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자 동화선집
이성자가 짓고 윤삼현이 해설한 ≪이성자 동화선집≫
할머니는 보름달이다
사라진 듯하지만 손톱만 하게 다시 살아나고 잠시 잊은 새에 점점 더 부풀어 올라 어느 날 둥근 달이 된다. 이제 됐다 싶으면 조금씩 작아져 어느 날 검은 하늘만 남는다. 할머니는 그렇게 왔다 갔다 왔다.
며칠째 비가 내리고 있었어.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얼른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지. 누가 달사탕을 따 갈 것 같아, 자꾸 불안했거든. 나중에는 하늘을 원망하며 발을 동동거렸어. 드디어 비가 그쳤어.
할머니의 등에 업혀 다시 질마재에 올라왔지. 그러나 달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어. 나는 할머니의 등을 두드리며 며칠 동안 참았던 울음보를 다시 터뜨리고 말았어.
“할머니, 달사탕 어딨어. 내 꺼 달사타-앙!”
“어쩔거나, 누가 달사탕을 따 가 버렸네.”
집에 돌아온 나는 그날 밤 내내 칭얼칭얼 보채며 할머니를 졸라 댔어. 할머니는 나를 꼭 껴안고 달래기 시작했어. 내 귀에 대고 도란도란 재미난 이야기도 들려주었지.
벌써부터 졸음이 왔지만 할머니의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어.
“소은아, 달사탕은 기다려야 딸 수 있는 거야. 처음엔 손톱만 하다가 점점 커져서 보름달이 되지. 그러니 부지런히 밥 먹고 키가 쑥쑥 자라야 딸 수 있어. 다 때가 되어야만 해. 그러니 꾹 참고 기다리자.”
≪이성자 동화선집≫, <별사탕 달사탕>, 이성자 지음, 윤삼현 해설, 59쪽
소은이에게 달사탕이란 무엇인가?
동생이 태어난 뒤 엄마의 사랑을 송두리째 빼앗겼다고 느낀 소은이는 동생을 꼬집고 괴롭힌다. 결국 엄마 아빠는 딸을 시골 할머니에게 맡기고 소은이는 밤낮 운다. 할머니는 별을 따다 둔 거라며 별사탕을 주어 어른다. 별사탕의 효력이 떨어질 무렵 달사탕을 따러 가자며 달랜다. 달사탕은 날마다 보채는 소은이가 엄마 아빠를 잠시 잊는 순간이 되기도 하고, 할머니에게 억지를 쓰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보름달을 기다리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속내는 무엇인가?
윤삼현은 “먼 훗날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보름달을 통해 할머니와 영속적으로 만날 수 있다는 암시”라고 본다. 그렇다. 끝없이 반복되는 달의 변신은 소은이를 끝없는 유영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 작품에서 달은 무엇을 하는가?
“보름달은 할머니의 가슴 그 자체”라고 간파한 평론가의 안목을 인정한다. 영원성, 회귀성, 불멸성을 상징하고 모성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당신의 주제를 ‘모성성과 포용의 상상력’으로 정의한 윤삼현의 주장에 동의하는가?
<별사탕 달사탕>을 포함한 작품 분석에서 그렇게 말한 것을 보았다. 실제 그러하다. “주인공이 겪는 내적 갈등과 아픔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등장인물이 자아를 확장하고 서로 화해하는 결말 구조를 보인다.”고 했는데 동의한다. “작가 정신이 모성을 바탕에 깔고 넉넉한 포용의 정신을 구축”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뜻을 함께한다.
가족 이야기를 쓰는 이유가 무엇인가?
동화를 쓰면서 가족 없는 사람들에게 가족을 만들어 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동화는 어린이를 키운다. 가족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인물과 사건을 통해 아이들은 가치관을 정립하고 더 나아가 삶의 방향까지 찾아갈 수 있다. 가족을 주제로 한 동화를 읽으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
가족 이야기는 어디서 찾아내는가?
어린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 쉬는 날이면 평소 알고 지내던 어린이를 작업실에 초대하고 초등학교 등나무 아래 앉아 재잘대는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엿듣기도 한다. 나와 속마음을 트고 지내는 어린이는 눈물 그렁그렁한 채 자신의 고민과 고통을 이야기하곤 한다. 더러는 부모님과의 불편한 일도 숨기지 않고 털어놓는다.
작품을 관통하는 모성성은 당신의 실제 가족사와 연관되나?
시어머님은 하찮아 보이는 작은 것들에도 애정을 쏟고 배려했다. 가족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부처님 같은 분이었다. 매사 긍정적인 시어머님의 모습은 내 삶과 문학의 바탕이 되었다. 친정어머니는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견디는 인내와 도전을 물려주셨다. 두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오늘의 나를 키워 낸 자양분이다.
어머니는 당신을 어떻게 키워냈는가?
아버지가 병환으로 젊은 나이에 누워 계셨다. 할아버지가 아버지 역할을 하셨다. 상당한 부농이었지만 여자가 교육받는 걸 반대하는 고루한 분이셨다. 어머니는 나를 고등학교에 진학시켰다. 마을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여자는 나 혼자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남편 잡아먹은 며느리라고 어머니를 구박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 공부를 끝까지 뒷바라지했다.
마흔이 넘어 뒤늦게 등단한 연유가 무엇인가?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던 막내 시동생이 나이 마흔넷에 위암으로 가족을 떠났다. 병원에서 걸어 나오면서 평생 욕심 부리며 살아 봤자 별거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 허무해지자 혈압이 70/40까지 내려가는 상황이 반복됐다. 응급실에 실려 갔는데 그때 나는 나를 흔들어 깨우는 가족들에게 뜻밖에도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 문학이 바로 내 운명의 끈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글쓰기와 가르치기를 함께하는데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
등단 이후 10년 동안 고속도로 달리는 승용차처럼 쉬지 않고 문학을 달렸다. 석박사 마치고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겸임 교수가 되었다. 2005년 이후 신춘문예와 문학상에 당선한 제자가 40여 명이다. 모두 도반이다. 우리 집 막내는 학생들 가르치는 일보다 엄마 작품 쓰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라고 불만을 터트린다. 하나만 택하라면 가르치는 일을 택하겠다.
앞으로 당신의 동화는 어디로 갈 듯한가?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나는 한 그루 나무를 심고 가꾸듯 조심스럽게 동화를 써 왔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어린이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들의 독립된 인간성을 인정해 주는 가슴 따뜻한 동화를 쓰고 싶다.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 더 많은 도반들과 열심히. 더 욕심을 부려 본다면 고향을 배경으로 한 장편 동화를 한 편 쓰고 싶다. 몇 년 전부터 자료 조사는 하고 있지만 언제쯤 작업이 끝나서 세상에 얼굴을 내밀게 될지는 모르겠다. 나도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중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성자다. 시인이며 동화작가다. 광주교육대학교와 광주교육대학교 대학원에서 강의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