 어느 문예지나 잡지의 편집 순서에서 늘 뒤꽁무니에 남겨지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다. 아동문학이 뒤처졌다는 생각과 행동을 한다는 건 큰 불행이다.
동시<방울꽃>은 어떻게 동요가 되었나?
≪새한신문≫에 발표했는데, 작곡가 이수인이 이 동시를 동요로 작곡해도 좋겠냐면서 엽서를 보내왔다. 그렇게 1966년 5월에 발표된 동요 <방울꽃>이 널리 불리면서 초등학교 4학년 음악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2005년에는 충남 보령시 성주개화예술공원 내 한국육필시공원에 <방울꽃> 문예비가 세워졌다. 이런 노래다.
아무도 오지 않는 깊은 산속에
쪼로롱 방울꽃이 혼자 폈어요
산새들 몰래몰래 꺾어 갈래도
쪼로롱 소리 날까 그냥 둡니다
산바람 지나가다 건드리면은
쪼로롱 방울 소리 쏟아지겠다
산노루 울음소리 메아리치면
쪼로롱 방울 소리 쏟아지겠다
이런 시는 어떤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어린 시절 긴 봄날 혼자 놀면서, 산나물을 뜯으러 산에 가신 어머니를 기다렸다. 배는 고프지만 혼자 마음대로 신기한 세상을 펼쳐 갔다. 어머니의 산나물 다래끼 속에는 언제나 개불알꽃과 은방울꽃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가 나에게 주려고 산나물과 함께 꺾어 온 꽃들이 나를 만나자 웃었다. 내 마음속에 늘 피어 있는 방울꽃이 되었다.
<김 소위와 노루>와 관련된 당신의 민통선 피체 사건의 전후 사정은 무엇인가?
상상만으로 쓴 작품이 아니다. 동화를 쓰기 위해 휴전선 비무장지대 안의 풍경을 체험하려고 민통선에 접한 학교로 근무를 지망했다. 1975년 강원도 인제군 서화초등학교로 전출했다. 교문 옆으로 탱크가 포를 싣고 지나거나 학교 맞은편 강가 벌판에서 포를 장전해 사격 연습을 할 때 교실 천장에 달린 형광등이 떨어져 박살이 나는 그런 학교였다. 군인 자녀의 초등 교육을 맡은 중견 교사로 일요일에도 아이들을 불러내어 작문 교육에 열중했다. 밤에는 군인들의 행군하는 군화 소리를 들으며 휴전선 비무장지대의 풍경을 답사했다. 하루는 민통선 안에 들어갔다가 헌병에게 잡혀 민간인 경찰지서에 인계되었다. 그날 학부형이었던 지서장, 그러니까 학생 정도성의 아버지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47년 만에 인사한다.
신춘문예에 10년씩이나 도전한 이유는 무엇인가?
교원 신문인 ≪새한신문≫에 응모해 수기 <귀여운 참회자>와 동시 <기차 같은 마음>이 당선되었다. 하지만 문단 등용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 1960년대 내내 중앙 신문사의 신춘문예 공모에 공을 들였다. 10년간 몸살을 앓으며 사투한 끝에 최종심에서 세 번의 낙방을 거쳤다. 이번에 떨어지면 절필하겠다고 마음먹은 후 마지막으로 응모한 것이 1970년이다. 결국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연못 속의 동네>가 당선됐다. 1971년 1월 1일에 발표 통지를 받고 효제초등학교 뒤 사택에서 뛸 듯이 기뻐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임교순이다. 동화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