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발 동화선집 초판본
오세발이 짓고 장성유가 해설한 ≪오세발 동화선집≫
현실과 충돌하는 동화
동화 정신은 시 정신이다, 시 정신은 비판 정신이다, 비판 정신은 현실과의 부대낌이다, 한 치라도 벗어나면 그곳에 진실은 없다고 오세발은 생각한다. 사랑은 여기 있다.
비명이 절로 새어 나왔읍니다.
쇠줄은 아무리 힘을 주어도 끊어지지 않았읍니다.
“어리석은 놈! 네가 그런다고 쇠줄이 끊어질 것 같아?”
담 위에서 도둑고양이가 비웃었읍니다. 언젠가 부엌에 들어가 음식을 도둑질해 먹던 놈이었읍니다.
“무엇이라구!”
나는 화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었읍니다.
“흥, 그래도 기는 살아 가지고….”
“이 도둑고양이 놈아! 오늘은 용서치 않을 테다.”
나는 다시 전신에 힘을 주어 펄쩍 뛰어올랐읍니다. 그러나, 쇠줄은 여전히 끊어지지 않았읍니다.
“날보고 도둑고양이라구? 흥, 제 주제나 알고 그런 말을 하시지.”
“내 주제가 어때서?”
“이 뚱뚱한 개야! 너도 먼젓번 누렁이처럼 죽을 날이 멀지 않았어.”
“무엇이? 날보고 뚱뚱한 개라구!”
“그래, 이 바보 같은 놈아! 아직 자기가 돼지처럼 뚱뚱해진 걸 모르고 있었단 말이냐?”
≪오세발 동화선집≫, <뚱뚱한 개>, 오세발 지음, 장성유 엮음, 88쪽
고양이가 개를 나무라는가?
개 이름이 흑마다. 자신의 처지를 모르고 나태하게 산다.
개는 어쩌다 나태해졌나?
주인 김 사장이 주는 날쇠고기를 받아먹고 날로 뚱뚱해진다. 흑마는 궁궐 같은 집에서 쇠줄에 묶여 사는 신세다.
개가 살찌는 것이 욕먹을 짓인가?
문제는 살이 아니다. 흑마는 한때 일본 챔피언 경주견이었다. 지금은 그저 맛있는 날쇠고기에만 정신을 판다.
김 사장은 왜 고기를 주는가?
그는 밀수꾼 두목이다. 집에 밀수꾼들이 모일 때마다 흑마가 조용히 있도록 날쇠고기에 수면제를 탔다. 흑마는 금세 잠들었고 깰 때면 골치가 아프고 온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져서 일어서지도 못한다.
개가 고양이 말을 듣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잠에 취했던 흑마는 김 사장을 향해 달려오는 사람들이 자신을 덮치려는 줄 알고 펄쩍 뛰어오르다가 총에 맞아 죽는다.
개와 고양이는 인간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진실에 눈감고 눈앞의 피 묻은 날고기를 받아먹으면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게 된다는 사실을 시연한다.
동화 스토리로는 너무 신랄한 것 아닌가?
오세발은 현대의 젊은 작가들이 잘 다루지 못하는 묵직한 주제를 과감하게 ‘동화’에 끌어들였다.
동화로 폭력과 윤리를 말하는 이유는 뭔가?
회복할 가치를 지적하기 위해서다. 그는 처음부터 결점 없는 ‘동화적 동경 세계’를 말하지 않았다. 현실에서 비껴 나려는 자세를 용인하지 않는다.
동화로 현실에 부딪치는 이유는 뭔가?
진정한 동화적 동경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처방전이기 때문이다.
현실과의 충돌이 동화적 동경 세계를 보장하는가?
오세발은 늘 말했다. “동화 정신은 시 정신이요, 시 정신은 곧 비판 정신이다.”
그의 비판 정신은 어디서 비롯하나?
생명의 존중과 인간애를 추구하는 휴머니즘이다.
휴머니즘은 어떤 장치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되는가?
비판 정신과 전통적 소재의 활용, 그리고 환상성의 탐구다.
그의 어떤 작품이 그런가?
도깨비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해학적인 웃음을 빚어내며, 도시 생활에 찌들어 있는 현대인의 가슴에 잠재되어 있던 문제를 환상 기법을 통해 표현해 공감대를 이끌어 냈다.
이 책에 실린 <도깨비 삼 형제>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 도깨비를 통해 일확천금을 경계한다.
스토리라인은 어떻게 전개되는가?
도깨비 삼 형제는 마음씨 착한 김 생원을 돕기 위해 솥단지에 돈 자루를 넣어 준다. 김 생원은 노력하지 않고 얻는 돈은 화근이 된다며 돈을 모두 버린다. 최 부자가 주워 간다. 도깨비 삼 형제는 그 돈을 뱀, 돌, 재로 바꾼다. 김 생원을 위해서는 천수답에 물을 대 주기로 한다.
전통 소재는 동화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어려운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어려운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 도깨비라는 친숙한 존재를 통해 물질이 인간을 소외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 어떤 이론보다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오세발 문학의 주제는 무엇인가?
어떤 친구가 그에게 물었다. ‘사랑이 무엇이냐?’
사랑이 무엇인가?
쉬운 문제라 생각했지만 막상 대답하려니 사랑이 무엇일까, 어떻게 생겼을까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문제의 해답을 얻기 위해 동화를 썼다고 한다. 인간에 대한 애정은 사랑의 모습을 찾고자 하는 작가의 열망에서 비롯된다.
어느 문을 열고 동화의 세계에 들어왔는가?
<아기 중>이다. 모성을 갈구하는 아기 중의 천진한 동심 이야기다. ‘엄마 찾기’ 모티프는 그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한다. 엄마 찾기는 곧 사랑 찾기다. 오세발이 찾고자 하는 ‘사랑의 모습’ 찾기다.
<아기 중>은 어떻게 현실이 되었나?
1968년, 여동생인 오세금이 오빠 몰래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아기 중>을 보냈다. 마감에 임박해 간신히 접수된 이 작품이 당선되어 항간에 화제가 됐다.
당신은 누구인가?
장성유다. 동화작가다. 오세발의 제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