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매의 강남 산수 유람시
최일의·왕잉즈(王英志)가 옮긴 ≪원매의 강남 산수 유람시(袁枚江南山水遊覽詩)≫
책 만 권 읽고 길 만 리 걷는다
많이 읽으면 신중하지만 떨쳐나서지 않으면 깨달음은 없다. 67세에 시작해 82세에 끝난 원매의 강남 유람기는 18세기 아시아 지식인의 존재론이다. 인간이 자연에 실려 싱싱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강을 건너는데 거센 바람 불어와
성난 물결이 산처럼 솟구치는데,
외로운 나룻배에 나는 홀로서 간다.
내 몸이 용의 등 위에 타고 있는 건 아닐까?
돛이 솟구치는 물보라와 나란하다.
닻줄을 맬 곳조차 없는데,
선창 밖으로 악어의 울음소리 들려온다.
금산과 초산은 나그네가 오는 줄을 아는 것인지,
성 밖으로 나와 멀리서 나를 맞이한다.
渡江大風
水怒如山立,
孤篷我獨行.
身疑龍背坐,
帆與浪花平.
纜繫地無所,
鼉鳴窓有聲.
金焦知客到,
出郭遠相迎.
≪원매의 강남 산수 유람시≫, 최일의·왕잉즈 옮김, 7∼8쪽
산수 유람시라면 여행 시집인가?
그렇다. 원매가 67세부터 82세에 세상을 뜰 때까지 다니며 쓴 시를 모은 것이다. 한창 유행했던 <꽃보다 할배>의 원조 시집인 셈이다.
왜 떠났나?
독만권서(讀萬卷書), 행만리로(行萬里路)다. 널리 공부하는 것 외에도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해 견문을 넓히는 것이 문학의 상상력을 발휘하고 창작 구상을 민첩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독만권서, 행만리로가 말이 쉽지 행하는 사람은 드물다. 왜 원매인가?
특유의 자유분방한 기질, 아름다움에 대한 강렬한 욕구, 새로운 경물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겠는가?
원매가 누구인가?
청나라 시인이자 시론가다. 일찍부터 벼슬에 환멸을 느꼈다. 남경(南京)에 수원(隨園)이란 주택과 정원을 가꾼 뒤에 그곳에서 살았다. 전업 작가의 길을 걸었다.
어디를 다녔나?
절강성을 시작으로 안휘성, 강서성, 복건성, 더 멀리 광동성, 광서장족자치구까지 두루 다녔다.
그 먼 곳을 어떻게 다녔나?
배, 뗏목, 마차를 탔고 광주리 모양의 산가마도 탔다. 등에 업혀 가기도 했다. 그래도 안 될 땐 징 박은 나막신을 신고 지팡이를 짚으며 산에 올랐다.
어떤 마음이 그를 움직였는가?
“성난 물결이 산처럼 솟구치는데, 외로운 나룻배에 나는 홀로서 간다(水怒如山立, 孤篷我獨行)”는 강인한 용기, 그리고 “목숨을 내던져 산 오르는 일과 맞바꾸려 했으니, 위험을 만났어도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拼將命換山, 遇險那肯止!)”를 외치는 굳센 의지다.
여행길 에피소드 딱 하나만 꼽는다면?
명승지로 유명한 황산의 문수원에 오를 때의 일이다. 길이 너무 험난해 ‘해마(海馬)’에게 업혀 가야 했다. 해마는 유람객을 업어 나르는 이 고장 사람들의 별명인데, 사람을 업을 때 흔들리지 않도록 베로 둘둘 감는다. 원매는 “칠십 노인이 다시 강보에 싸인 갓난아이가 될 줄은 생각도 못했도다!”라며 헛웃음을 지었다.
원매는 어떤 시를 썼나?
성령설(性靈說)에 따라 통속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구사했다. 창작 대상이 되는 사물의 본질을 파악한 뒤 거기에 인간의 개성과 감정을 부여함으로써 생동적이고 활기차며 때로는 인간적인 익살스러움과 흥취가 넘친다.
성령설이란 무엇인가?
성령이란 성정(性情)과 영기(靈機)를 말한다. 즉, 시에 진실한 감정을 담고 영감과 상상력을 운용해 시 속에 생동적인 맛과 재미있는 흥취가 담기도록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매의 성령설이 청대의 시를 해방했다는 주장은 옳은가?
당시에는 맑고 탈속적인 심경만을 추구한 신운설(神韻說)과 수식과 격률에만 치중한 격조설(格調說)이 유행했다. 특히 격조설은 봉건 예교 규범과 전통적인 시적 규율에 따라 온유돈후한 내용을 창작할 것을 주장했다. 원매의 성령설은 이런 전통 규범에 구속되어 있던 청대의 시가를 해방했다.
그의 시는 당대에 성공했는가?
그와 함께 건륭삼대가(乾隆三大家)로 불리는 장사전(蔣士銓)·조익(趙翼)을 포함해 장문도(張問陶)·송상(宋湘)·황경인(黃景仁)·서위(舒位) 등이 그의 시와 시론에 영향을 받아 성령시파(性靈詩派)를 이뤘다. 청나라의 한정수(韓廷秀)는 “수원의 제자가 천하의 반으로 붓을 드는 사람마다 진실한 감정을 말한다”라고 할 정도였다.
당시에 여성 제자를 칠팔십 명이나 두었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수적인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매우 획기적인 일이었다. 1796년, 여제자 28명의 작품을 수록한 ≪수원여제자시선(隨園女弟子詩選)≫을 편찬해 여성 창작을 고무하기도 했다.
현대의 평가는 어떤가?
주쯔칭(朱自淸)은 원매를 “시단의 혁명가”라 했다. 첸중수(錢鍾書)는 당시 시단의 잘못을 바로잡는 충언(忠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후세 사람들이 잘못을 고치는 데도 충분한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당신은 왜 유람시를 번역했나?
원매의 유람시는 자연 산수를 단순 묘사하지 않는다. 인간 생명의 영성(靈性), 인간의 개성과 감정을 자연 산수에 부여해 생명의 활력을 띠게 한다. 나도 낯선 풍광과 조우할 수 있는 여행을 무척 좋아해서 유람벽이 있던 원매의 시에 매료됐다.
번역은 어떻게 했나?
중국의 대학자이자 원매 시학 전문가인 쑤저우대학 왕잉즈(王英志) 교수와 함께 작업했다. 그가 원매의 시 가운데 강남 산수 유람시 48수를 선별한 뒤 현대중국어로 번역하면 나는 우리의 일반적인 한시 번역 감각에 따라 한국어로 옮겼다. 우리말과 현대중국어 간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대조하며 읽는 것도 시 읽는 재미를 더해 줄 것이다.
번역 원칙은 무엇인가?
가능한 한 축자적으로 옮기려 노력했다. 그래야 원문과 비교해 가며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유람시이기에 여정과 그 역동적인 과정을 머릿속에 생생히 떠올릴 수 있도록 쉬운 말로 세세하게 풀어 썼다.
당신은 누군가?
최일의다. 강릉원주대학교 중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