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규 동화선집
박상규가 짓고 오주영이 해설한 ≪박상규 동화선집≫
동화는 물줄기다
어릴 때는 누구나 싱싱했다. 다쳐도 금방 낫고 부드럽게 흔들리며 부러지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부러지고 꺾이고 잘 낫지 않게 되었다. 왜 그럴까? 건조하기 때문이다.
금줄을 타 넘어 다리로 들어갔습니다.
누가 오지 않나 하고 사방을 둘러봤으나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았습니다.
주머니에서 조각칼을 꺼냈습니다. 아직 굳지 않은 시멘트 콘크리트 다리 난간에 조각칼을 댔습니다.
손이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아직 굳지 않은 시멘트 콘크리트 다리 난간에 ‘김만수’라는 글자를 크게 새겼습니다.
≪박상규 동화선집≫, <돌에 새긴 이름>, 박상규 지음, 오주영 해설, 14쪽
만수가 지금 뭘 하는 것인가?
다리에 자기 이름을 새긴다.
이름을 새기는 이유가 뭔가?
만수네는 비석을 세워 이름 남기길 좋아하는 비석거리 마을로 이사 온다. 만수도 비석을 갖고 싶어 몸이 단다. 마침 조억대라는 부자가 자기 이름을 딴 ‘조억대교’를 준공한다. 만수는 그 다리에 자기 이름을 새긴다.
이름 새김의 강박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가?
가난 탓에 비석을 갖지 못하는 현실이 박탈감과 고통으로 작용한다.
‘이름 새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대 물질문명의 욕망이다.
다리에 새긴 이름은 길이 남는가?
그 다리는 조억대가 부정하게 번 돈으로 세운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자 만수는 제 이름을 정으로 쪼아 낸다.
애써 쓴 것을 다시 지우는 행위는 무엇을 그리는 것인가?
‘이름’에 대한 집착과 그것의 무위를 그렸다.
이름이 무위라면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름을 새기는 것이 아니라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사는 일이 중요하다.
당신 문학의 지향은 무엇인가?
외롭고, 슬프고, 안타까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안과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다. 물질문명 속에서 겉모양을 행복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진정한 마음을 찾아 주는 작품을 쓰고 싶다.
당신이 어린이에게 제안하는 메시지는 뭔가?
해설자 오주영의 말로 대신하고 싶다. 어린이가 자기 삶의 주체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한다.
지금 그곳으로 가고 있는가?
이오덕의 말을 빌리자. “돈과 권력만을 가장 높은 것으로 우러르는 풍조가 모든 사람을 다스리려고 하는 세상, 우리 문화가 뿌리째 뽑혀 버릴 위기에 놓여 있는 이러한 현실을 그 누구보다도 뼈아프게 바로 보고 있는 이 작가는, 사라져 가는 흙 문화를 시멘트 바닥에서 되살리기 위해, 기계 부속품으로 길들여지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사람 얘기를 들려주려고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목소리>의 문식이가 그런 인물인가?
그렇다. 문식이는 돈으로 아이들의 환심을 사는 정수가 싫고, 정수의 과자에 길들여진 아이들처럼 되고 싶지 않다. 어느 날 감기로 학교를 빠진 문식이는 문병 온 정수의 위문 과자를 먹고 나서 자신의 목소리가 약해졌음을 느낀다. 목적을 가진 과자가, 다시 말해 돈이 목소리를 빼앗은 셈이다.
돈에 뺏긴 목소리를 어떻게 찾는가?
같은 반에 언제 어디서나 거침없이 바른말을 던지는 창호가 있다. 창호가 문식이에게 문병을 와 생밤을 내민다. 자연의 싱싱함이 담긴 생밤을 씹으며 문식이는 졸아들었던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는다.
여기서 목소리는 무엇인가?
해설자 오주영도 짚었듯이, 돈이 권력이 되고 권력이 바른 목소리를 누르는 현실을 보여 준다. 아이들의 삶 속에도 깊숙이 들어온 물질 중심의 사고, 아이들끼리의 관계에서 권력 문제를 야기하는 자본의 힘에 대해서 묻는다.
당신의 동화는 날선 문명 비판인가?
꼭 그렇진 않다. 웃음과 놀이는 경계를 허물고 건강한 마음을 회복하는 중요한 매개다. <말하는 두더지>를 보라. 힘으로 해결하려던 갈등이 두더지 놀이로 해소되며 결국 싸움이 웃음으로 바뀐다.
어쩌다 동화를 쓰게 되었나?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교사가 된 후 써 놓은 소설을 읽으면서 회의를 느꼈다. 남부끄러운 사랑의 표현과 비리와 못된 삶의 썩은 모습들이 너무 많았다. 차라리 부끄럽지 않은 동화를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설로부터 동화로의 전환은 순조로웠나?
칼국수 만들면 수제비, 만두도 만든다지 않는가. 동화 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동화란 무엇인가?
마음을 적시는 물줄기다. 산 나뭇가지는 물기로 싱싱하다. 부드럽게 흔들리며 부러지지 않는다. 마음도 그렇다. 물기를 품으면 부드럽고 따뜻하고 아름답다.
어른이 동화에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몸이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 부르며 그리워하고 가고 싶어 한다. 우리의 마음이 태어난 곳은 어린 시절이다. 동심은 우리 마음의 고향이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도 동심을 그리워하고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마음의 고향인 동심으로 돌아가는 길은 동화를 읽는 것이다. 동심을 가질 때 어린이와 어른들은 같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박상규다. 동화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