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천줄읽기
사월의 나무이야기 5. 불타는 녹색의 남자
윤희수가 옮긴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월든(Walden)≫
없어서는 안 되는 것만을 산다
숲에 집을 짓고 필수불가결의 삶을 시작한다. 문명의 부력으로 부유하던 영혼, 결핍과 발견은 중력과 은총의 좌표를 찾는다. 봄이 되면 그곳, 월든의 녹색은 불꽃이 된다.
1845년 3월 말경. 나는 도끼 한 자루를 빌려 들고 월든 호숫가의 숲 속으로 들어가, 호수 가장 가까운 곳에 집 한 채를 지을 요량으로 크고 곧게 자란 어린 백송들을 재목감으로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윤희수 옮김, 25쪽
소로가 월든 호수로 간 까닭은 무엇인가?
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오직 삶의 필수적인 사실들만 직면하고”, “인생의 모든 골수를 빼먹기” 위해서다. 기본적인 욕구만을 충족하는 간소한 삶을 실천하려고 했다.
숲으로 가기 전에는 무엇을 하고 살았나?
1837년에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고향인 콩코드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 형과 함께 학교를 설립해 운영하기도 했지만 형의 건강이 악화되자 문을 닫았다. 이후 초월주의 철학자 에머슨의 저택을 관리한 적도 있다.
숲에서는 무엇을 먹고 살았나?
집 근처 모래땅에 콩과 감자, 옥수수, 무를 심고 가꾸어 식량을 자급했다.
농사를 지으며 무엇을 보았나?
소박하게 살고 자신이 직접 가꾼 농작물만을 먹되 필요한 만큼만 가꾸며, 또한 거두어들인 것을 사치스럽고 값비싼 기호식품과 바꾸려 하지 않는다면, 단지 몇 제곱야드의 땅만 일구어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농업 상품 생산에 반대하는가?
대량 수확을 목표하는 대규모 농장이 성급하고 생각 없이 농사를 짓는다고 개탄한다. 자연에 대한 착취와 파괴를 경계했다.
농작물을 사 먹으면 안 되나?
자연의 생산물이 시장에서 상품으로 유통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의 진정한 가치를 경험할 수 없다. 과일은 그것을 돈 주고 산 사람에게도, 시장에 내다 팔려고 기른 사람에게도 그 참맛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참맛이란 노동을 의미하는가?
자기가 먹을 것을 스스로 마련하는 자급자족을 말한다. 허클베리를 손수 따 보지도 않고 그 참맛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잘못이다.
참맛을 느끼는 것, 곧 자연과 인간의 교감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불필요한 욕망을 억제하는 소박한 삶을 살며 자연에 대한 겸허함을 실천할 때 이루어진다.
먹고 살기 위한 농사 외에는 무엇을 했는가?
독서와 산책으로 소일했다. 날씨에 관계없이 항상 산책했다. 깊은 눈을 뚫고 8마일, 10마일을 걷기도 했다.
외롭지 않았을까?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유를 느끼며 돌아다녔다. 감미롭고 다정한 교제, 가장 순수하고 힘을 북돋아 주는 교제는 자연물 가운데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월든 호수에 살면서 감옥에는 왜 갔나?
1846년,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며 인두세 납부를 거부했다. 그 죄로 하루 동안 감옥에 투옥되었다. 이 경험을 토대로 훗날 <시민의 불복종>이라는 글을 남겼다.
그의 생활 전략은 무엇인가?
간소함이다. 일을 100가지, 1000가지로 만들지 말고 두세 가지로 줄이라는 뜻이다. 하루에 한 끼만 먹고 100가지의 음식을 다섯 가지로 줄이라고 했다.
그렇게 살 수 있나?
식욕을 억제할 수 있다면 다른 욕망도 그에 비례해서 축소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가 제안하는 바람직한 삶의 실천 방식이다.
기본 욕구만 충족하며 사는 것이 행복한가?
현대인의 질병은 지나친 욕망에서 출발한다. 가지지 않아도 될 것을 소유하려 애쓴다. 소비를 통해 인간의 등급이 매겨진다고 착각한다. 우리가 사소한 것들로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남에게 설득하지 않은 이유는 뭔가?
생태주의적 삶은 스스로 묵묵하게 실천하는 개인적 과제다. 목청 높여 남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소로가 주장한 생태주의란 어떤 것인가?
첫째, 욕망을 줄이는 소박한 삶의 실천이다. 둘째, 자연을 재산 획득의 수단으로 보는 상업주의에 대한 경계다. 셋째, 인간이 자연의 일부에 불과함을 망각하고 주인 행세를 해 온 인간 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이다. 넷째, 자연의 생명력에 대해 경외감을 느끼는 일이다.
그가 미국 환경 운동의 개척자라는 평가는 옳은가?
그는 19세기 중반 사람이다. 자연파괴가 가속되기 전이다. 문명이 자연에 미칠 폐해를 예견하며 인간의 건강한 삶을 위한 “야성의 강장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야성의 강장제란 뭘 말하는가?
우리 마을을 둘러싼 인적 없는 숲과 강변이 없다면 우리 삶은 활력을 잃을 것이다. 뜸부기와 해오라기가 사는 늪, 도요새의 날갯짓을 보며 자연의 무궁무진한 힘을 느끼는 것이 인간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활력의 원천이 된다.
소로는 월든에서 얼마동안 살았나?
1847년 9월 6일 월든을 떠났다. “숲 속 생활에 더 이상을 할애할 수 없을 것 같았다”고 썼다. 이후 실천적 지식인으로 살다가 1862년 삶을 마감했다.
당신은 이 책을 어떻게 발췌했는가?
자연에 대한 관찰과 묘사가 두드러진 17장 ‘봄’을 비롯해 소로의 생태주의 사고가 잘 드러나는 열세 개 장에서 발췌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윤희수다. 부경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