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최남선 시선
김문주가 엮고 해설한 ≪초판본 최남선 시선≫
계몽과 식민의 혈통
무지한 인민에게 ‘요긴한 지식’, ‘고상한 취미’, ‘강건한 교훈’을 준 것은 육당이다. 몽매한 조선에게 근대와 신민의 영광과 제국의 꿈을 준 것은 일본이다. 준다고 받으면 노예가 된다.
海에게서 少年에게
一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린다, 부슨다, 문허바린다,
泰山갓흔 놉흔뫼, 딥턔갓흔 바위ㅅ돌이나,
요것이무어야, 요게무어야,
나의큰힘, 아나냐, 모르나냐, 호통디하면서,
린다 부슨다, 문허바린다,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二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내게는, 아모것, 두려움업서,
陸上에서, 아모런 힘과權을 부리던者라도,
내압헤와서는 못하고,
아모리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디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압헤는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三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나에게 뎔하디, 아니한者가,
只今디, 업거던, 통긔하고 나서보아라.
秦始皇, 나팔륜, 너의들이냐,
누구누구누구냐 너의亦是 내게는 굽히도다,
나허구 겨르리 잇건오나라.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四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됴고만 山모를 依支하거나,
됴ㅅ쌀갓흔 뎍은섬, 손ㅅ벽만한 을가디고,
고속에 잇서서 영악한톄를,
부리면서 나혼댜 거룩하다하난者,
이리둄, 오나라, 나를보아라.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五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나의 될이는 한아잇도다,
크고 길고, 널으게 뒤덥흔바 뎌푸른하날.
뎌것은 우리와 틀님이업서,
뎍은是非 뎍은쌈 온갓모든 더러운것업도다.
됴위 世上에 됴사람텨럼,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六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뎌世上 뎌사람 모다미우나
그中에서 한아 사랑하난 일이잇스니
膽크고 純情한 少年輩들이,
才弄텨럼, 貴엽게 나의품에 와서안김이로다,
오나라 少年輩 입맛텨듀마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초판본 최남선 시선≫, 김문주 엮음, 8∼11쪽
한국 근대시가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나?
≪소년≫지 창간호에 실렸다. 신체시(新體詩)의 효시가 된 작품으로 신시(新詩)라고도 한다. 일정한 음악적 틀에서 창작된 당대 시가와는 달리 형식적으로 자유롭고 거침없는 시적 에너지를 표출한 작품이다.
당대에 시가가 활발히 창작된 이유는 무엇인가?
지식인들은 급변하는 국내외 정치 환경과 위태로운 민족 현실을 대중에 알리고 싶어 했고, 시가는 이런 시대적 요청에 가장 능동적으로 화답한 문예 장르였다. 1900년을 전후로 근대 저널리즘 발달과 근대식 교육 제도 보급, 기독교 선교 활동 확대와 더불어 창가, 개화 시가, 찬송가가 활발히 창작되었다.
이 시의 주체는 ‘바다’인가?
첫 행을 장식하는 바닷소리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는 최남선의 개화사상을 압축한 것이다. 이 시에서 바다는 육지를 지배하는 대상을 타격하는 개혁 주체이자 새로운 것들이 밀려오는 개혁 통로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소년’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최남선은 소년을 “뎌世上 뎌사람 모다미우나/ 그中에서 한아 사랑하난” 사람이며, “膽크고 純情한” 존재라고 표현했다. ‘소년배’를 바다가 상징하는 새로운 근대 물결을 이끌어 갈 동력으로 본 것이다.
≪소년≫을 창간한 이유도 같은 것인가?
일본 유학으로 서구 근대를 경험하고 귀국해서 1908년에 창간한 잡지다. 창간호에 “학생은 이 잡지로 인하여 아버지와 스승에게 듣지 못하던 신지식을 얻을 것이요, 교사는 이 잡지로 인하여 좋고 적당한 교수 재료를 얻으리라”라고 써 발간 목적을 밝혔다.
3년 만에 폐간된 사유는 무엇인가?
국권 회복과 관련한 기사가 문제되어 몇 차례 압수, 발행 금지 처분을 받는다. 그러다 1911년 5월, 박은식의 <왕양명선생실기> 게재를 빌미로 결국 폐간되었다. 서양 문물과 과학 지식을 소개하고, 계몽주의와 애국 사상을 고취하는 데 힘썼으며 신문학 형성에도 큰 역할을 했다.
이어서 발행한 ≪청춘≫은 어떤 성격의 잡지인가?
