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에서 사실성
이충환의 <<저널리즘에서 사실성>>
사실이 저널리즘을 구원하리라
의제와 관점이 난무하는 유사 저널리즘의 시대에 이충환이 치켜든 횃불의 이름은 사실성이다. 무엇이 저널리즘을 죽였는가? 가치지향성이다. 무엇이 저널리즘을 살리는가? 진실을 향한 사실의 확인이다.
저널리즘에서 사실성이란 무엇인가?
가장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개념이다. 윌리엄 스티븐슨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을 뛰어넘어 분별과 응집력, 감성과 의미가 더해진 그 어떤 것’으로 정의했다. 나에게 사실성이란 현실을 객관적으로, 과학적으로 재현하려는 다면적 노력의 총합이다.
당신은 왜 저널리즘의 사실성을 연구하나?
저널리즘 위기라고 한다. 해법이 필요하다. 답은 사실성 회복에 있다고 생각한다.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어느 순간부터 가치 보도가 사실 보도를 압도했다. 이때부터 저널리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동시에 저널리즘의 위기가 시작되었다.
저널리즘의 가치 지향적 보도가 왜 문제인가?
사회 발전 과정에서 가치 지향적 저널리즘이 유효하고 필연적인 시대가 있다. 그런데 세월이 흘렀음에도 저널리즘은 과거의 영광과 기억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유사 저널리즘과 구분되지 않는다.
저널리즘의 위기를 사실성 추구로 풀 수 있는가?
그렇다. 여기서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 저널리스트는 사실을 확보하고 그것을 촘촘하고 합리적으로 연결해 진실에 접근해야 한다. 신뢰 회복이 핵심이다.
이 책은 무엇을 다루나?
저널리즘에서 사실성이 어떻게 태동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뿌리를 내렸는지 살폈다. 그것의 현재 의의와 가치를 탐색한다.
저널리즘의 사실성에 이 책은 어떻게 접근하나?
뉴스레터, 가제트, 코란토 같은 초기 미디어부터 퓰리처의 뉴저널리즘에 이르기까지 미디어가 어떻게 사실을 표현하고 전달했는지 알아보았다. 그 과정에서 저널리즘의 사실성 확보 수준을 한 차원씩 끌어올렸을 것으로 생각되는 외적 자극에 주목했다.
저널리즘의 사실성 확보에 영향을 주었다는 외적 자극이란 당시 문예사조를 말하나?
그렇다. 특정 시기 특정 문예사조는 그 시대의 치열한 정신과 사상을 반영한다. 저널리즘도 이와 다르지 않다.
어떤 문예사조가 저널리즘의 사실성에 영향을 주었나?
19세기 중반 등장한 두 흐름이다. 리얼리즘은 현실의 객관적 재현을 추구했다. 자연주의는 과학적 현실 재현의 정신과 의지, 방법론을 견지했다. 두 사조는 19세기 후반 저널리즘의 지향과 많은 점을 공유한다.
문예사조와 저널리즘은 어떤 관계인가?
19세기 미국 저널리즘 발전에 기여한 찰스 다나는 저널리즘을 문학의 작은 여동생이라고 했다. 문학비평가 르네 웰렉은 저차원의 리얼리즘이 저널리즘을 비롯한 비예술 분야로 흘러들어갔다고 말했다. <<뉴스의 역사>>를 쓴 미첼 스티븐스는 저널리스트들이 리얼리즘에 영향을 받고 선도하기까지 했다고 말한다.
문예사조와 저널리즘의 연결 고리는 무엇인가?
19세기 후반 미국 저널리스트들과 리얼리즘과 자연주의와의 관계는 영문학과에서 시작된 미국의 저널리즘 교육과 당시 시대 상황으로 연결된다.
저널리즘 역사에서 왜 미국을 중요하게 거론하나?
19세기 미국과 유럽에서 일간지가 신문 패턴으로 일반화되면서 저널리즘이라는 개념을 형성했다. 미국은 최초로 제도화된 저널리즘 교육을 시작했다. 특히 이 책의 연구 관점에서는 19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태동한 리얼리즘과 자연주의 문예사조의 영향이 가장 컸던 곳이 바로 미국이다.
문예사조와 저널리즘의 연결 고리는 서로의 개성을 얼마나 버틸 수 있나?
상충과 분열의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이 시도하는 융합의 방법론이 갖는 약점이기도 하다. 연구 방법에서 밝혔듯이 문헌분석을 통한 추론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에서 사실성과 객관성의 차이는 무엇인가?
객관성은 저널리즘이 스스로를 보호하고, 영향력을 강화하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장치다. 그러나 사실성은 저널리즘 본연의 정신이고 태도이며, 진실을 찾아가는 방법론이다.
객관성 비판의 핵심 포인트는 무엇인가?
객관성을 비판하는 이들은 객관성이야말로 허구이며 불가능한 이상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저널리즘의 약점을 감추기 위한 포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저널리즘에서 객관성은 실현 불가능한가?
누구도 주관과 편견에서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저널리스트가 사실과 대상을 접하는 순간부터 엄밀하게 말하면 어떤 형태로든 왜곡이 시작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과 대상을 객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이 과연 유지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일 것이다.
객관성은 저널리즘의 약점을 어떻게 포장하나?
저널리즘은 때때로 권력 유지의 수단이 된다. 기존 사회 가치를 공고히 하는 데도 이용된다. 이익을 위한 편가르기에도 유용하게 작용할 때가 있다. 공중의 알 권리를 앞세워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기도 한다. 이럴 때 저널리즘은 객관성이라는 그럴듯한 표현으로 자신의 치부를 교묘하게 감춘다.
저널리즘에서 사실성을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정교한 현실 재현과 현실에 대한 비판성이다. 확보된 사실과 사실에 대한 합리적인 관계 설명이다.
사실성을 훼손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역사적으로 보면 내적으로는 저널리스트의 실재에 대한 낮은 인식과 무지, 비과학성, 욕심을 들 수 있다. 외적으로는 지배계급의 의도, 특정한 목적을 위한 왜곡과 날조, 검열 같은 제도를 들 수 있다.
사실성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사실성은 옳다, 그르다의 가치 개념이 아니다. 진실에 도달하려는 저널리즘의 본질과 관련된 문제다. 그런데 저널리스트들이 진실에 완벽하게 도달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는 한 사실성도 끊임없이 한계에 직면할 것이다.
뉴저널리즘은 사실성을 어떻게 실천했나?
19세기 후반 퓰리처에 의해 주창된 뉴저널리즘에 이르러 사실성 개념이 비로소 형성되었다. 선정주의라는 비판도 존재하지만 역기능보다는 순기능이 훨씬 컸다. 무엇보다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것이야말로 사실성의 업적이라 생각한다.
뉴저널리즘이 사실성을 확보하는 데 사용한 장치는 무엇이었나?
단순하게는 새로운 기사 스타일과 전문성이었다.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인터뷰와 리포팅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실재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접근,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었다.
사실성을 추구하는 저널리스트에게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
조건이 중요하다거나 어렵다거나 하는 주장은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다. 문제는 사실성 확보를 위한 노력이다. 얼마나 치열한가?
저널리스트가 사실성 확보를 위해 끝까지 지켜야 하는 원칙은 무엇인가?
사실과 의견, 실재와 가치를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유사 저널리즘이 난무하면서 어느새 저널리스트도 혼돈의 늪에 빠져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한국의 저널리스트는 저널리즘에서 사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교육을 받나?
체계적, 전문적, 집단적 교육을 못 받고 있다. 전체적으로 여전히 도제 수준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충환이다. OBS 보도국장과 보도본부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