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간
제이 데이비드 볼터(Jay David Bolter)가 쓰고 김익현이 옮긴 <<글쓰기 공간: 컴퓨터와 하이퍼텍스트 그리고 인쇄의 재매개(Writing Space: Computers, Hypertext, and the Remediation of Print)>>
종이, 컴퓨터 또는 독자의 뇌
글자가 전달하는 것은 말이 아니다. 뜻이다. 뜻은 뇌와 뇌의 대화다. 글자에 포박된 말의 탈출, 전자에 올라 탄 글의 궤도 이탈, 네트워크를 통한 퀀텀 점프, 그리고 이제 글쓰기의 사차원이 시작된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독자들을 저자 그 자체로 바꾸어 버림으로써 저자와 독자 간의 거리를 줄이는 것처럼 보인다. 영구성과 가변성 간의 긴장, 그리고 저자를 과장하는 경향과 독자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경향 간의 긴장은 이미 현재 우리의 글쓰기 경제의 일부가 되었다.
‘서론: 후기 인쇄 시대의 글쓰기’, <<글쓰기 공간>>, 5~6쪽.
글쓰기 공간이란 무엇인가?
인류가 글을 쓴 곳이다. 파피루스, 두루마리, 코덱스, 필사본, 책, 컴퓨터다.
글을 쓰는 지면인가?
아니다. 그것은 통념일 뿐이다.
뭐가 통념인가?
글쓰기를 자신의 생각이나 사상을 쓰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 그것이 통념이다. 통념은 글쓰기를 개인 행위라 이해한다.
진실은 무엇인가?
글쓰기는 고도의 개인 행위지만 독자와 읽기라는 상대 개념과 상호작용할 때 실재하는 문화 관습이다. 상대 개념을 고려하지 못하면 글쓰기는 실재하지 못한다.
진실을 정의할 수 있는가?
글쓰기는 저자와 독자가 상호작용하는 시각의 물질 광장이다. 글쓰기를 지면으로 생각하면 이런 정의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공간 개념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 책, <<글쓰기 공간>>은 무엇을 말하는가?
두루마리에서 필사본, 인쇄된 책을 거쳐 컴퓨터에 이르는 글쓰기 공간의 역사를 설명한다.
요점은 무엇인가?
컴퓨터와 인터넷이 필사나 인쇄 같은 전통 글쓰기 테크놀로지와 무엇이 같고 다른지, 글쓰기 공간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분석한다.
글쓰기에서 테크놀로지와 공간은 어떤 관계인가?
글쓰기 테크놀로지가 글쓰기 공간을 규정한다. 공간은 테크놀로지에 의해 진화한다.
인쇄 테크놀로지는 무엇을 만들었나?
선형적 쓰기와 읽기를 낳았다. 순차적으로 인쇄된 페이지는 텍스트 선형성을 가장 잘 구현한다. 독자의 선형 독해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자 테크놀로지는 무엇을 만들었나?
텍스트와 그래픽이라는 인쇄 책의 특징을 가져다가 하이퍼링크를 첨가했다. 인쇄 책을 진화시켰다.
하이퍼링크가 한 일이 뭔가?
글쓰기 공간에 입체성을 부여했다. 하이퍼링크는 인쇄된 책의 물리적 한계, 곧 본문과 주석의 차를 단숨에 채운다. 글쓰기의 입체성이 훨씬 더 높아진다.
하이퍼링크 글쓰기의 전범은 무엇인가?
마이클 조이스의 <오후 이야기>다. 주인공 피터가 우연히 교통사고 현장을 지나친 후 그 부상자가 그의 전 부인 로리와 아들 앤드류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들의 행방을 찾는 과정을 다룬다.
행방을 찾았는가?
정해진 결말이 없다. 텍스트 500여 개와 링크 900여 개로 구성된 하이퍼텍스트 소설이다. 독자는 관심 있는 링크를 선택하고, 이에 따라 스토리가 달라진다.
<오후 이야기>가 왜 하이퍼텍스트의 전범인가?
저자와 독자의 위상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쓰는 사람이고 독자는 읽는 사람이었다. 이 작품 이후 소설에서 독자는 저자와 대등한 위치까지 올라선다.
저자와 독자가 사라지는 것인가?
‘아직’이다. <<글쓰기 공간>>은 2001년에 발표되었다. 오늘날 다시 쓴다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글쓰기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자와 독자 간 자리바꿈을 좀 더 심층적으로 탐구해야 할 것이다.
전자 테크놀로지가 책을 재매개한 것인가?
그렇다. 볼터는 이전 매체의 특징을 빌려 오면서 새롭게 개조하는 것을 재매개라 정의한다. 인쇄 매체의 평면성과 선형성을 새로운 테크놀로지로 변조한 전자 글쓰기는 책의 재매개다.
앞으로 글쓰기 공간은 어디로 갈 것인가?
새로 등장하는 글쓰기 테크놀로지와 가장 잘 어울리는 글쓰기 형식이 특정 글쓰기 공간에서 구현될 것이다. 글쓰기 테크놀로지와 글쓰기 공간이 상호작용하며 진화하는 게 미디어 재매개의 궤적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익현이다. 아이뉴스24 글로벌리서치센터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