1914년에 ≪소년≫의 후신으로 ≪청춘≫을 발행한다. 역시 일제의 탄압으로 1918년 폐간되고 말았다. ≪소년≫과 ≪청춘≫ 발행은 “泰山갓흔 놉흔뫼, 딥턔갓흔 바위ㅅ돌”로 상징되는 견고한 중세주의를 깨기 위해 최남선이 택한 방법이었다.
최남선이 이처럼 출판에 매진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출판 운동은 몽매에 빠진 조국을 계몽하고 중세적 가치에 함몰된 인민을 근대사상으로 교화하기 위한 실천이었다. 잡지 발간은 물론이고 일반 교양서 60여 종과 국내외 대중소설을 발간함으로써 독서 대중에게 ‘요긴한 지식’, ‘고상한 취미’, ‘강건한 교훈’을 주고자 한 것이다. ≪동국통감≫, ≪삼국유사≫, ≪열하일기≫, ≪경세유표≫ 등 고적 편찬을 통해 ‘조선적인 것’에 대한 탐구도 계속했다.
그의 작품에서 심미성을 느끼기 어려운 이유가 계몽성 때문인가?
출판 운동과 마찬가지로 최남선에게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무지한 타자, 즉 민족을 향한 계몽적 실천 행위의 일환이었다. 그에게 문학은 개성을 사유하고 실현하는 장이라기보다 몽매한 인민을 일깨우고 개화하는 계몽의 공간이었다. 스스로 “시인의 천품(天稟)을 갖지 못한 자”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경부철도가>에서 보이는 그의 개화사상의 한계는 무엇인가?
부국강병을 위해 서구 문물 도입과 개화가 꼭 필요하다고 노래하지만 1900년대 조선 현실에서 진행된 근대화가 누구를 위한 것이며 그로 인한 부정적 결과가 무엇인지를 간과했다. 이 노래로 국한한다면 ‘경부철도’ 부설의 의미를 온전히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미독립선언서> 기초를 전후한 그의 행적은 어떠한가?
출판 운동을 통해 민족 계몽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던 최남선은 1919년 최린, 송진우 등과 함께 3·1운동을 모의하고 <기미독립선언서>를 기초했다. 이 때문에 3·1 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투옥되어 1921년 10월까지 2년 8개월간 수감 생활을 했다.
조선학 정립을 주창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출옥한 뒤에 조선인의 손으로 조선학을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역사학과 민속학 연구자로 변모한다. 문명개화와 근대화를 통해 부국강병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이 일제 식민 통치가 본격화하던 1920년대에 이르러 조선 정체성과 전통을 찾는 방향으로 전환한 것이었다. 단군 연구를 지속하고 <백두산근참기> 같은 기행문을 발표한 것도 이 무렵이었는데 학술적으로 조선 정신을 바로 세우려는 작업의 하나였다.
최남선의 조선주의는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에 도착했는가?
민족 구성원들의 삶과 역사를 신령한 정신적 관념에서 재구성하려는 태도는 앞서 그가 강조했던 과학주의, 합리주의 등 근대 가치와는 상반된다. 이후 최남선이 지속적으로 개진한 ‘조선주의’는 처음에는 민족 정체성에 위기를 불러온 일제 식민 체제에 대한 저항적 성격을 띠었지만, 나중에는 일본과 조선을 하나로 묶는 내선일체의 논리적 전초가 된다.
민족주의가 친일논리로 전도되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
단군을 추앙함으로써 강화하고자 한 것은 관념으로서 민족이었다. 여기에서 동질주의가 일제강점기 후반에는 조선과 일본을 하나로 묶는 논리로까지 확대된다. 이후 조선은 ‘전체로서 일본’에 속해 있다는 견해로 전개되고, 일본 대동아공영권의 현실적 어려움을 “대신념 대신앙”으로 극복하자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관념으로서 국수주의, 민족주의’가 어떻게 정반대 입장으로 선회하는가를 여기에서 목도하게 된다.
친일 행보는 어떻게 이어지나?
‘반도사’ 편찬 사업을 위해 조선총독부가 설립한 관변단체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가면서 반민족·친일로 돌아선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문≫에 적극적으로 글을 기고하는 한편 1936년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1941년 일본의 침략 전쟁을 지지하는 ‘흥아보국단’ 준비위원과 상임위원을 역임하면서 학병을 권유하기 위해 강연하거나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지지하는 노랫말을 만들기도 했다.
해방 이후 어떻게 살다 갔나?
1948년 반민족행위자처벌법 발효로 이광수와 함께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곧 보석으로 풀려나고, 이후 반민특위가 지지부진해지면서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일단락되었다. 한국전쟁 시기에 해군전사편찬위원회에서 일했고, 휴전 이후에는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고문을 지냈다. 1955년 뇌일혈로 쓰러져 1957년에 향년 69세로 별세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문주다.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