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전
신해진이 옮긴 ≪용문전(龍門傳)≫
명나라는 밝은 나라였을까?
명나라와 호나라가 싸운다. 다 중국 얘기다. 조선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하늘의 아들에게 밝은 데로 나가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둠의 자식이었는가?
슬프다! 그대가 세상에 나와 나라를 섬길진대, 명나라를 섬겨 공을 세워서 나라를 지키고 천하를 평정해 어진 이름을 역사에 남겨 길이 전함은 장부가 할 바요, 충신이 지닌 본디의 마음이라. 그러므로 주(周)나라의 무왕은 걸주를 치고, 한신은 초(楚)나라 항우를 버리고 한(漢)나라 유방에게로 갔으니, 이는 다름이 아니라 어두운 데를 버리고 밝은 데로 감이로다. 또한 제갈량이 유현덕을 섬김도 같은 이치일러라. 그대는 10세 되기도 전에 부모를 떠나 이 늙은이를 좇아 8년을 수업해 재주를 배우고 산문을 떠나 세상에 나갔을진대, 일찍 성군(聖君)을 만나지 못했으면 차라리 몸을 산림에 감추고 하늘이 주는 적당한 때를 기다림이 옳거늘, 그대는 그 때를 기다릴 줄 모르고 반적(叛賊)을 도와 수많은 백성을 살해하니, 빙옥 같은 뜻을 지녔지만 도리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남들이 침 뱉을 이름을 세상에 전하게 되어 앙갚음을 입을까 걱정이로다. 비유컨대, 백옥(白玉)이 흙먼지에 묻힘과 같고, 구슬이 불에 들어간 것과 같아라.
≪용문전≫, 작자 미상, 신해진 옮김, 77~78쪽
편지인가?
스승 연화 선생이 용문에게 보낸 편지다. 잘못된 길을 갔으니 바른 길로 돌아오라 말한다.
잘못된 길이란 어디를 향한 길인가?
명나라와 호나라의 싸움에서 용문은 호나라 편에 선다. 호나라는 ‘반적’이다. 제자인 용문에게 성군을 택하라고 설득한다.
주인공 용문이 누구인가?
용훈 부부가 하늘에 빌어 태어난 자식이다. ‘천상의 신장(神將)이 득죄해 옥황상제로부터 세상에 내쳐져서 찾아왔다’는 태몽을 꾸고 용의 기상을 타고난 기골 장대한 아이를 낳았다.
용문은 어떻게 영웅이 되나?
출장입상의 포부를 펼치기 위해 부모를 떠나 연화 선생에게 간다. 천문지리와 육도삼략을 배우고 적토마와 용천검을 얻는다. 천하를 평정하려 집을 나선다.
소설이 설정한 당시 정세는 어떠한가?
명나라 때 소대성은 호나라를 평정하고 노나라 제후가 된다. 호왕은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다. 이때 용문이 호왕 편에서 소대성을 공격한다.
용문이 연화 선생의 편지를 받은 것이 바로 이때였나?
그렇다. 소대성과 함께 명나라 편에서 싸워야 함을 깨닫고 대명국 대사마 대장군이 되어 호나라를 무찌른다.
소대성은 누구인가?
용문이 영웅이 될 수 있는 모험을 제공한 자다. 그의 이야기 또한 ≪소대성전≫이란 작품으로 찾아볼 수 있다.
≪소대성전≫은 소대성의 이야기인가?
그는 동해 용자의 적강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비범했으나 부모를 잃고 고난을 겪는다. 그러나 명나라를 침공한 호나라를 무찔러 천자를 구한 공으로 노나라 왕이 된다. 이 책의 말미에 뒷이야기는 하권 ≪용문전≫을 사 보라고 적혀 있다.
그렇다면 ≪용문전≫은 ≪소대성전≫의 후편인가?
≪용문전≫은 ≪소대성전≫의 흥행과 후광에 기대어 지은 작품이다. 소대성이 호왕을 물리치고 명나라를 구해 노나라 왕이 되는 ≪소대성전≫의 결말이 호왕의 2세대가 소대성을 공격하는 ≪용문전≫의 내용으로 이어진다.
2편에서 끝인가?
≪용문전≫은 호나라 3세대들과 소대성 2세대들 간의 대립을 예고하며 끝난다. 새로운 연작의 예고였던 셈이다. 그러나 3편은 없었다.
용문이 충신이라면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는 것 아닌가?
불사이군(不事二君)에서 벗어나 택군지현(擇君之賢)한 것이다. 절대 가치를 버리고 상대 가치를 선택했다.
이것도 스승의 가르침인가?
연화 선생은 술법을 다 배우고 떠나는 용문에게 말했다. “빨리 세상으로 돌아가 아름다운 재주를 베풀고, 어진 성군을 만나 성대한 이름을 천추에 전하도록 해라.”
이것이 무슨 뜻인가?
배운 재주를 의미 있게 쓸 수 있는 임금을 찾으라는 말이다.
임금이 신하를 고르는가, 신하가 임금을 고르는가?
물론 임금이 신하를 고른다. 그러나 임금이 부족할 때 신하는 다른 방향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사고방식이다.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인 생각이었다.
호나라 사람인 용문이 명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이 바른 길인가?
사대주의다. 철저하게 명나라를 구심점으로 세계 질서를 유지하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호나라는 뭔가?
용문이 호나라 편이었을 때 호나라는 ‘선과 악이 혼합된 세력’이었다. 그러나 용문을 잃은 호나라는 ‘악만의 세력’이 된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구분은 용문이 호나라를 버리는 것을 정당화하고 임금답지 못한 임금은 섬기지 않아도 된다는 전제를 깔아 준다.
용문이 ‘악’이 아닌 ‘선’을 선택한 것이라 어떻게 장담할 수 있나?
호왕은 용문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 용문의 아버지 용훈을 잡아서 편지를 쓰라고 강요한다. 그러나 용훈은 조금도 굽힘이 없이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음은 임금부터 위반하기 때문이다”라며 “영천수가 가까우면 자신의 귀를 씻고자 한다”라고 한다. 이 대목에 이르러 ‘선’과 ‘악’은 판연히 나누어진다.
호왕의 최후는 어떤 것인가?
명군에 대패한 호왕은 활인암이라는 암자로 피신한다. 그곳의 노승에게 자신이 소대성에게 죽을 운명임을 듣게 된다.
당신은 누구인가?
신해진이다.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