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의 재발견
요시미 슌야(吉見俊哉)와 와카바야시 미키오(若林幹夫)와 미즈코시 신(水越伸)이 쓰고 오석철과 황조희가 옮긴 <<전화의 재발견(メディアとしての電話)>>
전화는 침투한다
현관에서 거실로, 방에서 주머니로 전화는 침투한다. 담장을 넘어 오가는 사랑은 셰익스피어의 전유물이 아니다. 견고한 전통의 벽을 넘어 전화는 끊임없이 개인과 개인의 마음을 연결한다.
우리가 밝히고자 한 것은 전화라는 미디어에 축적되고 구성된 관계성 일체의 형상이며, 또한 그러한 일체의 형상을 구성해 온 사회의 모습이다. 이 책의 관점에서 본다면 ‘미디어로서의 전화’란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다.
‘서론: 미디어로서의 전화’, <<전화의 재발견>>, 8쪽.
우리는 전화를 뭐라고 생각하는가?
오로지 용건 전달 도구라고 생각한다. 미디어를 통념의 자명성으로 이해하는 태도다.
통념이 문제인가?
전화의 사회문화 의미를 놓친다. 전화는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테크놀로지라는 중요한 사실을 잊는다.
통념을 거부하는 전범은 무엇인가?
초창기 전화 발명의 역사다. 당시 전화는 전신, 그리고 라디오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다양한 가능성과 비전을 자랑하는 미디어였다.
전화의 초창기 가능성과 비전은 무엇이었나?
오페라와 연극을 다른 장소에서 청취할 수 있는 시어터폰과 일렉트로폰이 있었다. 이것은 엔터테인먼트 미디어다. 텔레폰 힐몬드는 전화회사가 가정에 뉴스와 음악을 제공하는 서비스 시스템이었다. 라디오의 원형이다.
초창기 전화는 미디어에 대한 우리 인식에 어떤 전환을 요구하는가 ?
미디어를 단순 도구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전화는 다양한 상황에서 여러 차원으로 분화 발전해 왔다.
이 책, <<전화의 재발견>>은 무엇을 말하나?
우리 신체의 일부분이 된 전화를 사회문화 관점에서 설명한다. 미디어로서 전화의 메시지를 분석한다. 미디어가 인간의 다양한 욕망과 상호작용하며 발전해 왔음을 보여 준다.
전화가 미디어라면 그것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미디어가 메시지다’라는 매클루언의 말을 빌리면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거대하고 다극적인 회선 시스템으로 무수한 점들을 양극적으로 연결하여 원격지에 위치하는 두 인간 사이에 음성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하는 것, 이것이 전화의 메시지다.
전화의 메시지 효과는 어디서 확인할 수 있는가?
가정이다. 전화는 기존 가족관계를 해체하고 재구성했다.
전화가 어떻게 가족을 해체했단 말인가?
전화 위치 변화를 기억하라. 처음 현관 근처에 놓였다. 그 후 거실을 거쳐 개인실로 이동했다. 외부 사회라는 이질성이 가족 공동 장소를 거치지 않고 바로 각 개인에게 침투해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외부성이 가족 공동성을 해체했는가?
부모세대는 전화를 용건 전달 도구로 인식한 반면, 자식세대는 장시간 잡담 전화에 익숙해졌다. 부모세대는 무용한 잡담 전화를 이해할 수 없었고, 자식세대는 부모세대의 비판을 세대 격차로 이해했다.
자식세대가 느낀 세대 격차는 어떤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가?
전화 커뮤니케이션이 제공한 새로운 감각 경험과 관계 방식이다. 대면 접촉에서 서로의 얼굴이나 모습, 육체는 자신과 타자의 접촉을 가능케 하지만 동시에 장벽이 되기도 한다. 전화 통화는 장벽없이 직접 두 인간을 연결한다. 두 신체를 완전히 융합하는 접촉인 셈이다.
잡담 전화는 전화의 어떤 속성이 발현한 결과인가?
자기충족성(consummatory)이다. 용건 전달뿐만 아니라 통화 자체도 목적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자기충족성은 일반 현상인가?
전화기를 귓가에 대고 누군가와 속삭이듯 대화해 본 경험이 없는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장소에 있으면서도 대면 커뮤니케이션보다 훨씬 가깝고 친밀한 접촉을 만드는 것이 전화다. 자기충족성이 여기서 발생된다.
전화 접촉이 대면 접촉을 대체할 수 있나?
일본 엔티티가 1986년 개시한 전화 서비스, 전언다이얼의 사례를 보라. 원래는 약속이나 용건 전달을 목적으로 미리 정해 둔 코드번호로 연락할 수 있는 음성 축적 서비스였다. 하지만 1988년 이후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성 만남의 장으로 활용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실제로 만나려는 의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젊은이들이 이 서비스를 이용했다는 사실이다.
전언다이얼은 사이버 리얼리티의 가능성을 증언하는 것인가?
현실의 리얼리티와 다른 전자 미디어 공간의 리얼리티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이용자들은 상대의 시선을 결여한 채 목소리만으로 자기를 연기하고 이성과의 관계를 만들어 가며 새로운 리얼리티를 형성한다. 그들에게는 전자 미디어의 리얼리티가 실제 만남보다 더 리얼할 수도 있다.
누구에게 이 책을 권하나?
기술과 미디어 결정론자들에게 권한다.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인식 전환은 어디서 시작되나?
미디어와 인간 욕망, 사회와의 역학관계에 대한 이해다. 기술결정론이나 유토피아주의로 빠지기 쉬운 정보화 사회론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오석철이다. 도쿄대학교 대학원 인문사회계연구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대중문화 잡지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