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홍 동화선집
김문홍이 짓고 김영균이 해설한 ≪김문홍 동화선집≫
동화의 상상력과 마음속 갈등
그의 작품에 갈등이 약하고 인물도 비슷하다는 비판에 대해 작가는 대답한다. 마음속 갈등과 동화의 상상력은 감동의 파문을 일으키고 독자는 밤새워 책장을 넘긴다.
별 무리 저편 만공 스님의 목소리도 전에 없이 아주 맥없는 울림이었다. 병을 앓고 있는 사람처럼 아주 힘이 없어 보였다.
소년은 넋을 잃은 채 한동안 그 자리에 붙어 서 있었다. 왠지 모르게 가슴속이 쿵쿵 소리를 내며 뛰었다. 별 무리는 산으로 올라갔다. 별 무리는 한데 얼려 불기둥을 이루며 하늘 높이까지 솟구쳐 타올랐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 불기둥이 까만 물거품이 되어 스러져 버렸다.
−영길아, 모든 게 물거품과 같이 금방 스러지는 헛것이야, 헛것! 어서 부처님 곁으로 돌아오너라.
까만 잿더미 저편에서 다시 만공 스님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그 소리는 기어 들어가는 듯한 아주 힘없는 울림이었다.
≪김문홍 동화선집≫, <부처님 곁으로 간 소년>, 김문홍 지음, 김영균 해설, 58~59쪽
어떤 장면인가?
영길이는 친구와 고아원에서 뛰쳐나온다. 정처 없이 헤매다 만공을 만났다. 영길이가 바깥세상에 대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절을 뛰쳐나올 때마다 만공의 목소리가 그를 인도한다.
목소리가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가?
“자아 성취를 추구하는 내면의 울림”이라고 평론가 김영균이 말했다. 같은 생각이다.
만공이 죽고 나면 영길이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스님이 입적하자 시신 곁에서 열반에 든다.
함세덕의 희곡 <동승>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작품 모두 세상에 대한 애정과 미련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대상이 다르다. 평론가는 <동승>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이 작품은 친구와 ‘영이’에 대한 그리움을 그린다고 봤다.
시와 시인이 당신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뭔가?
문학에서 삶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글쓰기는 유한 존재인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수단이다. 이런 시도를 ‘시인 예찬 모티프’라고도 한다.
당신 작품 가운데 시인 예찬 모티프는 무엇인가?
<저, 여기 있어요!>, <제발 제 이름 좀 불러 주세요, 네?>, <지상의 방 한 칸>, <미래 특공대>다.
시는 작품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지상의 방 한 칸>에서 ‘누나’는 시를 낭송하며 한겨울에 세 평짜리 단칸방을 데운다. <미래 특공대>에서는 비인간화하는 미래 사회 ‘테크노피아시티’의 마지막 보루가 ‘시인의 마을’이다. 시인들은 이 마을을 거점으로 독재자를 물리치고 시인을 대통령으로 옹립하는 데 성공한다.
작품에 눈은 왜 그렇게 자주 내리는가?
눈은 세상을 정화하고 갈등을 완화한다. 역경을 극복하는 매개도 된다.
작품에서 눈이 하는 일을 보여 줄 수 있는가?
<시오 리 눈길을 걸어>에서 ‘소년’은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아버지와 함께 눈길을 밟아 집을 찾는다. 눈은 부자간 정을 돋운다. <아버지와 눈길>의 아버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계엄군에게 맞아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그러다 어머니의 임종을 보기 위해 눈길을 거쳐 집을 찾아간다. 아들과 함께 눈사람을 만들다가 문득 제정신을 차린다. 비로소 세상과 화해한다.
‘무갈등의 동화’라는 지적이 있다. 맞는가?
인물의 유형화와 약한 갈등에 대한 지적이 있다. 나는 동화적 상상력과 인물의 내적 갈등을 본다.
‘무갈등’이 확인되는 작품은 어떤 것인가?
<저, 여기 있어요!>를 들 수 있다. 숲 속 음악회에 참석하려면 나비넥타이가 있어야 한다. 너구리는 음악회에 가고 싶지만 나비넥타이가 없어 실의에 빠진다. 이를 해결해 주는 것이 착한 마음씨를 가진 노랑나비다.
인간의 선의지를 믿는가?
동화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어린이들에게 그늘을 드리우려 하지 않는다.
아동문학은 성인문학과 무엇이 다른가?
작가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동문학은 작품과 작가가 일치해야 한다고 믿는다.
작품은 잘 쓰는데 인간성이 모자라면 작가를 하면 안 되나?
안 하는 것이 낫지 않겠나? 아동문학에 종사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동화로 필화 사건을 겪었나?
부산아동문학가협회의 연간집 ≪하얀 뱃고동≫에 동화 <쫓겨난 여우>를 발표했다. 그 동화가 당시 정권을 비판했다고 하는 투서가 들어갔다. 수업 중 불려가 부산시 경찰국에서 조사를 받았다. 파면 위기까지 몰렸지만, 당시 부산시 교육청 교육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었던 시인 고 김태홍 선생님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쫓겨난 여우>는 뭐라고 정권을 비판했나?
박정희 정권 말기에 투옥된 김지하 시인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그 어떤 권력이라도 시인과 작가의 육신은 구속할 수 있어도 영혼은 구속할 수 없다는 주제를 담았다.
요즘 동화 사정은 어떤가?
자꾸 왜소해지는 느낌이다. 얼마 전까지 장편동화의 분량은 200자 원고지 500장 정도였다. 요즘은 300장 정도로 줄었다. 소재와 주제 역시 요즈음 아이들의 기호와 취향을 추종한다. 재미만 좇는 상업 경향이 강하다.
앞으로 어떤 동화를 쓸 것인가?
마음에 감동의 파문이 일고 설레게 하는 작품을 썼으면 좋겠다. 독자가 한 명이라도 좋다. 내 작품을 읽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눈 밝은 어린이 독자 한 사람이면 정말 족하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문홍이다. 동화작가, 극작가, 연극 평론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