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론 천줄읽기
이종훈이 뽑아 옮긴 존 밀(John S. Mill)의 <<자유론(On Liberty) 천줄읽기>>
나의 자유를 구속할 자유
나는 나의 육체와 정신의 주인이다. 다른 자가 나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도 다른 자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 이 순간 자유는 책임으로 발전한다.
어떤 사람의 행위에서 사회에 대해 책임져야 할 유일한 것은 다른 사람과 관련된 내용이다. 자기 자신에게만 관련된 것에서 그의 독립성은 당연히 절대적이다. 개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 즉 자신의 육체와 정신의 주인이다.
≪자유론 천줄읽기≫,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이종훈 옮김, 38쪽.
밀은 어떻게 ‘자유의 대표 사상가’가 되었는가?
그는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철학자다. 세 살 때부터 경제학자인 아버지 제임스 밀에게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웠다.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아버지와 토론했다. 독특한 교육 방법이었다. 그가 독창적 사상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 있다.
그의 무엇이 독창적인가?
벤담이 쾌락 자체가 선이며 쾌락의 양을 계산할 수 있다고 주장하자 ‘돼지 철학’이라는 비난이 일어난다. 질과 양의 관계를 간과한 너무 간명한 주장 때문에 벤담은 위기에 몰린다. 이때 밀은 이렇게 말해 그를 구제한다. “만족한 돼지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낫다.” 벤담의 사상에 도덕적 의무감을 부각시켜 보완한 것이다.
쾌락의 관점에서 볼 때 소크라테스와 돼지는 무엇이 다른가?
개인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오직 그 자신뿐이다. 여기까지가 돼지다.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해를 끼친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인식하고 행동해야 한다. 여기부터가 소크라테스다. 개인은 자유를 최대한 확립하는 한편 그에 따른 당연한 자기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밀은 역설한다.
자유에 대한 밀의 자세를 한마디로 설명하면 어떤 문장이 되는가?
사회가 법률 처벌 또는 도덕 강압으로서의 여론을 사용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개인이 자신을 방어할 때뿐이라는 것이다. 이 매우 단순하지만 기본적인 원칙을 주장하려는 것이 이 책을 쓴 목적이라고 <서론>에서 명백히 밝히고 있다.
한 사람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할 때 개인 자유의 제한은 가능한가?
그의 자유를 정당하게 제한해야 한다. 공리주의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즉 사회 구성원 전체의 자유를 증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고려하면 그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한 독재 행위에 대해 그는 뭐라고 말하는가?
야만인을 다스릴 때 이들을 진보시키려 한다면 독재도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편법으로 제시한 것일 뿐이다. 자발적으로 진보해 가는 길에서 초기에 겪게 되는 큰 어려움 때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실질적 여건을 고려한 것이다.
사회 조건에 따라 독재도 유용할 수 있다는 생각인가?
인류가 자유롭고 대등한 토론에 의해 발전할 수 있기 전에, 예를 들면 아크바르(Akbar)나 샤를마뉴(Charlemagne) 같은 사람을 그들의 시대에 발견했다면 무조건 복종하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제가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 조건은 없는 것인가?
인류가 자신의 확신이나 다른 사람의 설득을 통해 스스로 발전할 능력을 획득하면 강제는 허용되지 않는다. 직접적인 형태든 불복종에 대한 처벌과 고통의 형태든, 강제는 행복의 수단으로 더 이상 허용될 수 없다.
정말 예외가 없는 것인가?
있다. 오직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만 강제는 정당할 수 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에 대한 밀의 태도는 무엇인가?
법과 도덕의 영역을 확실하게 구분하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개인의 자율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개인과 사회의 관계는 어떤 수준에서 정립되는가?
쉼없이 서로 엄밀하게 비판하고 따뜻하게 배려해야 한다. 대립물이 아니라 상보 관계다.
개인과 사회는 실제로 항상 충돌하고 대립하는데 뭐가 상보라는 것인가?
밀은 노동계급의 지위 향상과 복리 증진을 주장하지만 지나친 자유방임과 횡포를 경계했다. 부당한 권력과 권위에 대항해 개인의 자유를 옹호했지만 사회의 이익도 함께 고려했다. 통제에 필요한 정당한 기준에 대해 깊이 생각한 흔적이 역력하다.
가장 가치 있는 자유는 무엇에 대한 자유인가?
사상과 토론의 자유다. 이것이야말로 낡고 그릇된 편견에서 벗어나 개인과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초석이다.
자유가 충돌할 때 토론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
개인 경험의 한계를 확장하는 방법이 토론이다.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과감히 수정할 수 있다면 더욱 올바른 판단이 가능하다.
토론에서 소수 의견이 존중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한 사람을 제외한 인류 전체가 동일한 의견을 갖더라도 그 한 사람을 침묵시키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그 한 사람이 권력을 잡아 자신을 제외한 인류 전체를 침묵시키는 것이 정당하지 않은 것과 같은 이유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거짓이라고 단정하고 듣지 않으려는 사람은 자기 의견이 절대로 오류가 없다고 확신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불가능한 가정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자유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1970∼1980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신장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장벽이 남아 있다. 내가 주장하는 자유를 다른 사람도 동일하게 주장할 수 있다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기본 자세가 매우 부족하다. 책임이 따르는 자유와 자기 멋대로의 방임을 혼동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의무는 저버린 채 권리만을 앞세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안타깝다.
이 책은 어떻게 발췌하고 옮겼나?
전체 다섯 장 중에서 제1장 <서론>과 제2장 <사상과 토론의 자유>를 옮겼다. 원전 그대로 두면 이해하기 어렵거나 문맥이 매끄럽지 않은 곳에는 적당한 문구를 넣어 정확하고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새롭게 얻은 것은 무엇인가?
민주 사회의 진정한 자유에 관한 밀 사상의 간명한 압축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종훈이다. 춘천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