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껍전
김창진이 교주한 ≪두껍전≫
두꺼비, 백수의 장로가 되다.
동물 잔치에 상석 다툼이다. 호랑이 자리였지만 초대받지 못한다. 여우가 나서 해박한 상식을 뽐내지만 두꺼비의 깊은 경륜에 빛을 잃는다. 포유류, 힘의 시대는 가고 양서류, 말의 시대가 열렸다.
두꺼비 곁에 엎드렸다가 생각하되, ‘저놈들이 서로 거짓말로 나이 많은 체하니 난들 거짓말 못 하리오’ 하고, 공연히 건넛산을 바라보고 슬피 눈물을 흘리거늘.
여우 꾸짖어 왈,
“저 흉간한 놈은 무슨 설움이 있기에, 남의 경연에 참례(參禮)하여 상상(想像)치 못한 형상(形象)을 뵈느냐?”
두꺼비 답 왈,
“저 건너 고향나무를 보니 자연 비창하여 그리하노라.”
여우 왈,
“고향나무 빈틈으로 네 고조(高祖)할아버지가 나오던 구멍이냐? 어찌 설워하느냐?”
두꺼비 정색 대(對) 왈,
“네 주둥이만 살아 어른을 모르고 말을 함부로 하거니와, 네 귀가 있거든 내 설워하는 바를 들어 보라. 내 소년 때에 저 나무 세 주(株)를 심었더니, 한 주는 맏아들이 별 박는 방망이로 베고, 한 주는 둘째 아들이 황하수 칠 때에 준천부사하여 가랫장부 하려고 베었더니, 그 나무 벤 동티로 두 아들이 다 죽고, 다만 저 나무 한 주와 내 목숨만 살았으니, 내 그때에 죽고만 싶으되 천명(天命)인 고(故)로 이때까지 살아 있다가, 오늘날 저 나무를 다시 보니 자연 비감하도다.”
여우 왈,
“진실로 그러하시면 우리 중에는 나이 제일 높단 말인가?”
두꺼비 답 왈,
“네 아무리 이러한 짐승인들 그중에도 소견이 있을 것이니, 생각하여 보면 네 고고 존장이 넘으니라.”
토끼 이 말을 듣고 꿇어 여쭈되,
“그러하시면 두껍 존장이 상좌에 앉으소서.”
두꺼비 사양(辭讓)하고 왈,
“그렇지 아니하다. 나보다 나이 많은 이 있으면 상좌를 할 것이니, 좌중(座中)에 물어보라.”
한대, 좌객(座客)이 다 가로되,
“우리는 하늘에 별 박고 황하수 친단 말도 듣지 못하였으니, 다시 물을 바 없다.”
하거늘, 그제야 두꺼비 펄쩍 뛰어 상좌하고, 여우는 서편(西便)에 수좌하고 차차좌를 정한 후에.
≪두껍전≫, 작자 미상, 김창진 옮김, 36~39쪽
이 짐승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노루의 잔치에 초대받은 동물들은 서로 상좌를 차지하려 다투었다. 토끼가 나이가 제일 많은 동물을 상좌에 모시자고 제안한다. 동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거짓말로 자신의 나이를 속인다. 두꺼비는 최고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일삼는 무리를 오히려 그 권모술수로 제압해 버렸다. 그리고 최고의 어른으로 인정받는다.
두꺼비를 상대해 상좌를 다툰 여우는 어떤 꾀를 내었나?
이렇게 주장했다.
“소년 시절에 호협하기를 좋아하여 주색청루에 다닐 적에 술이 대취(大醉)하여 오다가, 대신 가시는 길 건넜다 하고 호패를 떼여 이때까지 찾지 못하였거니와, 천지개벽(天地開闢)한 후 처음에 황하수 치던 시절에 나더러 힘세다 하고 가랫장부 되었으니, 내 나이 많지 아니하리오? 나는 이러하거니와 너는 어느 갑자(甲子)에 났느냐?”
천지가 개벽하고 처음 황하수 치던 시절에 살아 있었다고 했으므로 그때 이미 아들이 둘이나 있었다는 두꺼비의 재치에는 한참 못 미치는 거짓말이다.
두꺼비의 여우 제압 작전은 무엇이었나?
여우의 거짓말을 뒤집을 수 있는 지점, 즉 ‘황하수 치던 시절’을 찾아 공략했다. 황하수 치던 시절이라면 중국 황하의 물길이 만들어지던 시절이니 참으로 오래전이다. 그러나 두꺼비는 그 황하수 물길을 다름 아닌 자기 아들들이 파려고 가래를 만들고자 나무를 베다가 동티로 다 죽었다고 했다. 그러니 자기는 적어도 여우보다 아버지뻘이라는 이야기다. 여우가 제일 어른이 될 뻔한 상황을 한순간에 뒤집었다.
두꺼비의 발상법은 어떤 전략에서 비롯된 것인가?
