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에 갇힌 삶
세계여성의날 특집 1. 실재하는 58가지 젠더의 모습
줄리아 우드(Julia T. Wood)가 쓰고 한희정이 옮긴 <<젠더에 갇힌 삶(Gendered Lives: Communication, Gender, and Culture)>>
젠더, 너무나 불안정한 개념
페이스북은 성 정체성을 58가지로 분류한다. 남성과 여성만으로는 정의할 수 없는 성 현실 때문이다. 인간은 생물로 태어나 문화로 살아간다. 두 개의 성은 이미 58가지로 확산되었다.
성 전환자들에게 성과 젠더는 자신의 몸을 다른 성에 강하게 동일시하면서, 다른 성의 육체에 갇힌 듯이 느끼는 모순적 개념이다.
‘커뮤니케이션, 젠더, 문화 연구’, <<젠더에 갇힌 삶>>, 29쪽.
우리는 무엇을 젠더라고 부르는가?
생물학적 성에 문화가 의미를 부여한 사회적, 상징적 체계다. 젠더는 문화에 의해 구축되기 때문에 개인의 특성을 넘어선 개념이다.
젠더가 개인의 특성이 아니라면 뭔가?
한 사회에서 특정 시기에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사회적 의미의 총체적 체계다.
성과 젠더는 무엇이 다른가?
우리는 여성과 남성으로 태어난다. 이것이 성이다. 그러고 여성적이거나 남성적이 되라고 배운다. 이렇게 배운 것이 젠더가 된다.
젠더는 상황의 산물인가?
그렇다. 문화에 따라 다르다. 같은 문화에서도 시간에 따라 다르다. 또 다른 젠더와의 관계에 의해 달라진다. 젠더는 사회적 구성물이다.
너무 복잡하고 불안정한 개념이 아닌가?
젠더는 본질도 아니고 개체도 아니다. 그래서 성보다 훨씬 복잡하다.
도대체 얼마나 복잡한 현실인가?
2014년 2월 13일 페이스북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표시하는 란에 기존의 여성(female), 남성(male) 외에 무성(Agender), 양성(bigender), 간성(intersex) 등 56가지 젠더를 추가했다.
<<젠더에 갇힌 삶>>은 무엇을 말하는 책인가?
우드는 젠더를 불변의 확고한 본질인 것처럼 강조하는 구별 짓기를 거부한다. 젠더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문화와 제도를 바꾸기 위한 행동, 특히 커뮤니케이션 실천을 주장한다.
무엇을 구별 짓는단 말인가?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여성, 남성에게 어떤 불변의 확고한 본질적 차이가 있는 것처럼 여겨왔다. 구별 짓기는 여성은 여성으로서, 남성은 남성으로서 한 가지 성에 포함된 모든 개인이 기본적인 면에서 모두 같다는 믿음을 강화하는 짓이다.
‘젠더에 갇힌 삶’이란 어떤 현실을 말하는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경제학 교수 데이드르 맥크로스키가 잘 설명하고 있다. 그의 말을 들어 보자.
“젠더는 학습된 습관이 쌓인 결과다. 사실 너무 학습이 잘 되어서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이미 존재해 온 외부 조건같이 느껴진다. 달팽이가 만든 껍질같은 것이다. 껍질은 일단 만들어지면 그것을 만든 달팽이를 가두어 버린다.”
우리는 무엇으로 젠더를 학습하는가?
학교, 사법 제도, 미디어다. 고착화된 젠더의 문화 규정을 강화한다.
미디어가 어떻게 젠더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가?
미디어는 다양하면서도 모순적인 젠더 이미지가 각축하는 매혹적인 무대다. 전통적인 젠더 역할, 남녀 간의 불평등한 권력, 비현실적인 몸 이미지를 현실 반영의 명목으로 재현한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그러한 젠더를 이해하고 내면화한다.
한국의 미디어가 여성을 재현하는 수법은 무엇인가?
한국 여성은 역사적으로 자주, 오랫동안 차별적 이름으로 호명되었다. 여성을 된장녀, 김치녀로 호명하는 한국 젠더 문화는 여성을 경계인으로 타자화한다.
한국 젠더 문화가 여성을 경계인으로 타자화하는 사례는 무엇인가?
여성축구선수 박은선의 성별 진단 요구 사건을 보라. 국가인권위원회는 그 사건이 여성의 인격을 침해하는 성희롱에 해당된다고 시정을 요구했다.
실업 축구팀 감독들이 왜 이런 해괴한 짓을 한 것인가?
여성성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이다. 박은선의 뛰어난 축구 실력이 그들이 생각하는 여성성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라 생각한 것 아니겠나?
이것을 성희롱이라 판단한 법원의 논리는 무엇인가?
sexual harassment를 우리나라 법에서는 성희롱이라 부른다. 우리 사회는 성희롱을 성적 농담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섹슈얼 허래스먼트 원뜻은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젠더 위협, 또는 성적 추파로부터 강간 시도에 이르는 모든 행동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의 성희롱 현실은 어떤가?
끝없이 문제가 발생한다. 르노삼성자동차, 삼성화재, 농협, 농심기획, 하나금융그룹의 사내 성희롱 사건을 보라. 불과 몇 달 동안 발생한 일이다.
이 책은 대안을 말하는가?
우드는 단일한 가치나 문화에 동화하는 도가니(melting pot) 대신 페미니스트 폴로라 데이비스가 언급한 샐러드 볼(salad bowl)로 사회에 대한 은유법을 바꾸자고 주장한다.
샐러드 볼에는 어떤 재료를 담을 수 있는가?
젠더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 곧 다양한 젠더, 성적 지향성, 계급, 인종을 포용하는 태도다.
커뮤니케이션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젠더 차별에서 커뮤니케이션은 변화의 지렛대다. 문제의 대안을 찾고 비전을 나누는 일은 커뮤니케이션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1848년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의 세니커폴스 연설이 없었다면 미국의 여성운동은 없었다. 젠더 불평등의 경험을 누군가와 나누지 않는다면 변화시킬 힘도 얻지 못한다.
경험의 공유만으로 변화가 가능한가?
현상은 명명되어야 존재가 인식되고 문제 해결의 노력이 시작될 수 있다. 이름 없는 현상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드러나지 않는다.
당신은 누구인가?
한희정이다. 국민대학교 교양학부 조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