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승/무의도 기행
지만지한국희곡선집출간특집 5. 1930년대 조선 최고의 단막극
돌아온 함세덕
해방 전 우리 연극에 유치진과 함세덕이 있었다. 함세덕? 낯선 이름이다. 작품은? 기억나지 않는다. 24편의 희곡을 쓴 당대 최고의 극작가다.
道念: 네, 저이가 바루 서울서 오신 안 대갓집 아가씨세요.
寡婦: 어듸?
새댁: 지금 법당 앞에서 신발 신는 이가, 바루 그 대갓집 딸이라는구료.
道念: (자랑하는 듯이) 저 아씨는, 언제든지 하아얀 두루매기에다 하아얀 털목도리를 하구 오신담니다.
寡婦: 대갓집 딸이란, 아닌 게 아니라 달르군요. 인품이 절절 흘르는데.
道念: 머리에두 모두 금부치만 꽂았어요. 참 이뿌지요?
새댁: (웃으며) 이 녀석아, 이뿐지 미운지, 네가 아니?
道念: 웨 몰라요? 이 절에 오는 사람 중에 저 아씨같이 이뿐이는 없어요. 목도리를 벗으면 목이 눈같이 하아예요.
≪童僧/舞衣島 紀行≫, 함세덕 지음, 10∼11쪽
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가?
서울에서 불공드리러 온 대갓집 아씨를 두고 사미승 도념이 손님들과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아씨에 대한 도념의 지향성은 뭔가?
아씨가 어려서 헤어진 자기 어머니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없는 아씨도 어린 도념을 각별하게 느낀다.
도념은 어쩌다 절에 있는가?
비구니 절인 니암(尼菴)의 처녀 중이 사냥하러 산에 드나들던 사냥꾼과 눈이 맞아 애를 낳는다. 그가 도념이다. 삼밭에 버려진 것을 주지가 데려다 키웠다.
어머니와의 인연은 그것으로 그만인가?
도념이 아홉 살 때 어머니가 다녀 갔다고 한다. 주지에게 이듬해 봄보리 베고 데리러 온다고 하고는 소식이 끊겼다.
어머니를 찾지 않는가?
주지는 부모의 행방을 알려 주지 않는다. 도념은 자라면서 한 번도 어머니를 보지 못했다.
주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도념이 속세와 연을 끊고 구도의 의미를 깨닫길 바란다.
어린 아이가 속세의 연을 끊어야 하는 까닭이 뭔가?
파계한 어머니와 산짐승을 사냥하던 아버지의 죄가 대물림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도념이 죄를 씻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이가 그런 뜻을 이해하는가?
주지의 바람과 달리 도념은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속세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둘의 갈등은 점점 깊어진다.
갈등은 어디서 폭발하는가?
도념을 양자로 달라는 대갓집 아씨의 끈질긴 청에 못 이겨 주지는 그렇게 하기로 한다. 그때 토끼 살생 사건이 벌어진다. 불전에서 죽은 토끼 몇 마리가 발견된 것이다. 도념의 짓이었다.
갈등은 어떤 방향으로 증폭되는가?
주지는 도념을 크게 나무라고 양자로 들이겠다는 아씨의 청도 거절한다. 도념은 죽어서 지옥에 가더라도 내려가고 말겠다며 떼쓴다.
왜 토끼를 죽인 것인가?
도념은 아씨가 절에 올 때마다 하고 오는 하얀 털목도리와 꼭 같은 것을 어머니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토끼 털을 모으던 중이었다.
이것이 언제 적 작품인가?
1939년 동아일보사가 주최한 연극경연대회 참가작으로 유치진이 연출했다. 원래 제목은 ‘도념’이었으나 1947년에 출간한 희곡집에는 ‘동승’으로 제목을 바꾸어 수록했다.
이 책에 함께 실린 <무의도 기행>은 어떤 작품인가?
가난한 어촌에서 빈곤하게 살아가는 어부들의 삶을 그렸다. 보통학교를 첫째로 졸업한 천명을 두고 고기잡이 배에 태우려는 외숙 공주학과 그를 데릴사위 삼으려는 구 주부가 갈등한다. 공씨 부부는 이미 두 자녀를 바다에서 잃었지만 생계를 위해 셋째 천명도 배에 태워야 할 처지다. 뭍에 남길 원했던 천명은 부모의 강요에 못 이겨 결국 바다로 나간다.
천명은 돌아오나?
마지막 장면은 어느 소학교 교사의 내레이션으로 꾸며진다. 그는 천명이 탄 배가 모진 노대를 만나 난파했으며, 공씨 부부가 시체를 확인했다는 후일담을 담담하게 전한다.
무엇이 천명인가?
‘천명(天命)’이라는 이름이 암시하듯 그는 결국 바다에서 죽음을 맞을 운명이었다. 함세덕은 자연 또는 운명의 절대적인 힘 앞에서 무력하게 패배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비극성을 형상화했다.
함세덕 희곡선에서 왜 이 두 작품을 골랐는가?
<동승>은 해방 이전 단막극 가운데 최고 수준을 보여 준다. 서정성과 연극성이 뛰어나 등장인물의 성격과 갈등이 잘 드러난다. 식민지 현실을 우회적으로 반영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무의도 기행>은 어민들의 삶과 현실을 생생한 토착어로 표현했다. 어민극이라는 특색을 지닌다.
함세덕은 누구인가?
해방 직후 조선연극동맹에서 활동하면서 <기미년 삼월 삼일>, <고목>, <태백산맥> 등을 발표하며 이 시기 대표 극작가로서 입지를 확고히 한다. 월북했다가 1950년 한국전쟁 중에 35세로 사망하기까지 10여 년 동안 번안과 각색을 포함해 장·단막극 24편을 발표했다.
우리가 함세덕에 대해 아는 것은 무엇인가?
1980년대까지는 좌경 월북 극작가로 낙인찍혀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다. <동승> 공연과 함께 함세덕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현재까지 수많은 학위 논문이 발표되었고 작품집 출간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해방 이전 유치진과 더불어 최고의 극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두 작품의 공연 사정은 어땠나?
<동승>은 1991년 연우무대가 ‘한국 연극의 재발견’이라는 기획으로 공연했다. <무의도 기행>은 국립극장에서 김석만 연출로 공연된 바 있다. 이후 기성 극단에서도 두 작품을 틈틈이 무대에 올리고 있다.
함세덕의 다른 작품은 무엇이 있는가?
백제 멸망사를 다룬 ≪낙화암≫은 잘 짜여진 대규모 역사극이다. 함세덕 극작술의 정점을 보여 준다. 이외 해방 직후 발표한 ≪고목≫에서는 당시 정치적 상황에 대한 작가의 비판 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양승국이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