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박용철 시선
이혜진이 엮은 ≪초판본 박용철 시선≫
시가 현실보다 깨끗할 때
시인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비애와 애수, 인생의 허무 그리고 체념과 비관의 정조를 만난다. 투명한 대기에는 먼지만 부유할 뿐 바람조차 불지 않는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닛는 마음
쫓겨 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도라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 짓네
압 대일 어덕인들 마련이나 잇슬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간다
<떠나가는 배> 부분, ≪초판본 박용철 시선≫, 이혜진 엮음, 14∼15쪽
박용철이 누구인가?
시인이자 비평가, 번역가, 극예술인, 출판 편집 발행인이다.
언제 활동했는가?
1904년 태어나 1930년 등단하고 1938년, 35세에 사망했다.
겨우 8년인가, 그 짧은 기간에 무엇을 했나?
1930년대 한국 서정시와 해외 번역시 문학의 기초를 놓았다.
어떻게 활동했는가?
‘시문학’파를 결성했다.
시문학파는 무엇을 했는가?
순수시 운동을 전개했다.
그의 순수시 운동은 어떤 모습이었나?
문학의 목적성과 공리성을 반대했다. 인위적인 기교도 배격했다. 낭만적 순수 예술 지상주의를 지향했다.
시문학파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1929년 10월 22일, 박용철은 김영랑과 함께 경성에 가 정지용을 만난다. 이어 12월 10일경에는 변영로와 정인보를 만나고 이들이 합세해 순수 서정시파인 ‘시문학’ 동인을 구성했다. 1930년 경성부 옥천동 16번지에서 ‘시문학사’를 열었다.
그는 얼마나 많은 해외시를 소개했는가?
서정시 330여 편을 옮겼다. 극본을 번역해 연극 공연에도 적극 참여했다.
그가 만든 문학잡지는 무엇인가?
≪시문학≫, ≪문예월간≫, ≪문학≫, ≪극예술≫을 발행했다.
그의 시론은 무엇인가?
순수시론이다. 문학의 이념성과 기법·기교에 대해서는 멀리했다. 순문학의 본질을 탐색했다.
시를 현실과 분리한 것인가?
객관적 존재가 된 시는 심미적 경험의 순수성과 예술적 자율성을 추구한다.
객관적 존재가 된 시에서 ‘조선어’는 무엇인가?
민족어로서의 ‘국어’가 아니다. 문학 언어, 즉 ‘시어’가 된다.
프로 문학에 대한 박용철의 입장은 무엇이었나?
작가 의도가 과중하고 예술의 자율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형식과 내용의 불일치를 지적한 것인가?
형식은 등한시한 채 내용에만 몰두한다고 보았다.
모더니즘에 대한 그의 입장은 무엇이었나?
시적 기교와 기술을 단지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시인으로서 명성은 높지 않은데?
작품 편수가 적다. 생전에 출간한 시집은 없고 작고 후 가족과 지인들이 유고를 정리해 전집을 출간했다.
그의 시는 무엇을 말하나?
현실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비애와 애수, 인생의 허무에서 비롯한 체념과 비관의 정조다.
체념과 비관은 어떤 모습인가?
이별, 부질없는 삶의 애착, 무의미 같은 감상적 우수와 애상이다.
위에 인용한 <떠나가는 배>는 신세계를 향한 젊은이의 다짐이 아닌가?
시적 화자는 자발적인 의지나 신념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등 떠밀려 쫓겨 가는 신세다.
어떻게 알 수 있나?
배가 기대어 있는 항구조차 떠나지 못하고 자꾸 뒤를 돌아다보며 눈물을 훔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남아 있는 그곳으로부터 떠나야만 하는 그의 앞에 놓여 있는 것이란 “압 대일 어덕” 하나 없는 막막함뿐이다.
그가 주장한 ‘서정시의 고고한 길’과는 다른 모습 아닌가?
시 세계와 시론의 지표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 때문에 시인보다 비평가로서의 위상이 더 강조되기도 한다.
그런데 당신은 왜 그의 시를 엮었나?
한국 근대시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기초 자료에 대한 고구는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한다.
시편을 고른 기준은 무엇인가?
박용철 사후 간행된 전집은 미발표 작품을 무작위로 편집했기 때문에 오류가 많다. 따라서 이번에는 확인된 작품 발표 날짜의 순서에 따라 편집했다.
당신은 누군가?
이혜진이다. 세명대학교 교양과정부 조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