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 특집 2. 인간이 인간을 알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강태경이 옮긴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Titus Andronicus)≫
알 수 없는 그의 주인공들
분열되고 모순된 성격, 시간과 공간으로 한정되지 않는 가능성, 알 수 없는 운명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 죽음으로써 살고 삶으로써 죽는 존재. 사라지지 않는 의문들.
태모라
로마인들이여, 잠깐 멈추시오!
자비로운 정복자, 승리하신 타이터스 장군이시여
아들을 불쌍히 여겨 흘리는 이 어미의 눈물을
못 본 척하지 말아 주십시오.
당신의 아들들이 당신에게 소중했던 것같이
내 아들이 내게 소중하다는 것을 부디 생각해 주십시오.
당신의 승리를 장식하게 위해 우리가 로마의 족쇄를 차고
여기 로마까지 끌려와 수치를 당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단 말입니까?
자기의 조국을 위해 용감하게 싸운 내 아들들이
로마의 거리에서 도살당해야만 한단 말입니까?
왕과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는 일이
로마인들에게 신성한 의무이듯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앤드로니커스 장군, 신성한 무덤을
피로 얼룩지게 하지 마십시오.
신들의 성품에 가까워지시렵니까?
그렇다면 신들의 긍휼을 닮으십시오.
자비와 긍휼이야말로 고결함의 진정한 징표입니다.
고매하신 타이터스여, 내 맏아들의 목숨을 살려주십시오.
타이터스
참으시오, 여왕이여. 그리고 날 용서하시오.
이 아이들은 당신네 고트인들이 죽인 자들의 형제요.
그들은 죽음을 당한 형제들을 위해
종교적인 희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오.
당신의 아들이 그 제물로 정해졌으니 그는 죽어야만 하오.
그래야 죽은 원혼들을 달랠 수 있으니 말이오.
루셔스
그를 데려가고 묘실 앞에 불을 피워라.
우리의 칼로 그의 사지를 찢어
한 점 재도 남김없이 제단 위에 불사르리라.
(타이터스의 아들들, 앨라버스를 끌고 퇴장)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강태경 옮김, 14∼16쪽
로마의 전승 축연인가?
희생 제의다. 로마 장군 타이터스는 고트족과 전쟁에서 이긴 뒤 고트족 여왕 태모라와 그 아들들을 포로로 삼아 로마로 돌아온다. 그는 전쟁에서 죽은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포로로 잡은 적의 왕자를 제물로 바치는 희생 제의를 치러야 한다. 태모라의 장자가 희생된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무엇을 하는가?
태모라는 타이터스에게 눈물로 아들의 목숨을 구걸한다. 하지만 타이터스는 “종교적 희생”이라는 명분으로 태모라의 간청을 거절한다. 타이터스의 무자비가 결국 복수와 연쇄적인 폭력을 낳는다.
복수와 연쇄적 폭력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태모라는 로마의 새 황제 새터나이너스와 혼인한 뒤 자기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타이터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이번에는 타이터스가 희생되는가?
그는 로마로 귀환한 뒤 새로운 황제에게 대항한 아들을 자기 손으로 죽여야 했다. 또 다른 두 아들은 반역자로 몰리고 외동딸 러비니아는 혀와 손목이 잘린 채 발견된다. 남은 아들마저 추방당한다. 두 아들을 살리기 위해 자기 손목을 잘라 바쳤으나 그 손이 참수당한 아들들의 머리와 함께 되돌아온다.
반전은 가능한가?
혀와 손목을 잘린 러비니아는 몸짓으로 서재에서 오비디우스의 ≪변신≫을 가리킨다. 필로멜라가 테레우스에게 강간당하는 비극적인 장면을 찾아내 자신이 태모라의 아들들에게 강간당한 사실을 알린다. 입에 지팡이를 물고 손목이 잘려 나간 팔로 지팡이를 움직여 모래 위에 범인의 이름을 쓴다.
복수에 대한 복수는 무엇인가?
타이터스는 자신을 찾아온 태모라와 그녀의 두 아들 앞에서 미친 척한다. 태모라가 자리를 비운 사이 두 아들을 죽인다. 이들의 인육으로 음식을 만들어 태모라와 황제에게 대접한다. 모든 사실을 밝힌 뒤 황제가 보는 앞에서 태모라를 칼로 찔러 죽인다.
비극의 끝은 어디인가?
이어서 황제가 타이터스를 칼로 찌른다. 타이터스의 마지막 남은 아들 루셔스가 황제를 찌른다. 루셔스가 새로운 로마 황제가 된다.
