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삼곡선
차성연이 엮은 장혁주의 ≪초판본 삼곡선≫
네 아비 이름자가 무엇이냐?
식민지 조선에서 천황의 적자는 일본인, 서자는 조선인이다. 서자도 아비가 있지만 당당히 부를 수는 없다. 서자는 서자를 미워한다. 모두가 허사이지만 사실처럼 살 때가 있었다.
창진이는 몇 달 뒤에 대판 지방의 풍수재 때에 그곳에선 단 하로 수十만 원, 三, 四 일 내에 百만 원이니 二百만 원이니 하는 의연금이 모아지는 것을 보고 기가 막히었든 것이다. 더구나 이곳에서 五 전 十 전 하는 대신 그곳선 천 원 만 원 하는 부호들의 의연이 많은 것을 보고 무슨 진리를 깨다른 듯이 고개를 끄떡끄떡하였다.
≪초판본 삼곡선≫, 장혁주 지음, 차성연 엮음, 180~181쪽
‘삼곡선’이 무슨 말인가?
세 가닥의 곡선이란 말이다.
세 가닥은 뭐고 곡선은 또 뭔가?
≪삼곡선≫은 1934년 신문에 연재된 연애소설이다. 대구에 사는 세 남녀, 윤창진, 김선희, 강정희의 애욕이 그리는 만남과 헤어짐을 세 가닥 곡선의 꼬임과 헤어짐으로 풀어낸 이야기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모던 보이’, ‘모던 걸’이라 불리던 젊은 지식인 계층이다.
세 남녀란 한 남자 두 여자인가?
부잣집 딸 김선희는 고학생이자 예술가인 윤창진을 사랑한다. 사랑의 도피까지 시도한다. 여학교 교사인 강정희는 서른 줄의 노처녀인데 윤창진과 친구 사이로 지내다 사랑하게 된다.
어찌 꼬였다 어찌 풀리나?
김선희와 윤창진이 유성온천으로 도망친다. 강정희는 그들을 뒤쫓는다. 그러다 둘은 결혼하고 강정희는 교편생활에나 충실하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는 이야기다. 급하고 부실하게 끝낸 감이 없지 않다.
‘이그조티시즘’이 이 작품에 나타나는가?
대표적인 인물이 강정희다. 하루 숙박료가 월급의 1할이나 되는 서양식 호텔에 머문다. 조선식 여관은 별로라는 것이다. 작가는 이런 정신을 비판한다.
‘조선적인 것’을 옹호하는 것인가?
작가가 ‘조선적인 것’을 바라보는 태도는 조선 주체로서 그것이 아니라 내면화한 타자의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제라는 타자의 시선을 내면화하고 이를 통해 조선적인 것을 옹호하거나 비판한다.
일제라는 타자의 시선은 어떤 모습인가?
일목요연하게 세목을 밝히며 비판한다. 조선인은 안일해서 장사도 못한다, 태만이 조선인의 큰 결점이다, 돈 벌면 오입질이나 한다는 식의 대단히 주관적인 내용들이다.
‘조선적인 것’의 비판은 어디에 닿는가?
열등의식에 귀결된다. ‘수재 의연금 모금액 비교’가 그렇다. 양측의 모금액 규모가 다른 걸 두고 작가는 일본인들이 더 선량하며 애족심이 높다고 쓴다. 조선인이 부끄럽다는 뜻이다. 당시 조선과 일본의 경제 수준을 무시한 비교다.
‘부끄러운 조선인’ 에 대한 장혁주의 대안은 뭔가?
‘조선인은 일본인이 되어야 한다’는 내선일체 논리로 나아간다.
친일의 길을 걷는가?
≪삼곡선≫ 연재 5년 뒤 그는 친일의 길을 걷는다. 장혁주의 내선일체 논리는 이광수를 비롯한 친일 지식인 대부분이 내걸었던 자기 합리화의 근거이기도 하다.
그는 왜 그렇게 되었는가?
장혁주는 일본인이 조선인의 내면에 심은 자기 비하 의식을 받아들인다. 첩의 아들로 태어나 콤플렉스를 느끼며 살아온 것과 관련 있다. 성장 과정에서 느꼈던 스스로에 대한 콤플렉스를 조선인 전체로 확대시켰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은 어느 말로 썼는가?
일본어와 조선어 창작을 병행했다. 장혁주의 한글 소설은 12편인데 모두 1933년에서 1940년 사이에 나왔다. 1934년작인 ≪삼곡선≫은 바로 이런 시절의 작품이다.
일본어 창작의 계기는 뭔가?
22세 때부터 소설에 뜻을 두어 여러 잡지에 투고했다. 조선어 매체에도 투고해 봤지만 탄압으로 원고를 압수당하는 일 등이 잦아지자 일본어 창작, 일본어 매체 투고로 돌아선다.
일본어 창작이 성과는 있었는가?
1930년 10월 일본 잡지 ≪대지에 서다≫에 일본어 단편 <백양목>을 발표했다. 1932년 ≪개조≫의 소설 현상 모집에 <아귀도>가 2등으로 입선해 일본 문단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장혁주가 1939년 2월 발표한<조선의 지식인에게 호소함>은 어떤 내용인가?
친일 입장을 분명히 한 글이다. 그해 6월에는 일본 작가들과 함께 ‘펜부대’를 꾸려 3개월간 만주 등을 시찰했다. 1944년 1월에는 친일 단편소설집인 ≪이와모토 지원병≫을 출간했다. 징병제 실시에 감격·찬동하는 내용으로 점철된 책이다.
1945년 8월 이후의 행적은 어떤가?
친일 관련 부담감 때문에 일본에 정착한다. 재일 조선인 사회로부터 멸시에 찬 시선과 살해 협박을 받는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 빈궁한 생활을 이어 갔다.
언제까지 살았나?
한국전쟁 때는 건너와 참상을 취재해 ≪아! 조선≫을 출간했다. ≪무궁화≫, 자전적 소설 ≪편력의 조서≫를 발표하는 등 활동은 계속하지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1998년 뇌혈전으로 사망했으나 최근까지 그의 사명 연도가 1997년인지 1998년인지 헛갈렸을 정도로 작가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았다.
최근 그를 재일 디아스포라 작가의 효시라는 주장도 있는데, 맞는가?
그런 주장이 있지만 그의 친일이 엄연한 사실이어서 본격적인 평가에 걸림돌이다. 같은 시기, 일본어 창작을 했지만 친일 행적이 없는 김사량과 대비되는지라 더욱 그렇다.
당신은 누구인가?
차성연이다. 한국 근대문학을 연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