여우가 일반 상식을 이야기했다면 두꺼비는 상황을 분석해 대답했다. 여우에게 피상 지식이 있다면 두꺼비는 심층 지식,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 오랜 경험에서 오는 경륜이 있다. 두꺼비의 곰삭은 지혜가 여우의 설익은 지식을 눌렀다.
발상법만으로 두꺼비가 여우를 이길 수 있었는가?
아니다. 두번째 무기가 있다. 조롱이다. 여우가 하늘나라를 구경한 이야기를 하자 그가 하늘을 찾아왔을 때 자기는 이미 선관과 함께 술을 먹고 취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동물이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내쫓아 버렸는데 그게 여우인가 싶다고 하며 여우를 놀린다.
여우의 반격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나?
두꺼비의 노란 눈, 우둘투둘한 피부, 굽은 등을 지적하며 인신공격을 한다. 그러나 두꺼비는 모든 외모가 자신의 화려한 과거 덕분이라며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상황을 이용한다. 마지막에는 왜 턱 밑이 벌떡벌떡하냐는 질문에 “너희 놈들이 어른을 몰라보고 말을 함부로 하기로 분을 참노라고 자연 그러하도다”라고 답한다.
여우는 연장자 경합에서 패배한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억울해한다. 그래서 두꺼비의 지식을 시험한다. 두꺼비는 산천 풍경과 명승고적의 유래부터 천문지리, 육도삼략, 의약복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영역에 걸친 지식을 뽐낸다.
두꺼비의 지식은 얼마나 방대한가?
한 대목을 엿보면 이렇다.
“천지(天地) 배판한 후 음양이 생겼으니, 하늘은 양이 되고 땅은 음이 되었으니, 음양 생긴 후로 오행(五行)이 되었거니와, 오행으로 만물이 생기고 만물지중에 사람이 가장 귀한지라. 이런 고로 음양오행지기(陰陽五行之氣)로 나서 길흉화복(吉凶禍福)이 오행으로 응(應)하여 변화무궁(變化無窮)한지라. 이런 고로 태극이 양의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고, 사상이 변하여 팔괘를 합하니, 팔팔이 육십사괘 되었으니.
오행은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라. 상생지법은 금생수(金生水) 수생목(水生木)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이요, 상극법은 금극목(金克木) 목극토(木克土) 토극수(土克水) 수극화(水克火) 화극금(火克金)이니, 길흉화복이 상생(相生) 상극(相剋)으로 응하여 오방(五方)을 마련하니 동남서북(東南西北) 중앙(中央)이라.”
두꺼비가 여우에게 천문지리를 가르치는 장면이다. 휘모리장단에 맞춰 판소리를 하듯 끝없이 지식을 열거한다.
≪두껍전≫은 지식을 겨루는 이야기인가?
우리 고소설 중에서 이 작품만큼 사건은 단순한데 말의 분량이 많은 소설은 없다. 두꺼비가 여우에게 자신이 나이가 많음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두꺼비는 다양한 분야에 관해 엄청나게 길고 상세하게 설명을 한다. 이는 가히 백과사전식 말의 향연이라 할 수 있다.
상좌 다툼이 힘이 아니라 말로 이루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타고난 신분이나 폭력은 더 이상 힘이 없다. 이것이 이 작품의 메시지다. 백성들이 이제는 아무리 신분이 높거나 무서운 자라도 무조건 대접하지는 않음을 의미한다. 기존의 억압적인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모색한 것이다. 그 길은 대화와 토론을 통해 다수의 공감을 얻어 내는 것이다. 곧 지혜로운 자가 대접받는 사회를 이루자는 길을 제시한 것이다.
동물의 왕인 호랑이가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호랑이는 노루의 아들을 잡아먹으려 했던 적이 있다. 위협이 되는 인물이다. 그가 잔치에 오면 다른 동물들이 맘 편히 잔치를 즐길 수 없다. 이와 같이 폭력적인 인물은 자연스럽게 집단에서 배제된다. 호랑이가 상징하는 폭군이나 탐관오리 같은 자들 또한 같은 처지가 되리라는 것을 보여 준다.
≪두껍전≫의 등장 동물은 어떤 인간상을 연기하는가?
두꺼비는 생김새가 작고 우스우며 나서는 성격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는 경험 많은 노인, 몰락한 양반 집안의 숨어 사는 인물로 보인다. 그는 지식이 풍부하고 꾀가 많은 사람으로 진정으로 대접받아야 하는 인물이다. 다른 동물들을 인간에 대입하면 잔치를 베푸는 노루는 지역 유지이고, 나이 겨루기를 제안하는 토끼는 힘은 없지만 슬기롭고 영리한 서민이다. 그리고 상대방을 존중할 줄 모르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우는 간사한 사람이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불행한 동물은 누구인가?
등장인물이 동물이어도 독자는 인간이다. 동물들이 사건의 주체로 나와도 인간의 행태를 꼬집기 위함이다. 잔치에 초대받지도 못한 호랑이,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남을 비난하다 망신만 당하는 여우에게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울 수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金昌辰이다. 초당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