작가는 이런 작품으로 뭘 이야기하는 것인가?
복수만 남은 세계에서는 어느 누구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짐승의 창자’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다는 인식이다. ‘복수는 나의 것’이라 외치는 이 작품의 모든 인물은 유혈 낭자한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복수극이 어떻게 나타난 것인가?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를 초연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1589년 이전부터 ‘복수’는 런던 극장가를 지배하는 주제였다. 1580년대부터 1590년대 중반에 걸쳐 대중적으로 성공한 토머스 키드의 <스페인의 비극>이 복수극의 전범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복수극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정치적 음모로 살해된 가족의 복수라는 동기, 유혈 낭자한 폭력 장면을 특징으로 한다. 여기에 복수가 복수를 낳는 폭력의 상승 작용,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악의, 단순한 살해로는 갚아지지 않는 원한, 인간을 광기로 몰아가는 복수심이 더해질수록 ‘유혈 복수극’에 대한 흥미는 높아졌다.
유혈 복수극의 전범을 찾을 수 있는가?
유혈극에 선례를 제공한 것은 르네상스기에 부활한 고전이었다. 극단적인 형태의 폭력적 에피소드를 찾던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작가들은 오비디우스의 ≪변신≫에서 영감을 얻었다. 세네카에게서는 잔혹한 행위가 난무하는 복수극의 충격적이면서도 잘 짜인 플롯을 배웠다.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도 오비디우스와 세네카의 그림자 속에 있는가?
태모라의 두 아들이 러비니아를 강간하고 그녀의 혀와 손목을 절단하는 행위는 오비디우스의 <테레우스와 필로멜라>, <타르퀴니우스와 루크레티아>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 또 타이터스가 태모라에게 두 아들의 살과 뼈를 먹이는 장면은 세네카의 복수극 <티에스테스>에서 빌린 것이다.
이 작품은 모방작인가?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 셰익스피어의 초기작인 이 극에는 이후 발표될 위대한 비극의 씨앗과 그 윤곽이 담겨 있다. 셰익스피어의 심오한 비극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니라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로부터 자라난 것이다.
이 작품이 셰익스피어 비극의 출발점이라는 말인가?
타이터스의 고난은 리어의 경우와 같이 정점에서 나락으로 추락하는 비극적 영웅의 전형적인 수난을 보여 준다. 셰익스피어가 성숙한 시기에 쓴 비극이 그렇듯, 이 작품에서도 타이터스의 ‘비극적 과오’, 즉 그의 성격적 결함과 시대·문화적 한계 때문에 주인공이 수난을 겪는다.
타이터스의 비극적 과오를 이 작품에서 지적할 수 있는가?
아들을 살려 달라는 태모라의 간청을 거절했다. 정의와 복수, 자비와 긍휼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두 윤리적 명제가 충돌하자 타이터스는 정의와 복수를 택한다. 이는 연쇄적인 폭력과 복수를 낳는다. 지상에서 연옥으로, 연옥에서 지옥으로 이르는 타이터스의 여정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르네상스기 영국 연극에서 정말로 셰익스피어가 으뜸인가?
사극, 희극, 비극, 희비극 등 연극의 모든 장르를 섭렵하는 창작 범위, 사회 각계각층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관객층에 대한 호소력으로 크리스토퍼 말로, 존 웹스터, 벤 존슨 등 동시대 탁월한 극작가 모두를 뛰어넘는 성취를 이루었다. 특히 그의 비극적 인물들은 인문주의를 가장 극적으로 구현한다.
주인공의 특징은?
중세적 속박과 르네상스적 해방이 가장 치열하게 맞부딪치는 과도기의 산물로서, 그러한 상승과 추락의 변증법을 극명하게 체현한다.
웹스터의 주인공은 어떤가?
웹스터의 주인공들은 인문주의적 가치 이면에 놓인 어두운 본능의 세계에 함몰되는 인간상을 대변한다.
말로와는 어떻게 다른가?
말로의 주인공들은 중세적 가치에 거침없이 도전하는 영웅적인 면모를 구현한다.
셰익스피어의 인물들은 어떻게 시간을 초월하는가?
그는 특정한 시대정신의 명징한 관념적 표상이 아니라 무한한 모순의 복합체로서 인간을 그려 낸다. 조화롭게 통합된 존재가 아니라 분열적이고 모순된 존재인 인간에 대한 치열한 인식은 르네상스 이후 오늘날까지 서구 문화와 문예를 혁신하는 원동력이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강태경이다.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다.